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문학관 2
절판된 첫 시집이 복간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약간의 손질을 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알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한 아이의 비밀을 알고 있다 한 아이의 아픔을 알고 있다 그는 나밖에 몰랐다 나 또한 그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어쩌면 나인지도 모른다 그는 서럽도록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오직 그와 나밖에 몰랐다 그의 삶은 우리나라 현대사와도 같았다 그는 죽도록 사랑하는 일과 그리하여 매일 밤 유서를 쓰는 일 외에는 아무런 일도 할 줄 몰랐다 다른 일을 해보려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바람에 쓰러질 때마다 유서를 쓰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다 살아 있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그는 편지와 유서를 썼다 하지만 그는 또한 가야 할 길이라면 어디든지 가보고 싶었다 뛰어가고 싶었다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는 또다시 아무도 모르게 쓰러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곁에 있었다 그가 쓴 유서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병을 가족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어느 날 문득 가출을 결심했다 그와 나는 함께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꿈길까지라도, 저승길까지라도……, 최대한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그리고 수 없이 많이 달아났다 우리들은 오늘도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우리는 또다시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들은 그렇게 살벌한 평화 속에서 20년도 넘게 함께 살아왔다 아직도 그의 투병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잠든 사이에 나는 그의 투병일지 혹은 유서들을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 참으로 숨죽이는 순간이다 조심스럽게, 이 비밀들을, 속삭이고 싶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오늘도 유언처럼 발설하고 있다 이제 막 새로 태어난 길이, 빈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하느님도 없었고 말씀도 없었다
태초라는 말도 없었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는 허공에
아무도 모르는 씨앗 하나 날아왔다
그 작은 씨앗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
처음은 그렇게 하나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껍질을 벗으니 둘이 되었고
둘은 다시 하나가 되어 넷이 되었다
어느 맑은 날 문득 하늘이 생겼다
하늘은 텅 빈 없음이니 없음이
자꾸만 무엇인가를 낳기 시작했다
먼지를 낳고
바람을 낳고
구름을 낳고
어둠을 낳고
별과 달과 지구를 낳고
뜨거운 태양을 낳았다
하나가 둘이 되면서 빛과 어둠이 생겼고
둘이 넷이 되어 동서남북을 낳아 길렀다
그렇게 세상은 생겨나서 팔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처음의 세상은 너무나 뜨거웠다
너무 뜨거운 세상에
구름은 물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물과 흙은 생명을 낳았고
생명들은 물에서 흙으로
흙에서 허공으로 퍼졌다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따뜻함을 중심으로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돌기 시작했다
따뜻함은 가득한 사랑이니
사랑은 사랑을 낳아 길렀다
세상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신들을 낳았다
공간이 만든 신들은 죽고
인간이 만든 돈이 빛났다
신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간의 시대도 지나가고
화폐의 시대도 지나가고
지구는 병이 깊이 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거나
메타버스를 타고 가상공간으로
서둘러서 떠나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고
스스로 신에 등극한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과 사람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옹달샘의 숲이 되어 숲으로 살아간다
이어도공화국 1 -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이어도 추천 4 조회 566
11.03.25 22:39
주산지의 왕버들
생존을 위한 몸부림
우리나라는 문무대왕이 지키고
문무대왕릉은
파도와
새들이 지키고 있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리라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
연어의 종착역에 왔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 주변 정리도 좀 했다
엊그제 내린 첫눈이
아직도 녹지 않았다
나의 가슴도
아직은 녹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붕어만 누워 있는 이유?
혹시 아시나요?
감귤은 너무 늦기 전에 따야만 한다
자식도 너무 늦기 전에 따야만 한다
여덟 고을은 모두 지역이 아주 멀고 남해와 가까워서 겨울철에도 초목이 시들지 아니하고 벌레가 움츠리지 아니한다. 산 아지랑이와 바다 기운이 끼는 듯하며 나쁜 기운이 있고, 또 일본과 아주 가까워서 땅은 비록 기름지나 살기 좋은 지역은 아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 기록한 글이다. 그의 말처럼 기후가 따뜻하여 겨울 작물들이 잘 자라고, 이국적인 자연경관이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도는 뭍(육지)에 사는 사람들이 가끔씩 가고 싶어 하는 환상의 섬이자 신비의 섬이다. 그중 마라도는 한국의 가장 남단에 자리 잡은 섬이다.
해녀와 감귤이 인상적인 제주도에는 오랜 옛날부터 환상의 섬이자 ‘유토피아’로 알려진 이어도1)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소설가 이청준은 『이어도』라는 빼어난 소설을 남겼다.
긴긴 세월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의 첫 부분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인간 그 본연의 모습, 즉 아무 가진 것 없이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책만 읽으며 무위도식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군대에 갔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제대하였을 무렵, 우리 집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서울에서 며칠 방황하던 중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유토피아’인 이어도였다. 어째서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가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때 나는 절박했고, 달리 돌파구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 ‘환상의 섬’인 이어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얼마 되지 않는 노자(路資)를 갖고서 목포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포에서 ‘가야호’라는 밤배를 타고 도착한 제주의 새벽은 낯설었다. “나는 아무 가진 것 없이 이국의 어느 도시에 도착하기를 꿈꾸었다” 프랑스의 산문작가인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에 실린 그 낭만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찾아가 살고자 했던 섬인 이어도가 소설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었다.
