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빙떡이 있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참 좋다. 자극적이지 않고 무덤덤한 맛이 참 좋다. 꼭 물맛처럼 맛이 없는 듯 깊은 맛이 있어서 나는 참 좋아한다. 그런데 이 빙떡이란 놈을 떡이라고 불러야 할지, 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전병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만두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떡 같기도 하고 전 같기도 하고 전병 같기도 하고 만두 같기도 하다.
빙떡이란 이름은 떡 ‘병(餠)’이 ‘빙’으로 변하면서 유래했다는 설 외에 반죽을 국자로 빙빙 돌리면서 부친다, 혹은 빙빙 말아서 먹는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차게 두고 먹어도 맛있다고 해서 빙떡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빙떡은 제주도에서 이웃이나 친족에게 대소사가 생겼을 때 선물하고 먹었던 축하와 위로의 음식이라고 한다. 제주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남원에서는 모양새가 멍석 같아서 ‘멍석떡’이라고 한다. 서귀포에서는 전기떡(쟁기떡)이라고 한다. ‘홀아방떡’ 혹은 ‘홀애비떡’으로 불리기도 한다. 열량이 낮고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소가 충분하다고 한다. 소를 달리하면 훨씬 다양한 종류로 만들수 있다고 한다. 소로 김치를 넣는 강원도 메밀총떡이나 프랑스식 전병인 갈레트도 있다고 한다. 겉모습은 강원지역의 총떡(메밀전병)과도 닮았다. 그러나 빙떡에는 주로 무만 넣는 데 반해 총떡에는 무뿐만 아니라 김치와 양념한 돼지고기·오징어 등이 들어간다고 한다. 나에게는 어쩐지 오리지널 제주 빙떡이 더 잘 맞을 것만 같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오래도록 저염식을 먹었는데 제주 빙떡은 환자들의 저염식 음식으로도 제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금 없이도 이렇게 맛있고 고소한 음식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더 궁금해서 '빙'이라는 글자를 검색해 보았다. 약간 넓은 일정한 범위를 한 바퀴 도는 모양, 갑자기 정신이 어찔하여지는 모양, 일정한 둘레를 넓게 둘러싸는 모양, 한 바퀴 도는 모양, 둘러싼 모양, 등으로 검색이 된다. '빙'은 참 재미 있는 부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빙떡은 빙빙이 핵심이다. ‘병(餠)’이 ‘빙’으로 변했다는 말도 재미있는 유추다. 제주도 사람들은 아마도 이 음식을 떡이라고 고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축하와 위로의 음식으로는 전보다는 떡이 더 잘 어울리므로 떡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떡을 강조하고 싶었으면 병떡 즉 떡(병)떡이라고 하였겠는가?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메밀이 생산되는 곳은 제주도라고 한다. 예로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메밀을 다양한 음식에 이용했는데, 특히 메밀가루로 만든 ‘빙떡’이 유명하다. 갈치국·옥돔구이 등과 함께 제주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식 7선’에 선정된 빙떡은 메밀가루로 얇게 전을 부치고 그 안에 채를 썰어 데쳐낸 무를 넣은 음식이다. 빙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메밀가루로 최대한 얇게 전을 부친다는 것이다. 빙떡을 잘 만드는 사람이 만든 빙떡은 속에 들어있는 무가 훤하게 보일 정도로 얇게 잘 부친다. 밀로 만든 밀가루보다 점성이 낮은 메밀로 어떻게 그렇게 얇게 잘 부치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빙떡을 처음 먹기 시작한 때는 제주도에 메밀이 들어온 700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당시 탐라(제주도의 옛 지명)는 원나라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속설에 따르면 탐라를 못마땅하게 여긴 원나라의 관료가 제주 사람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소화가 안 되고 독성이 있는 작물로 알려진 메밀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탐라 사람들이 메밀로 빙떡을 만들어 먹으면서 원나라의 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메밀을 가루로 만든 다음 소화효소가 풍부한 무와 함께 조리를 해서 먹으니 아무런 탈이 없었던 것이다.
