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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28. 2022

겨울봄 일기

집 나간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다랑쉬




다랑쉬에는 다랑쉬마을이 들어있다

오름은 움푹해진 백록담도 품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평생 달과 함께 살았다

집들이 모두 불타고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도

달과 함께 가재쑥부쟁이와 시호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다랑쉬굴 안에서 연기가 된 뒤에도

달은 잊지 않고 찾아와 섬잔대와 송장꽃을 피웠다


무쇠솥과 항아리와 놋수저와 신발만 남기고

열 한 명이 들려나와 바다로 떠난 이후에는

더 이상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어둠 속에는 아홉 살 아이가 울고 있는데

벗겨진 신발 찾으러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잠겨버린 어둠은 열리지 않는다


달이 찾아와 소리쳐 불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곁에 있는 용눈이오름 아끈다랑쉬오름 높은오름

돛오름 둔지오름이 힘을 합쳐도 문을 열 수가 없다


남아있는 늙은 팽나무가 그저 바라볼 뿐

무너진 돌담도 집터도 우물터도 안으로 눈물 흘릴 뿐


달을 따라서 달의 고향으로 온 나도 그저

서로의 얼굴만 바라다 볼 뿐




심장




나의 심장은 아마도 좌심실이 많이 커져있을 것이다

대문 밖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길을 막고 있어서

대문 밖에서는 언제나 피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좌심실은 더욱 열심히 뛰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홀로 달밤에 운동장을 한없이 돌았었다

가끔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생각하곤 했었다

땅의 심장은 아마도 옹달샘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다

하늘의 심장은 어쩌면 태양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다


대문 밖에 떡 버티고 있었던 바위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나는

대문을 뜯어 고쳐보겠다며 풍선 확장수술을 받았었다

대문이 활짝 열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그 대문에 풍선을 불어서

멀쩡했던 대문을 강제로 더 활짝 열어 젖혔다


바로 그때부터 나의 대문은 제대로 닫힐 수 없었으리라


옹달샘 심장은 그래도 좀 수월했으리라

아래로만 흘러도 강들은 잘 살 수 있었으리라

태양 심장 또한 그래도 좀 수월했으리라

달이 대신하는 밤에는 세상 다 잊고 편히 잠 들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의 심장은 거꾸로 퍼 올리는 나무의 뿌리가 되어야만 했으리라


한라산 관음사 코스처럼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만 했으리라

제주도의 심장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의 심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심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뒤늦게 찾아내어, 대문 밖 바위를 치우면서

나의 심장은 더욱 깊은 상처를 입었으리라

그 상처에 달라붙은 세균들이 대문을 사정없이 뜯어먹었으리라

흰개미 떼가 물러가도 이제는 너덜거리는 대문이 닫히지 않으니

대문 밖의 핏물이 홍수처럼 안으로 밀려들고 있으리라

그 밀려드는 홍수를 감당하기에 나의 좌심실은 오래 버틸 수 없으리라


나의 심장이 터져버리기 전에 나의 대문을 갈아주어야만 하리라

나의 대동맥판막을 새로운 대문으로 바꿔주어야만 하리라

그때까지는 또 다시 나의 심장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너무나 미어지도록 많이 아플 것이리라


오늘 아침에도 나의 고마운 심장은 나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주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나의 발바닥 심장이 나를 걷게 만들어준다

걸어가며 가만히 다시 한 번 생각하니

땅의 심장은 옹달샘이 아니라 바다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핏줄의 굵기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바다가 심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심장도 태양이 아니라 바다 건너에 있을 것만 같다

가만히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니

나의 심장도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심장은 어쩌면 사랑하는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것만 같다

당신의 따뜻한 가슴이 오늘도 이렇게 나를 따뜻하게 살려내고 있다




겨울 유언장




어쩌면 지금부터 쓰는 이 글이 나의 마지막 글이 될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지금부터 쓰는 이 글이 나의 마지막 유언이 될 수 있으리라

