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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Apr 06. 2021

천년폭낭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1




천년폭낭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1




1

길을 찾아 보려고

홀로

밤새 길을 걸었다

아침에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보니

카톡이 하나 와 있다

아, 오늘이 

나의 생일이었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구나


*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가장 행복한 

하루하루 되시길

늘 기도드립니다!


2

며칠 전에 겨우 배웠다

천년 폭낭 보고 배웠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지금 처한 그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라

바람 불면 바람을 안고

비가 오면 빗물에 젖고

눈이 오면 눈물을 닦고

봄이 오면 하늘을 보고

여름 오면 그늘을 주고

가을 오면 뿌리로 가고

겨울 오면 하늘로 가라

나도 이제 그렇게 산다


3

강산 시인의 꿈삶글

강산 시인의 꿈과 삶과 글

강산 세상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나는 참 아는 것이 없다

나는 참 세상을 모른다

나는 참 사람을 모른다

나는 참 나를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처음부터 다시 세상을 읽는다

나는 이제 세상을 잘 읽어서

아름다운 세상 하나 만들고 싶다

나는 이제 나를 더 잘 읽어서

나의 세상 하나 꼭 만들고 싶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쓴다

세상을 베끼고 세상을 배운다

사람을 베끼고 사람을 배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먼저 집 정리를 하고 메모를 한다


아, 오늘은 식목일이자 한식날 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나무 심기를 좋아하고

찬 음식을 먹는 가난한 시인이었구나


* 쓰레기 


쓰레기는

처음부터 

쓰레기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잘 쓰다가 버려졌거나

내가 스스로 버린 것들이 쓰레기가 된다


* 돈 


돈은

우리 인간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돈을 만들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고서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고

함께 호흡하려고 만들었다

그러니까 돈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한 수단이지

인간이 돈으로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간들은 이제

인간이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루  빨리 

이 비극을 깨닫지 않으면

우리 인간들은

인간이 만든 돈에게 지배당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또한 기업은 실적으로 말한다

주식 투자는 나무 심기처럼 해야만 한다

시간에게 물을 주고 잘 가꾸어야만 한다

식목일에는

나무도 심도 좋은 기업에 물도 잘 주어야만 한다

비전이 보이는 기업에 투자하고 기다려야만 한다


* 오늘의 운세


66년생, 육신의 고단함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휴식하라.


4

제주도 어느 마을이나

폭낭이 많다

내가 사는 화순에도

폭낭들이 참 많다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폭낭 아래 모여서 지낸다

자세히 보면

상처가 많은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암덩이처럼 울퉁불퉁 하고

오래 전에 잘린 가지들은

속이 텅텅 비어 있다

그렇게 상처 많은 나무들이

새들을 품어 키우고

사람들도 그늘로 덮어주며

모두 모두 함께 잘 자란다

이어도공화국에도 그런 폭낭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5

며칠 전에 보고 온 

천년 폭낭이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천년 폭낭 등에서 자라는

돌나물들이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천년 폭낭 등에서 자라는

어린 생명들이

자꾸만 나에게 눈을 껌벅거린다

처음에 보고는

다른 나무가 곁에서 자라나서

함께 합쳐진 연리목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큰 바람에 쓰러질 때

엉겁결에 땅을 짚었던 

왼손 이었음을 알았다

하늘을 향해야 할 가지가

땅을 향하여 

뿌리 처럼 박혀 있는

그 나뭇가지가 자꾸만 

내 눈에 밟힌다

쓰러진 몸으로도 잘 사는 폭낭 한 그루

큰 바람에 꺾이어 상체를 다 잃고도

다시 싹을 틔워 살아난 폭낭 할머니

자꾸만 자꾸만 나를 부른다

사람들이 받쳐 준 쇠기둥 다 버리고

온전한 자신의 뼈로 지팡이 삼아 

다시 새롭게 부활을 꿈꾸는 폭낭 한 그루

자꾸만 자꾸만 내 몸으로 들어온다

천 년을 넘게 살았다는 폭낭 한 그루

자꾸만 나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준다




* [향토문화]현재 도내 최고령목 추정..상가리 천년폭낭(팽나무)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승인 2020.02.27 00:19


위치 ; 애월읍 상가리 1663번지. 서하동 '폭낭거리'
문화재 지정사항 ; 도(道)나무 13-6호로 보호되고 있음(1982년 10월)
시대 ; 고려~
유형 ; 나무


상가리 서하동 '폭낭거리'에는 나이가 매우 많은 팽나무(제주어로는 '폭낭')가 있다. 이 나무의 확실한 수령은 알 수 없으나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면 10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의 상징수(象徵樹)로 마을이 설촌되기 이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터주대감이다. 이 나무를 중심으로 차씨, 주씨, 현씨 세 사람이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상가리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엽에는 이 부근에 이 나무와 비슷한 연령의 팽나무가 많아 이 거리를 '폭낭거리'라고 불렀으며, 어린이들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도 가지를 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나무들은 조선말까지 태풍으로 모두 도괴되고 이 팽나무도 2,3백년 전부터 줄기 속이 동공화하기 시작하여 1959년 사라호 태풍 때에는 지상 7m 정도에서 부러지고 나머지는 기울어져 지금의 누운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밑둥은 거대한데 위가 작아서 마치 일부러 분재용으로 가꾼 것처럼 보인다.

