산방산에서 / 배진성

― 이어도공화국 시와음악카페 달문moon 17

by 강산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산방산에서 / 배진성





산방산에서 『신곡(神曲)』 읽는다

사자는 무척 굶주린 듯이

머리를 쳐들고

나를 향하여 다가왔으니,

마치 대기가 떨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암늑대 한 마리,

수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암늑대가

엄청난 탐욕으로

비쩍 마른 몰골로

내 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

언덕 꼭대기를 향한 희망을 잃었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이어도가 보인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숨결이 들어온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이 들어온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이 안아준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과 나는

온전히 하나가 된다







산 안에 방이 있는 산 / 배진성




산방산에 구름이 집을 짓는다

산 안에 방이 있는 산,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나는 산 안에 방이 있는

산을 찾았다

산 안에 있는 방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산방산에는 이제 빈 방이 없다

산방굴은 이미

부처님께서 차지하셨고,

서복 선생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던,

옥탑방에는 이제

올라갈 수 없다

산방산 옥탑방에서는

이어도가 보인다

한라산 옥탑방에서도

이어도가 보인다

아름다운 세상이

훤히 보인다고 했는데,

이제는 산방산 꼭대기에

올라갈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산방굴사에서 겨우,

산방덕이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내려온다


산 안에 방이 있는 산이 있다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방 안에 산이 있는 방이 있다

방과 방 사이에 산이 있는 방,

나는 그런 산방산 안에 있다

절반쯤은 늘 안개에 잠겨 있는,

가끔은 이어도가

희미하게 보이는,

그런 산방산 안에서 나는,

나의 탯줄을 너무 늦게 자른다

나의 태반을 너무 늦게 묻는다

그런 산방굴사 안에서 부처님께서,

먼 바다를 지그시 꿈꾸고 계신다






보아뱀 / 배진성




서귀포 화순해수욕장에

섬을 꿀꺽 삼켜버린,

커다란 보아뱀 두 마리

살고 있다

산방산을 삼키고

부처의 고뇌를 삼켜버린,

보아뱀 두 마리, 오늘도

바다로 기어가고 있다

추사의 세한도를 삼켜버린

용머리 보아뱀,

횟집과 민박집을 삼키고

부른 배로 기어가는 보아뱀,

두 마리가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이어도로 가고 있다


나는 그 보아뱀이 삼켜버린

많은 전설들을 알고 있다

갈대숲의 새와 검은 쥐들과

취객이 토해 놓은,

어둠과 욕망의 내력들을

다 알고 있다

보아뱀 뱃속에서 좌선하는

부처님과 추사가

코끼리 꼬리에 대하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끔은 무지개의 뿌리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보아뱀,

바람이 거세어

배들이 피항하는 화순항,

바람이 거세질수록

화순 앞바다를,

더욱 치열하게 기어가는

뜨거운 보아뱀 두 마리,

지금 막 빠져나가고 있다

이어도로 가고 있다







보아뱀이 훌쭉하다 산방산이 홀쭉하다 악어도 홀쭉하다 송악산도 홀쭉하다 한담을 나누시던, 추사 선생님과 부처님은 어디로 가신 것일까 코끼리는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을까 형제섬을 토해 놓은 악어는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 더 홀쭉한 가파도를 물어뜯으려는 것일까 등을 무겁게 누르는 구름은 잡아먹지 못하고, 손이 없는 긴 몸뚱이만 꿈틀거리고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에,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검둥개는 보이지 않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흰둥개도 보이지 않는다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 배진성





사자는 무척 굶주린 듯이 머리를/쳐들고 나를 향하여 다가왔으니,/마치 대기가 떨리는 듯하였다//그리고 암늑대 한 마리, 수많은/사람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암늑대가/엄청난 탐욕으로 비쩍 마른 몰골로//내 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나는/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언덕 꼭대기를 향한 희망을 잃었다 『신곡(神曲)』6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이어도가 보인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숨결이 들어온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이 들어온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이 안아준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과 나는 온전히 하나가 된다


