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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Oct 28. 2021

무등이왓 사람들

- 이어도 공화국 16





무등이왓 사람들     




큰넓궤     


평화로 가는 길에 붉은 상사화

무리지어 피어난다

추석날 오후 큰넓궤 찾아간다

큰넓궤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해 추석을 어떻게 지냈을까

아, 큰넓궤는

끝까지 눈을 감지 못한 어머니의 눈동자

길에서 나를 쏟아버린 어머니의 자궁

서늘한 바람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싸늘한 정신이 가슴 속을 후벼판다

볼레오름까지 올라갔던 사람들

그들을 두 달 동안 지켜주었던

입구의 종나무

그 종나무와 어울려 살고 있는

단풍나무를 본다

홍단풍은 봄부터 붉고

청단풍은 가을에도 푸르다

아, 입구가 너무 좁다

거꾸로 찍혀있는 발자국처럼 거꾸로 들어간다

흙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눈동자 속으로, 자궁 속으로

기어서 들어간다

멀리서 나팔소리 들려오고

어머니의 심장소리 들린다

어둠이 양수처럼 나를 감싼다 이 곳에서

붉은 상사화 지는 것도 잊은 채

두어 달 어머니와 함께 종나무로 살다가 나는,     



발자국 밥그릇     


눈이 온다 하늘이 온다

하늘의 식구였던 눈이 온다

하늘의 식구였던 하늘이 온다

눈이 쌓인다

하늘이 내려 쌓인다

큰일이다 큰일났다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오려거든

더 빨리 펑펑 쏟아 부어라

우리들이 벗어놓은

발자국 가득 쌓여 넘쳐버려라

거꾸로 벗어놓은 발자국이

차라리 하늘이 되어버려라

큰넓궤에서부터 따라오는 발자국이

자꾸만 우리들의 목숨을 따라오고 있다

왕오름을 지나고

이스렁오름을 지나고

어스렁오름을 지나고

산짐승도 내려가 텅 빈 볼레오름에 다 오도록

우리들의 발자국은 하늘이 되지 못하는구나

고봉밥이 되지 못하는구나

발자국 밥그릇에 하늘을 다 담지 못하는구나

아, 존자암의 염불소리도 

부처님께 올리는 삼시 세 때 공양도

우리들의 발자국 그릇을 다 채워주지는 못하는구나

하늘의 눈꽃만 지상에 피어나

참나무들의 겨우살이 열매 눈빛이 더욱 붉어지더니

덜 채워진 하늘이 결국 붉게 엎어지고 마는구나     



헛묘     


정방폭포로 간다 정방폭포 앞바다로 간다 태평양으로 간다 혹시, 아는 사람이 뼈 한 조각이라도 가져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으로 간다 동광리로 간다 무등이왓으로 간다 삼밭구석으로 간다 혹시, 살 한 점이라도 붙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 다시 낭떠러지 위로 간다 절벽의 바위를 뒤진다 폭포 아래 바위를 뒤지고 물속을 뒤지고 바다 속을 뒤지고 바다 속 물고기들을 뒤지고 물고기 뱃속을 뒤진다 혹시, 숨결 하나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허공 속을 뒤진다 더 높은 하늘을 뒤진다 구름 속을 뒤진다 빗방을 속을 뒤진다     


뒤지다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지상을 떠난 뒤에도, 집 앞으로 몰려든다 죽어서도 몸을 찾지 못한 영혼들이 작은 단서라도 얻어 들으려고 찾아든다 이렇게 찾아와 밤새 이야기하는 영혼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목백일홍 이라고 말한다 백일홍 나무라고 말한다 배롱나무라고 말한다 그 곁에 있는 충혼묘지에도 백일기도하는 붉은 꽃이 있다 죽어서도 영혼을 찾지 못한 몸들이 있다 그리하여 여전히 순례를 멈출 수 없다 





 자궁처럼 보이는 큰넓궤 입구
눈동자처럼 보이는 큰넓궤 입구
겨울 볼레오름
붉은 겨우살이 열매
헛묘
헛묘와 충혼묘지에서 피어나는 배롱나무꽃
무등이왓 사람들이 총을 맞고 떨어져 죽은 정방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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