빙떡의 조리법은 간단하다. 우선 메밀가루에 미지근한 물을 섞어 반죽한다. 무는 채 썰어서 뜨거운 물에 살짝 익힌 뒤, 송송 썬 실파와 함께 참기름·소금·참깨를 넣고 버무린다. 이후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메밀 반죽을 국자로 빙빙 돌리면서 얇고 넓게 전을 부친다. 양념한 무채를 전의 한쪽에 가지런히 얹어서 돌돌 말고서 가장자리를 손으로 꾹 눌러주면 ‘빙떡’이 완성된다.
* 무소 만들기
1 무는 결대로 채 썰고, 쪽파는 0.5cm 길이오 송송 썰어 준비한다.
2 끓는 물에 무를 넣고 4~5뷴간 데친다.
3 무가 익으면 건져서 물기를 짠다. 소금, 참기름, 참깨, 쪽파를 넣어 버무리고, 간한다.
* 전병 만들기
1 메밀가루와 소금은 체로 친다. 여기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묽게 갠다. 메밀가루와 물은 1:1.4 또는 1:1.5 비율로 한다.
2 달군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키친타올로 닦아 기름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도록 만든 다음 메밀반죽을 국자로 떠서 얇게 두른다. 전병을 부칠 땐 타지 않게 약불로 조절한다. 반죽이 익으면 가장자리가 들리는데, 그 때 뒤집어서 1~2분 더 익힌다.
3 메밀전병을 한 김 식힌 후 무소를 넣고 돌돌 만다.
4 무소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양 끝을 꾹 누른다.
빙떡의 맛은 사실 처음 먹어본 사람은 잘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간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번 먹고 나면 심심하지만 고소한 그 맛에 푹 빠져든다. 또한 열량은 낮지만 단백질·지방 등 영양소는 충분해 웰빙음식으로도 손색없다. 제주에서 빙떡을 맛보려면 제주시내 재래시장인 동문시장 등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누구라도 만들기 쉬운 음식이므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길 권한다
제주도는 그동안 메밀 생산량이 많았음에도 가공 공장이 없어서 메밀을 산업화 할 수 없었다. 메밀을 강원도에 빼앗긴 느낌이 강하다. 지금은 강원도가 메밀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메밀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봉평장에는 메밀 막국수 뿐만 아니라 메밀부치기와 메밀 전병이 유명하다고 한다. 봉평장 아주머니들의 현란한 손놀림이 볼만 하다고 한다. 까만 번철 위에 메밀반죽을 붓질하듯 슥슥 문지른 뒤 절인 배추를 올려 홱 뒤집으니 ‘메밀부치기’가 완성된다. 종잇장처럼 얇고 부드러운 메밀부치기는 슴슴하고 담백하다. 메밀전에 김치·두부·당면 등을 섞은 소를 넣고 총대처럼 돌돌 말아 ‘총떡’이라 부르는 메밀전병은 매콤한 맛이라고 한다. ‘메밀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에 비하여 제주도의 빙떡은 그냥 먹어도 참 맛이 좋다. 시원하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은근히 사람들의 유혹한다. 나는 지금도 그 맛에 푹 빠져 있다.
메밀은 예로부터 국수·부침 등에 밀가루 대신 활용돼왔으나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가 대량 수입되면서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웰빙바람’을 타고 건강식품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 기회를 강원도가 선점한 것이다. 제주도는 2015년에야 비로소 메밀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하지만 제주도만의 독특한 메밀 음식이 있으니 강원도와 차별화 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제주도 메밀과 강원도 메밀이 함께 발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메밀을 모밀이라고도 하는데 참 재미 있다. 세모 모양의 메밀을 두고 ‘모가 난 밀’이라 부르다 ‘모밀’ ‘메밀’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니까 산에서 나는 밀이 메밀이고 모가 난 밀이 모밀이 아닐까 나 혼자서 생각하고 픽 웃는다.
나도 이제 한 번 빙떡을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아야겠다. 시장에서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파는 할머니는 후라이팬에서 직접 소를 넣고 말아서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좀 손이 뜨거울 것 같으니 전을 먼저 붙인 다음에 불판 밖에서 무 소를 넣고 말아보아야겠다. 나는 어쩐지 빙떡이란 말보다 멍석말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이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밀멍석말이는 여름에 먹어도 좋지만 겨울에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냉면을 여름에도 먹고 겨울에도 먹듯이 그렇게 한 번 만들어서 먹어보아야 겠다. 나는 지금껏 나를 너무 소홀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움직이는 것인데 나는 그동안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이제라도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여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