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혼자에게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42

by 강산




혼자가 혼자에게




구실잣밤 떨어지고 고추잠자리 날아오르는 계절에 책을 읽는다. 이병률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는다. 혼자 놀기의 달인이 혼자를 읽는다. 엊그제 열린 북콘서트를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선택 장애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의도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저자는 말했다. 독립심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는데 자꾸만 그날 생각이 난다. 질문 시간에 어느 한 젊은 여성분께서 벌떡 일어나 "사랑합니다"라고 크게 고백하고 그냥 앉아버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강당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말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자꾸만 들리는 듯하다. 이병률 시인은 참 사랑을 많이 받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으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병률 시인은 시를 잘 쓰고 산문을 잘 쓰고 사진을 잘 찍는다. 그리고 책을 참으로 잘 만든다. 책 표지에 의자를 하나 그려놓고 외투부터 벗긴다. 앞날개를 펼치면 책은 편안한 응접실로 변한다. 그 따뜻한 사랑방에서 저자와 독자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름답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저자는 독자를 위하여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맛있는 요리까지 해서 준다. 마지막에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집 앞까지 나와 독자를 배웅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대답을 한다.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나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좋은 날이 많이 있었습니까' 나는 이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좋은 날이 참 많이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요' 이 말에는 쉽게 대답을 할 수 없다. 나는 수술비 마련을 위하여 3년만 일하고 나와서 내가 좋아하는 시만을 써야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30년 넘게 지금도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고 있다. 별빛을 만들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슬렁거리고 있지만, 늘 마음 깊은 곳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병률이 부럽고 자랑스럽다. 모두가 나의 부실한 건강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의 우유부단함과 무능함의 핑계일 뿐이다. 나야말로 심각한 결정장애 환자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가끔 학교 마당 벤치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기도 하고 남산 와룡 사당 계단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병률이와는 직접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문창과 동기였지만 서로 반이 달라서 그랬을 것이다. 또한 내가 워낙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서두르지 않고 시나브로 대화를 나누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 병률이가 나를 친구로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좋은 도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을 끝까지 읽고 덮었는데 <파이란>이란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아마도 <파이란>이란 영화의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기다리던 최민식 선생님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이병률 시인의 '바람은 붙잡을 수 없다. 붙잡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나를 이끌었을 것이다. - '바람이 통하는 상태에 나를 놓아두라 268'


덕분에 나는 오늘 영화 세 편을 보았다. <파이란><오아시스><인질>을 보았다. 강재(최민식)와 파이란(장백지)의 사랑을 보았고 종두(설경구)와 공주(문소리)의 사랑을 보았고 황정민(황정민)의 연기를 보았다. 그중에서 나는 벽에서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무섭다는 공주를 위하여, 유치장에서 탈출하여 그 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들을 잘라주는 종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다시 만난 도반 때문에 사랑도 배우고 인생도 배울 수 있어서 참으로 아름답고 의미 있는 하루를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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