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몽규(宋夢奎)의 「술가락」

― 이어도공화국 시와 음악카페 달문moon 37

by 강산





송몽규의 「술가락」 / 배진성





텅 빈 방안엔 먼지만 쌓이고

우리 부부 잡힐 것은 다 잡혀 먹었네

인제는 굶을 도리밖에 남지 않은 방

당신은 뾰루퉁한 고함으로 배고픔을 견디네

말없이 앉아 눈만 껌벅이는 나를

이윽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당신

눈물을 짜내며 한숨을 쉬는 그 뒷모습에

내 가슴은 미어지나 별 수가 없구려


"여보, 좋은 수가 생겼소"

나의 그 한마디에 당신 눈이 반짝였지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차마 못 할 그 말

결혼할 때 받은 그 은술가락 말이오


머리가 희어지도록 잘 살라던 선물

쌀죽이라도 떠먹으며 굶지 말라던 약속

그 수저로 죽을 뜨기 위해 수저를 파는

이 기막힌 운명 앞에 눈물이 흐르네

우리 전 재산,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이

시장통 전당포 속으로 사라져 가네


"안 돼요, 굶으면 굶었지 그건 못해요"

당신의 목메인 소리 내 귀를 때리지만

"찾아오면 되지 않겠소"

달래고 또 달래어 힘없이 내어준

당신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

멀리 망명 떠난 당신 아버님의 유일한 예물

"세상없어도 이것만은 없애지 말게"

편지 속 글귀가 눈앞에 선연한데

내 술가락은 이미 잡힌 지 오래되었네


술가락 뒤편에 새겨진 뚜렷한 '축(祝)'자

우리 이름 석 자와 결혼이란 그 글자들

그걸 팔아 사 온 쌀과 나무, 고기 반찬들

가마솥 밥 끓는 소리에 위장은 꿈틀대는데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밥상

우리 두 부부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들려다

나를 똑바로 쏘아보는 당신의 그 눈동자

그 속에 고인 두 줄기 눈물은 멈추질 않네


자 먹읍시다, 미안함에 권해보아도

당신은 대답 없이 나를 쏘아만 보네

아, 아차 싶어 내려다본 빈자리엔

당신이 밥 먹을 술가락이 없었구려





https://youtu.be/-BrOiZTEyGI?si=_839B_kS7Pxj0kud

https://youtu.be/5w6d0ZWVPuo?si=QabhqnVkxO7uVD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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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가락

송한범 (송몽규)


우리부부는 인제는 굶을 도리밖에 없엇다.

잡힐 것은 다 잡혀먹고 더잡힐 것조차 없엇다.


「아- 여보! 어디좀 나가 봐요!」

안해는 굶엇것마는 그래도 여자가 특유(特有)한 뾰루퉁한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 나는 다만 말없이 앉어 잇엇다. 안해는 말없이 앉아 눈만 껌벅이며 한숨만 쉬는 나를이윽히 바라보더니 말할 나위도 없다는 듯이 얼골을 돌리고 또 눈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나는아닌게 아니라 가슴이 아펏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럿다.


「아 여보 조흔수가 생겻소!」 얼마동안 말없이 앉아 잇다가 나는 문득 먼저 침묵을 때트렷다.

「뭐요? 조흔수? 무슨 조흔수란 말에 귀가 띠엿는지 나를 돌아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한다.

「아니 저 우리 결혼할 때… 그 은술가락망이유」

「아니 여보 그래 그것마저 잡혀먹자는 말이요!」 내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안해는 다시 표독스운소리로 말하며 또 다시 나를 흘겨본다.


사실 그 술가락을 잡히기도 어려웟다. 우리가 결혼할 때 저- 먼 외국(外國) 가잇는 내 안해의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술가락과 함께 써보냇던 글을 나는 생각하여보앗다.


「너히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머리가 히도록 잘 지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 술가락을 선물로 보낸다. 이것을 보내는 뜻은 너히가 가정을 이룬뒤에 이술로 쌀죽이라도 떠먹으며 굶지말라는 것이다. 만일 이술에 쌀죽도 띠우지 안흐면 내가 이것을 보내는 뜻은 어글어 지고 만다.」 대개 이러한 뜻이엇다.


그러나 지금 쌀죽도 먹지 못하고 이 술가락마저 잡혀야만할 나의 신세를 생각할 때 하염없는 눈물이 흐를 뿐이다마는 굶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없이 「여보 어찌 하겟소 할 수 잇소」 나는 다시 무거운 입을 열고 힘없는 말로 안해를 다시 달래보앗다. 안해의 빰으로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잇다.


「굶으면 굶엇지 그것은 못해요.」 안해는 목메인 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래 어찌겟소. 곧 찾아내오면 그만이 아니오!」 나는 다시 안해의 동정을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없이 풀이 죽어 앉어잇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 「여보 갖다 잡히기오 발리찾어내오면 되지 안겟소」 라고 말하엿다.


「글세 맘대로 해요」 안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힘없이 말하나 뺨으로 눈물이 더욱더 흘러내려오고잇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전재산인 술가락을 잡히기에는 뼈가 아팟다.


그것이 운수저라 해서보다도 우리의 결혼을 심축하면서 멀리 ××로 망명한 안해의 아버지가 남긴 오직 한 예물이엇기 때문이다.