산방산에 구름이 집을 짓는다 산 안에 방이 있는 산,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나는 산 안에 방이 있는 산을 찾았다 산 안에 있는 방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산방산에는 이제 빈 방이 없다 산방굴은 이미 부처님께서 차지하셨고, 서복 선생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던, 옥탑방에는 이제 올라갈 수 없다 산방산 옥탑방에서는 이어도가 보인다 한라산 옥탑방에서도 이어도가 보인다 아름다운 세상이 훤히 보인다고 했는데, 이제는 산방산 꼭대기에 올라갈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산방굴사에서 겨우, 산방덕이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내려온다


산 안에 방이 있는 산이 있다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방 안에 산이 있는 방이 있다 방과 방 사이에 산이 있는 방, 나는 그런 산방산 안에 있다 절반쯤은 늘 안개에 잠겨 있는, 가끔은 이어도가 희미하게 보이는, 그런 산방산 안에서 나는, 나의 탯줄을 너무 늦게 자른다 나의 태반을 너무 늦게 묻는다 그런 산방굴사 안에서 부처님께서, 먼 바다를 지그시 꿈꾸고 계신다


서귀포 화순해수욕장에 섬을 꿀꺽 삼켜버린, 커다란 보아뱀 두 마리 살고 있다 산방산을 삼키고 부처의 고뇌를 삼켜버린, 보아뱀 두 마리, 오늘도 바다로 기어가고 있다 추사의 세한도를 삼켜버린 용머리 보아뱀, 횟집과 민박집을 삼키고 부른 배로 기어가는 보아뱀, 두 마리가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이어도로 가고 있다


나는 그 보아뱀이 삼켜버린 많은 전설들을 알고 있다 갈대숲의 새와 검은 쥐들과 취객이 토해 놓은, 어둠과 욕망의 내력들을 다 알고 있다 보아뱀 뱃속에서 좌선하는 부처님과 추사가 코끼리 꼬리에 대하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끔은 무지개의 뿌리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보아뱀, 바람이 거세어 배들이 피항하는 화순항, 바람이 거세질수록 화순 앞바다를, 더욱 치열하게 기어가는 뜨거운 보아뱀 두 마리, 지금 막 빠져나가고 있다 이어도로 가고 있다


보아뱀이 훌쭉하다 산방산이 홀쭉하다 악어도 홀쭉하다 송악산도 홀쭉하다 한담을 나누시던, 추사 선생님과 부처님은 어디로 가신 것일까 코끼리는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을까 형제섬을 토해 놓은 악어는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 더 홀쭉한 가파도를 물어뜯으려는 것일까 등을 무겁게 누르는 구름은 잡아먹지 못하고, 손이 없는 긴 몸뚱이만 꿈틀거리고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에,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검둥개는 보이지 않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흰둥개도 보이지 않는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창세기부터 다시 세상을 읽으며 멀고도 긴 순례를 떠난다 30년 넘은 저승생활을 마치고 내 삶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하느님도 없었고 말씀도 없었다 태초라는 말도 없었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는 허공에 아무도 모르는 씨앗 하나 날아왔다 그 작은 씨앗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 처음은 그렇게 하나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껍질을 벗으니 둘이 되었고 둘은 다시 하나가 되어 넷이 되었다 어느 맑은 날 문득 하늘이 생겼다 하늘은 텅 빈 없음이니 없음이 자꾸만 무엇인가를 낳기 시작했다


먼지를 낳고, 바람을 낳고, 구름을 낳고, 어둠을 낳고, 별과 달과 지구를 낳고, 뜨거운 태양을 낳았다 하나가 둘이 되면서 빛과 어둠이 생겼고, 둘이 넷이 되어 동서남북을 낳아 길렀다 그렇게 세상은 생겨나서 팔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처음의 세상은 너무나 뜨거웠다 너무 뜨거운 세상에, 구름은 물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물과 흙은 생명을 낳았고, 생명들은 물에서 흙으로, 흙에서 허공으로 퍼졌다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따뜻함을 중심으로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돌기 시작했다 따뜻함은 가득한 사랑이니, 사랑은 사랑을 낳아 길렀다 세상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신들을 낳았다


공간이 만든 신들은 죽고, 인간이 만든 돈이 빛났다 신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간의 시대도 지나가고, 화폐의 시대도 지나가고, 지구는 병이 깊이 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거나, 메타버스를 타고 가상공간으로, 서둘러서 떠나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고, 스스로 신에 등극한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과 사람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옹달샘의 숲이 되어 숲으로 살아간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 배진성