지금부터 쓰기 시작하는 이 글이 언제 끝이 날는지 난 아직 모른다


운현궁 마당에 눈이 절반쯤 쌓여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반쯤 남아있고

반은 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났다


땅과 하늘이 함께 만들었을 붉은 홍시

달과 태양이 함께 들어있을 붉은 홍시

말랑말랑한 얼굴 만지며 가는 찬 겨울바람


검은 대나무 숲에서 걸어 나온 저승사자

겨울로 가는 운현궁 마당을 거닐고 있다

나는 척화비 뒤에 얼마나 더 숨어있을까


2

비행기에서 보니 지구의 테두리가 보인다

높은 하늘에서 보니 삶의 테두리가 보인다

저 바다 건너 저 테두리 건너 무엇이 있을까


불가사리처럼 기어가는 산 봉오리들 위로

흰 구름 흘러가고 나는 지금 하늘에서 본다

구름이 모여들어 더 넓은 테두리를 만든다


폭설에 묻힌 산마을처럼 구름에 덮인 세상

구름계곡 사이로 언뜻 얼굴 내미는 지붕들

가끔은 바다도 보이고 사람 마을도 보인다


갈수록 눈부신 구름은 두꺼워지고 남극처럼

눈의 세상처럼 빙하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늪

저 눈부시게 빛나는 한낮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꿈처럼 조용히 떠 있던 비행기, 구름 속으로 간다

두꺼운 구름을 뚫고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푸른 겨울 바다에 관탈섬 떠 있고 한라산이 보인다


3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목요일 오후에 당장 입원하여 수술하자는 말에

입원을 다음 주 월요일로 미루고 내려왔는데

일주일쯤 더 미루어질 것만 같다

오늘 입원한 환자가 다음 주에 수술을 할 것만 같다

나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이 먼저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갑자기 일주일을 더 벌었다

나에게 일주일의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천 영흥도 앞에서 급유선과 충돌한 낚싯배처럼

제주로 가는 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처럼

우리들의 삶에도 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이 상황이 나도 아직은 당황스러운데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14년 4월에는 한라병원에서 세월호 참사 생중계를 보았는데

2017년 12월에는 서울대학교병원 가는 길에 옆구리에 구멍 난

낚싯배를 보았고 갯벌에서 실종자를 찾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4

물리적 시간과 감정적 시간은 다르다

사람마다 시간은 다르고 상황에 따라

일주일의 시간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시간이 부자인 사람은 좀 게을러도 되지만

시간이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게 살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일주일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나는 이제 내 인생의 전반전을 마무리 하고

몸과 마음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가다듬어

마지막 남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전반전에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은 무엇인가

우리들의 삶이 전반전이라면 죽음은 후반전일 것이다


내 필생의 사업, 이어도공화국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

평생학교(평화학교&생명학교)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

후반전에 가장 먼저 시작하고 꼭 마무리 해야만 한다


5

나는 아직 인도에 가보지 못했으나

인도에서 사는 꿈을 꾸었다 나는 아직

베트남에 가보지 못했으나 베트남에서

사는 꿈을 꾸었다 나는 혹시 인도와 베트남에서

나의 전생에 살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혹시 나의 후생에 그곳에서 살 수도 있으리라


나의 올해 겨울은 참 추운 겨울이 될 것만 같다


만에 하나라도, 혹시라도 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남은 사람들이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면 참으로 좋겠다


나의 법적 상속인과 ○○○ 시인께서 잘 의논하여

평생학교(평화학교&생명학교)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름다운 나라 이어도공화국을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

또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함께 도와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평생학교에서 남은 가족의 대학 학자금과

최소한의 생활비도 함께 지원해 주면 더욱더 좋겠다


6

나에게는 지금도 꿈이 하나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산을 하나 가꾸고 싶다

그 산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 숲 속에 조촐한 집을 하나 짓고 싶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