100㎡의 면적에 높이 8m, 몸통 둘레 5.7m, 수관직경 12.7m에 달하는데 부러지고 쓰러졌기 때문에 높이가 낮은 편이다.

현재 제주도내에서 최고령목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1988년에는 산림청 기술진이 260만원을 들여 부식방지 시술을 한 적도 있다.(상가리지 489쪽, 현장의 안내판)

도내 최고령목에 대해서는 산림청에서 비자림의 가장 큰 비자나무가 1992년 현재 993살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천년퐁낭

- 강산 시인의 꿈삶글 29



1

퐁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폭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팽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산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신당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서낭당나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정자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

얼굴책에서 우연히 나무 한 그루 사진을 보았다

살아있는 낭쉐 한 마리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뿔로 하늘을 들이받으며 하늘을 들어올리고 있다

쿵쿵쿵 지축을 흔들며 낭쉐 한 마리 걸어가고 있다

텅, 텅, 텅, 소님들은 걸어가면서도 똥을 잘 싼다

똥덩이를 보니 '상가리 천년퐁낭'이라 쓰여있다

지식의 바다로 헤엄을 쳐서 들어간다

살아있는 낭쉐는 코끼리가 되고 하마가 되고

거대한 전갈이 되고 거대한 하늘소가 된다

코뿔소가 되고 사슴이 되고 노루가 되고 토끼가 되고

백록이 되고 꽃모자를 쓴 설문대할망이 된다

나는 쇠기둥을 받치지 않은 낭쉐가 더 마음에 들지만

세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나는 이제

천 년을 넘게 살았다는 그 폭낭을 찾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올려야만 하리라

속을 다 비우고 껍데기로 버티고 있을 나무 한 그루

아니, 오직 뼈만 남아서 온 몸이 뼈가 된 나무 한 그루

나이테도 다 버리고 기억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나무 한 그루 

넘어지고 얻어터지고 허리가 꺾여서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을 생에 대한 믿을 한 그루

나는 그 꿈과 삶에 대한 예의를 찾아서 가리라

그 간절한 마음은 꿈속으로도 이어져

연꽃이 있는 꿈속으로 먼저 찾아간다

천년 폭낭이 낳아 기른 상가리

이 폭낭 아래서 차씨, 주씨, 현씨 세 사람이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상가리로 발전하였다는 전설을 따라가니

올레에 조등이 걸려있는 상가에서 도감으로 앉아서

천 년 넘게 돔베고기를 썰고 계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그런데 또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다리가 여섯 개 달린 짐승이 곁으로 지나가고 있다

나는 그 짐승에게 끌려서 따라가고 있다

나의 온 몸에는 낚시 바늘들이 꽂혀 있고 

나의 치아와 잇몸에서는 끊임 없이 고래심줄이 풀어져나오고 있다


3

나무라고 해서 모두가 나무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나무로 태어났지만 짐승처럼 살아가는 나무가 있다

거대한 곤충처럼 기어가는 나무가 있다

울퉁불퉁한 몸뚱이를 이끌고 천천히 하늘로 기어가는 거미가 있다

살아있는 낭쉐 한 마리 하늘로 올라가 하늘소가 되고 있다

아니,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바라보니 진흙소 한 마리 숲으로 간다

바람소리 한 수레 싣고 허공 속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상가리 천년폭낭을 보니 드디어 나무가 보인다

나와 가 함께 보인다

나보다 無가 더 잘 보인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향토문화]현재 도내 최고령목 추정..상가리 천년폭낭(팽나무)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승인 2020.02.27 00:19


위치 ; 애월읍 상가리 1663번지. 서하동 '폭낭거리'
문화재 지정사항 ; 도(道)나무 13-6호로 보호되고 있음(1982년 10월)
시대 ; 고려~
유형 ; 나무