「자 이건 자네 것 이건 자네 안해 것-세상없어도 이것을 없애서 안되네」 이러케 쓰엿던 그 편지의 말이 오히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숟가락이건만 내것만은 잡힌지가 벌서 여러달이다. 술치 뒤에에는 축(祝)지를 좀 크게 쓰고 그 아래는 나와 안해의 이름과 결혼 이라고 해서(楷書)로 똑똑히 쓰여잇다.


나는 그것을 잡혀 쌀, 나무, 고기, 반찬거리를 사들고 집에 돌아왓다.

안해는 말없이 쌀음 받어 밥을 짓기 시작한다. 밥은 가마에서 소리를 내며 끓고잇다. 구수한 밥내음새가 코를 찌른다. 그럴때마다 나는 위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춤을 삼켯다.

밥은 다되엇다. 김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밥을 가운데노코 우리 두 부부는 맞우 앉엇다.

밥을 막먹으려던 안해는 나를 똑바로 쏘아본다.


「자, 먹읍시다.」 미안해서 이러케 권해도 안해는 못들은체 하고는 나를 쏘아본다. 급기야 두 줄기 눈물이 천천이 안해의 볼을 흘러 나리엇다. 웨 저러고 잇을고? 생각하던 나는 「앗!」하고 외면하엿다. 밥 먹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안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앗던 까닭이다.



술가락


송몽규 (宋夢奎)


우리 집 술가락은 모두가 다 기형아였다. 어떤 놈은 입이 떨어져 나가고, 어떤 놈은 목이 부러져서 철사로 동여매고, 어떤 놈은 자루가 꼬부라지고….


그놈들이 한데 어울려 찌개 그릇 속에서 싸움질하는 꼴이란 참 가관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입 떨어진 숟가락으로 잡수셨다.


“얘, 그놈은 입이 험해서 조심해 먹어야 한다. 자칫하다간 입술을 베일라.”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내게는 제일 온전한 놈을 골라 주셨다. 그러나 그 온전하다는 놈도 실상은 자루가 꼬부라져서 국을 떠먹으려면 여간 공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한참 저녁을 먹는데 별안간 ‘뚝’ 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숟가락 목이 부러진 것이다. 철사로 동여매어 간신히 지탱해 오던 놈이 마침내 항복을 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무안하신 듯 허허 웃으시며 부러진 자루를 내려놓으셨다.


“이놈이 이제야 제 명을 다했구나.”


그날 밤, 아버지는 등잔 밑에서 부러진 숟가락 목을 다시 철사로 동여매고 계셨다.


어머니는 곁에서 바느질을 하시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장날에 나가서 놋숟가락이라도 몇 벌 사 와야겠어요. 저 꼴들을 하고 사니 원….”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없이 묵묵히 철사만 감고 계셨다.


이튿날 아침, 우리 집 식탁에는 전날보다 더 가관인 풍경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숟가락은 목에 철사를 칭칭 감아 깁스한 환자 모양을 하고 있었고, 내 숟가락은 아예 자루가 없어져서 몽당숟가락이 되어 있었다.


“내 숟가락은 어디 갔어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시며 대답하셨다.


“어젯밤에 네 아버지가 고치시다가 그만 아주 부러뜨리셨단다. 오늘은 그냥 나무숟가락으로 먹으렴.”


나는 어머니가 내어주신 커다란 나무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었다. 입안 가득 나무 냄새가 번졌다.


그해 겨울, 우리 집 숟가락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놈은 엿장수 마음대로 넘어가고, 어느 놈은 아주 행방불명이 되고….


나중엔 정말 나무숟가락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나무숟가락으로도 맛있게 밥을 먹었다. 비록 기형아 숟가락조차 귀해진 처지였지만, 우리 식구들의 웃음소리만은 놋숟가락보다 더 쨍쨍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술가락


송한범 (송몽규의 아명)


"여보, 어찌하면 좋겠소?"


나는 다시 아내의 동정을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없이 풀이 죽어 앉아 있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


"여보, 갖다 잡히고 빨리 찾아내 오면 되지 않겠소?"


라고 말하였다.


"글쎄, 맘대로 해요."


아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힘없이 말하나 뺨으로 눈물이 더욱더 흘러내려 오고 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전 재산인 술가락을 잡히기에는 뼈가 아팠다. 그것이 은수저라 해서보다도 우리의 결혼을 심축(心祝)하면서 멀리 ××로 망명한 아내의 아버지가 남긴 오직 한 예물이었기 때문이다.


"자, 이건 자네 것, 이건 자네 아내 것―세상없어도 이것을 없애선 안 되네."


이렇게 쓰였던 그 편지의 말이 오히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숟가락이건만 내 것만은 잡힌 지가 벌써 여러 달이다. 술치 뒤에는 축(祝)자를 좀 크게 쓰고 그 아래는 나와 아내의 이름과 결혼이라고 해서(楷書)로 똑똑히 쓰여 있다.


나는 그것을 잡혀 쌀, 나무, 고기, 반찬거리를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말없이 쌀을 받아 밥을 짓기 시작한다. 밥은 가마에서 소리를 내며 끓고 있다. 구수한 밥내음새가 코를 찌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위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밥은 다 되었다. 김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밥을 가운데 놓고 우리 두 부부는 마주 앉았다. 밥을 막 먹으려던 아내는 나를 똑바로 쏘아본다.


"자, 먹읍시다."


미안해서 이렇게 권해도 아내는 못 들은 체하고는 나를 쏘아본다. 급기야 두 줄기 눈물이 천천히 아내의 볼을 흘러내렸다. 왜 저러고 있을고? 생각하던 나는 "앗!" 하고 외면하였다. 밥 먹는 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아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