그런데 가파른 길이 시작될 무렵/매우 가볍고 날쌘 표범 한 마리가/얼룩 가죽으로 뒤덮인 채 나타나//내 앞에서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내 길을 완전히 가로막았으니, 나는/몇 차례나 되돌아가려고 돌아섰다//때는 마침 아침이 시작될 무렵이었고,/성스러운 사랑이 아름다운 별들을/맨 처음 움직였을 때, 함께 있었던//별들과 함께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그래서 달콤한 계절과 시간에 힘입어/나는 저 날렵한 가죽의 맹수에게서//벗어날 희망을 갖기도 하였다 그런데/내 앞에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는 것을/보고 나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곡(神曲)』5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창세기부터 다시 세상을 읽으며 멀고도 긴 순례를 떠난다 30년 넘은 저승생활을 마치고 내 삶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하느님도 없었고 말씀도 없었다 태초라는 말도 없었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는 허공에 아무도 모르는 씨앗 하나 날아왔다 그 작은 씨앗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 처음은 그렇게 하나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껍질을 벗으니 둘이 되었고 둘은 다시 하나가 되어 넷이 되었다 어느 맑은 날 문득 하늘이 생겼다 하늘은 텅 빈 없음이니 없음이 자꾸만 무엇인가를 낳기 시작했다


먼지를 낳고, 바람을 낳고, 구름을 낳고, 어둠을 낳고, 별과 달과 지구를 낳고, 뜨거운 태양을 낳았다 하나가 둘이 되면서 빛과 어둠이 생겼고, 둘이 넷이 되어 동서남북을 낳아 길렀다 그렇게 세상은 생겨나서 팔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처음의 세상은 너무나 뜨거웠다 너무 뜨거운 세상에, 구름은 물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물과 흙은 생명을 낳았고, 생명들은 물에서 흙으로, 흙에서 허공으로 퍼졌다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따뜻함을 중심으로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돌기 시작했다 따뜻함은 가득한 사랑이니, 사랑은 사랑을 낳아 길렀다 세상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신들을 낳았다


공간이 만든 신들은 죽고, 인간이 만든 돈이 빛났다 신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간의 시대도 지나가고, 화폐의 시대도 지나가고, 지구는 병이 깊이 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거나, 메타버스를 타고 가상공간으로, 서둘러서 떠나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고, 스스로 신에 등극한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과 사람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옹달샘의 숲이 되어 숲으로 살아간다


제주의 봄은 사월에 피어난다 서천의 붉은 노을 꽃으로 피어난다 사월의 영혼들이 서천꽃밭 꽃감관으로 부활하고 있다 제주의 여름은 숨비기꽃으로 피어난다 인어들의 숨비소리로 피어난다 포작(鮑作)이 진상하던 전복을 잠녀(潛女)가 시작한 후, 숨비기꽃은 더욱 낮게 엎드려 향기로 깊어진다


제주의 가을은 감귤 향으로 익어간다 천 년을 고통나무로 버티어 한 때 대학나무가 되었던 감귤 나무, 동학농민전쟁이 벌어졌던 1894년에, 비로소 폐지된 진상제도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주의 겨울은 한라산으로 온다 구상나무들이 하얗게 옷을 갈아입는다 곰과 사자와 호랑이가 흰 눈으로 나오는 길, 설문대할망 자청비 영등신이 드나드는 입구도 보인다 가끔은 신(神)들을 따라 옥황상제가 그 길 따라 내려온다


일만 팔천 신(神)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섬에, 다시 사월이 오고 있다 사월의 겨울이 오고 있다 강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겨울이 세상을 뒤덮어도, 끝내 복수초는 두꺼운 얼음을 뚫고 나오리라 신(神)들이 벗어놓은 발자국마다 얼음새꽃이 따뜻하게 피어나리라



https://youtu.be/XFDJAphAm80?si=51Xa334MYM_cqvTx

https://youtu.be/AeFAlW2uWP4?si=kepk2Ukk9TLo03_5

https://youtu.be/h56R8YUUDws?si=QaO58DCRVNthuqRG

https://youtu.be/bUnbtq2UB_c?si=CQt1AvQNfr3e0Sta

https://youtu.be/g5CIj1sbkVQ?si=nFEJYfFfW9R5URAb

https://youtu.be/eS6ry95Fypg?si=J_yT-BPGcBdrJD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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