상가리 서하동 '폭낭거리'에는 나이가 매우 많은 팽나무(제주어로는 '폭낭')가 있다. 이 나무의 확실한 수령은 알 수 없으나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면 10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의 상징수(象徵樹)로 마을이 설촌되기 이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터주대감이다. 이 나무를 중심으로 차씨, 주씨, 현씨 세 사람이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상가리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엽에는 이 부근에 이 나무와 비슷한 연령의 팽나무가 많아 이 거리를 '폭낭거리'라고 불렀으며, 어린이들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도 가지를 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나무들은 조선말까지 태풍으로 모두 도괴되고 이 팽나무도 2,3백년 전부터 줄기 속이 동공화하기 시작하여 1959년 사라호 태풍 때에는 지상 7m 정도에서 부러지고 나머지는 기울어져 지금의 누운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밑둥은 거대한데 위가 작아서 마치 일부러 분재용으로 가꾼 것처럼 보인다.


100㎡의 면적에 높이 8m, 몸통 둘레 5.7m, 수관직경 12.7m에 달하는데 부러지고 쓰러졌기 때문에 높이가 낮은 편이다.


현재 제주도내에서 최고령목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1988년에는 산림청 기술진이 260만원을 들여 부식방지 시술을 한 적도 있다.(상가리지 489쪽, 현장의 안내판)


도내 최고령목에 대해서는 산림청에서 비자림의 가장 큰 비자나무가 1992년 현재 993살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미얀마 군부의 시민 학살에 분노한다.

학살자들에 대한 심판에는 국경과 시간의 시효가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미얀마 군부는 국민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겠습니다.” 지난 3월 27일, 쿠데타 주역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뱉은 이 한 마디 속에는, 미얀마 유혈사태의 역설적 진실이 깃들어 있다. 폭력주의자들은 먼저 총칼을 휘두르고 그 다음 언어를 타락시켰다. 2019년 2월 1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NLD(민족민주연맹)가 총선에서 80%가 넘는 지지로 민간정부를 구성했다. 그러자 민의로부터 고립된 군부는 문민정부 2기 출범식에 맞춰 예비된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가 내세운 명분은 부정선거 심판이었지만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얀마는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근 60여 년 동안, 세계정치사에 유례없는 군인들의 나라였다. 자국민을 보호하는 군인이라기보다는 모든 주요 산업과 은행 등 시장을 지배한 군벌이었다. 헌법에는 군부에게 25%의 의석수를 의무 배정하도록 되어 있으며, 국방장관, 내무장관, 각 군의 사령관들을 군부가 임명하게 되어 있는 등, 정상적인 나라라면 있을 수 없는 악법들이 존속해 왔다. 민간정부에 의해 이 같은 야욕들이 좌절될 위기에 처하자 군부는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간 정당의 역할을 무력화시키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의 최종 목적이 군부의 영구집권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군부가 총칼로 60여 년에 걸쳐 사익을 편취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동안, 미얀마는 세계 최빈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가난과 폭압의 이중고에 시달려 왔다. 지난 두 달 사이 군부가 살육한 미얀마 시민은 공식적으로 510명에 이르며, 실종, 구금, 부상 등을 합치면 희생자들은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 군부는 1988년에도 3~4천 명에 이르는 시민들을 학살했는데 그때 희생당한 88세대의 자식들인 청년과 노동자들이 민주주의 확립과 군정 종식을 외치며 비무장 상태로 목숨을 내놓고 항거중이다. 팔목에 유서를 써둔 채 총알과 수류탄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지옥의 거리에서 맞서고 있다. 


이렇게 싸우다가 희생당한 사람 중 40여 명은 어린이들이다. 우리는 이 숭고하고 피어린 장면에서 우리나라의 80년 오월 광주를, 60년 4월을, 1919년 3월을 겹쳐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미얀마 시민들의 불굴의 저항과 희생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가 싸우고 견디어 이뤄놓은 역사를 거울 속의 얼굴처럼 마주보게 된다. 어찌 동병상련의 분노와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한국 정부는 군용물자 수출금지, 국방 치안 등의 신규 교류 금지 등의 제재조치를 천명했고, 국회는 여야 불문, 참석자 전체의 동의로 이를 결의한 바 있다. 한국의 문인단체들은 미얀마 민주시민 곁에 가까이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진실을 알리고, 기억하며 그들의 용기를 나누는 일이라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여기에 함께 호흡하는 지구인으로서 속울음 토하는 여망을 모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첫째,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에 대한 학살을 즉각 멈추라. 


- 둘째, 미얀마 군부의 학살 만행에 미온적인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은 반성하고 제재와 규탄에 동참하라.  


- 셋째, 국제사회는 즉각 이 사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자국의 이익이 아닌 보편적인 인류애와, 생명옹호의 바탕 위에서 미얀마 군부를 제재하고, 민간이양 보장책을 수립하라.