이어도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제주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 전설의 섬이었다. 천 리 남쪽 바다 밖에 파도를 뚫고 꿈처럼 하얗게 솟아 있다는 제주도 사람들의 피안의 섬이었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상상의 눈에서는 언제나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수수께끼의 섬이었다. 그리고 제주도 사람들의 구원의 섬이었다. 더러는 그 섬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한 번 그 섬을 본 사람은 이내 그 섬으로 가서 영영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섬이었다.
거문오름 전경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제주 거문오름 전경. 거문오름은 한라산의 화산활동을 잘 보여주는 오름이다.
그러나 세상은 냉혹했다. 돈이 다 떨어진 나를 반기는 곳은 일을 한 만큼만 일당을 받을 수 있는 공사판뿐이었다. 2년 반 동안 수많은 공사판을 전전하고서야 뭍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도 이어도도 내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잊혀졌다.
이어 이어 이어도 사나
이어도가 어디에 사니 수평선 넘어
꿈길을 가자 이승길과 저승길 사이
아침 햇덩이 이마에 떠올리고
저녁 햇덩이 품 안에 품어
노을 길에 돛단배 한 척
이어 이어 이어도 가자 (······)
한라산을 등에 지고 제주
바다와 마주 서 보라 (······)
수평선 넘어 꿈길을 열라, 썰물 나건 돛단배 한 척
이어 사나 이어도 사나
별빛 밝혀 노 저어 가자
별빛 속으로 배 저어 가자
제주가 고향인 문충성 시인의 이어도라는 시 구절만 가끔씩 떠올리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어도는 제주 사람들에게는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이어도 이어도여, 요내 노야 부러진들요, 내 손목이야 부러질 소냐, 한라산에는 곧은 나무가 없을쏜가, 이어도요 이어도요.” 제주 해녀들이 불렀던 이어도의 노랫말이다. 한라산의 나무를 모두 배 젖는 노로 부러뜨려 없애는 일이 있더라도 노 저어 찾아가겠다는 이어도는 제주도의 서쪽 어딘가에 있는 제주도 부녀자들의 이상향이다. 방아를 찧으면서도 이어도를 불렀고, 말똥을 주우면서도 이어도를 불렀다.
제주도 사람들이 그토록 가고자 했던 이어도. 그 이어도에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체가 없는 유토피아이고 무릉도원이고 낙원의 섬이다. 다만 그 섬에 가면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제주도 사람들에게 가고 싶은 낙원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도는 과연 어디에 있는 섬일까?
환상의 섬이자 유토피아의 섬 이어도(離於島)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加波里) 마라도(馬羅島) 남서쪽 149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수중 섬이다. 파랑도(波浪島)라고도 부르는 이 섬은 동중국해(東中國海)에 있다. 중국의 서산다오(余山島)에서 287킬로미터,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도리시마(鳥島)에서 276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 위치하고 있다.
수중 암초(暗礁)로 해저광구 제4광구에 있는 우리나라 대륙붕의 일부이다. 암초의 정상이 바다 표면에서 4.6미터 아래에 잠겨 있어 파도가 심할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옛날부터 제주도에서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살고 있다는 전설 속 환성의 섬 또는 피안의 섬으로 일컬어졌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동쪽과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서쪽과 북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면적은 50미터 등수심선을 기준으로 약 2제곱킬로미터이다. 동서 약 1.4킬로미터, 남북 약 1.8킬로미터의 섬이다.
이 섬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에 의해서였다. 그런 연유로 선박의 이름을 따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고 붙였다. 1910년 영국 해군에 의해 수심 5.4미터의 암초로 측량된 적이 있었다. 1938년에는 일본이 인공구조물 설치를 계획했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무산되었다.
1951년 국토규명사업의 일환으로 이어도 탐사를 시작하여 암초를 확인한 뒤에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고 쓴 동판 표지를 바닷속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1987년에는 해운항만청에서 이어도 등부표를 설치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공표하였다. 이는 이어도 최초의 구조물이다.
그러나 정작 제주도 사람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이어도’에 대해 전해 오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바람난 남편이 첩을 데리고 건너가 살았다’는 이야기와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不歸)의 섬이라는 것, 그 정도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제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섬이 이어도이다.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 이엿말 하면 나 눈물 난다. 이엿말은 말앙은 가라. 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한다.
이어도를 노래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민요 속의 진짜 이어도는 과연 어디 있는가?
양력 동짓달이다. 한해가 이운다. 고단한 개인사로 부침을 거듭하는 사이 섬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신성을 만나왔다.
요 며칠 사이에도 서귀포로 제주시로 쏘다녔다. 본향당, 일뤳당, 요드렛당, 포제단, 리사제단...
수백 년을 버텨온 냇기리소일뤳당의 담팔수는 두 동강난 채로 기울고 있었다.
제주섬과는 어울리지 않는 야자수가 신목처럼 웃자란 콧등이모를 요드렛당도 스산하였다.
누군가 해코지를 해대며 제단에 페인트로 글씨를 써놓은 불목당도 마찬가지였다.
‘주예수를 믿으라.’
결연한 의지로 자신들의 신을 강조하며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메시지를 썼겠지만 그들의 신도 위력이 쇠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