- 넷째, 한국정부는 후속적인 제재조치를 강구하고 국회 차원의 특위를 구성하라.   


2021. 4. 5.


(사)국제펜한국본부, (사)한국문인협회, (사)한국소설가협회, (사)한국시인협회, (사)한국작가회의(가나다 순)


Korean writers are angry with the Myanmar military's inhumane slaughter of its innocent citizens.


We offer the most stern warning that there should no border or time limit for punishment against the slaughterers.


“The Myanmar military will protect the people and achieve democracy.” The paradoxical truth of the bloodshed in Myanmar lies in this single sentence spoken by Supreme Commander Min Aung Hlaing, who played the leading role in the coup on March 27. The violence-resorting military wielded guns and then corrupted the language. On February 1, 2019, the 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led by national advisor Aung San Suu Kyi formed a civilian government with more than 80% support in the general election. Then, the military, failing to secure national support, staged a coup timed for the inauguration ceremony of the second civilian government. Their motives were falsely alleged to judge the fraudulent election, but there was no evidence at all for that.


 Myanmar has been a country ruled by soldiers for nearly 60 years since the military coup in 1962, unprecedented in the history of world politics. Far from the role of protecting their own people, the military have been a warlord who monopolized all markets including major industries, banks, and other areas. There have been evil laws that could not exist in a normal country, mandating that 25% of the seats are to be allocated to the military, and the military has appointed the defense and interior minister, and the commanders of each army division. When these wrongful practices were on the verge of being thwarted by the democratically-elected government, the military launched the illegal coup that aimed to nullify the role of a civilian party with majority seats.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e ultimate goal of the coup was to maintain the permanent military grip of power.


  With the stigma of being one of the poorest countries in the world, the people of Myanmar have been plagued by the double hardship of poverty and repression, while its military has capitalized on their interests exclusively for more than 60 years with the threat of guns, resulting in the annihilation democracy. The number of Myanmar citizens officially slaughtered by the military over the past two months has hit 510, and disappearances, detentions, and injuries of the innocent civilian protesters combined will increase the number of victims. The military also had the infamous history of slaughtering 3,000 to 4,000 citizens in 1988 also. Children of 88 generation at the time - young men and workers now - are on the front line of protest, putting their unarmed lives on the line, and are crying for the establishment of democracy and the end of the unlawful military government. With a will written on their wrists, the protesters are struggling in the streets of hell where merciless bullets and grenades are flying out of nowhere.


 About 40 of the victims of this protest are children. In this sublime and blood-soaked scene, we cannot but look back at Gwangju in May of 1980, April of 1960, and March of 1919 in Korea with teary eyes. Witnessing the indomitable resistance and sacrifice of the citizens of Myanmar, we cannot fail to stand to meet the great history that we have achieved through fighting and enduring and we rediscover familiar faces in a mirror in Myanmar. How can we avoid feeling the anger and pain from a commiseration?


 We are relieved that the Korean government declared sanctions such as a ban on exports of military supplies and new exchanges in the field of national defense and security, and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made a resolution with the consent of all participants, regardless of the political parties. Although, sadly, Korean literary groups cannot stand close to Myanmar's democratic citizens physically, we are in total agreement that what we should do is tell the truth, remember their sacred dream and share their courage. Therefore, today we, as earthlings who share everyday breath, manage to hold back our tearful heart, gather together and demand in the strongest word possible as follows;


 -First, the Myanmar military should immediately stop the massacre of citizens.


 -Second, the governments of China, Russia, India, who have been lukewarm in condemning the slaughter of Myanmar military forces, should immediately participate in international sanctions and condemnation.


 -Thir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not obsessed with their own national interests, should immediately and actively intervene in this situation, sanction the Myanmar military on the basis of universal love for humanity, and cooperate to establish a policy to guarantee a peaceful transfer of power to civilian government in Myanmar. 


-Fourth, the Korean government should take effective and subsequent sanctions and form a special committee at the level of the National Assembly.


2021. 4. 5.


PEN International Korea Center

The Korean Writers’ Association 

Korea Novelist Association 

The Korea Poet’ Association 

Writers Association of Korea




강산 2018년 4월 5일           

                                    

꽃들이 이사 하는 날

나도 이사를 한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높은 아파트에서 1층으로

( 지상에서 지하로 이사 하는 날도 언젠가는 오고야 말리라 )


꽃들의 숨소리 들으려고

흙의 숨결을 느끼려고

좀 더 가까운 곳으로 다가간다


집을 지으려면

한 평에 삼백 만원 한다고 해서

두 평에 해당하는 육백  만원 주고

방 둘을 샀다

공부방 하나 침실 하나


저 방 위에는 원두막을 만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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