그 쉼터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절망이 너무 깊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대하여

너무나 분노한 사람들과 

한 때의 실수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나무를 심어주고 싶다

산에 나무를 함께 심으면서

그들의 아픈 가슴에도 

또 다른 희망의 나무를 심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고 싶다 


산 혹은 자연의 큰 거울 앞에서

희망을 되찾은 그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나는

그들과 내가 함께 심었던

그들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안부 편지와 함께 가끔 보내주고 싶다

세상으로 돌아간 그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자라나는 나무를

보기 위하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올 수 없더라도

늘 가슴 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자신의 나무 때문에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끝끝내

함께 가야할 길

겨울이 깊을수록

더 잘 보이는 길

실패한 사람을

함께 이끌어주고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세워주고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우리들이 함께 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나는 정말 좋겠다


7

평생학교에서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추진할 사항은 숲 가꾸기 사업이다

그 아름다운 숲에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8

내가 오래도록 구상하고 준비한 평생학교는 간단하다

내가 오래도록 구상한 이어도공화국을 이름만 바꾸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많지만 핵심은 숲과 함께 사는 일이다


숲과 함께 숲으로 사는 일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 나무가 함께 사는 일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함께 아름다운 숲을 가꾸는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나무 한 그루 심고 가꾸는 일이다

나무를 가꾸면서 나무와 대화하고 나무처럼 사는 일이다


자신이 가꾸는 자신의 나무처럼 아름답게 살자는 것이다

함께 아름다운 숲을 가꾸며 함께 아름답게 살자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도와주며 아름다운 숲으로 아름답게 살다가

죽어서는 생전에 자신이 키우던 나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죽어서도 살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하는 것이다

죽어서도 살아남은 후손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후손들이 삶에 지쳐 쉬고 싶을 때 그늘이 되어주고

책갈피에 꽂아지는 나뭇잎이 되어 희망이 되어주자는 것이다


9

평생학교와 더불어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이 또 있다

우리 현대사의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한 정리다

제주사삼을 흔히 4·3이라 말하지만 나는 3·1이라 말한다

우리들의 현대사는 3·1운동의 연장으로 보면 쉽게 풀린다

제주3·1절발포사건과 여순사건과 지리산 빨치산운동과

4·19혁명과 광주5·18과 촛불혁명이 모두

3·1운동의 연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한 긴 여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나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여 지금껏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역량 있는 문인들께서 꼭 완성해주실 것을 당부 드리고 싶다


내가 평생 동안 꿈꾸었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한

평생학교와 제주사삼의 문학적 결실은 우리 민족과

우리 후손들의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에 누군가는 반드시 이루어주길 바란다

제주사삼은 3·1정신이 총을 맞고 쓰러져서 피를 흘리는 사건이다

우리들의 삼월이 죽지 않도록 우리들의 힘과 역량을 모아야만 한다


10

3년 전 봄에 나는 

바다에 누워버린 세월호처럼 병원 침대에 누워서 

사랑하는 나의 심장에게 이런 간절한 편지를 썼다

나는 꼭 다시 부활하여 이 겨울 유언장을 고쳐서 쓰고 싶다


11

한없이 미안하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나의 하트야

지금껏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주어서 고맙다

지금은 벚꽃이 활짝 피어서 언제쯤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길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만 같구나


너는 어떤 다른 사람들의 심장보다 부지런히 뛰어야만 했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온 몸으로 나가는 바로 그 문

대동맥판막, 그 입구가 좁아서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피가 몸으로 잘 나가지 못했잖아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를 못했잖아

나는 다만 나만 생각하고

나보다 더 힘들었을 너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지

너는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서 홀로 깊이 울었을까

조금이라도 피를 더 내보내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그만큼 너는 늘 죽어라고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었겠지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체력을 열심히 길러 나도 한 번 달리기를 잘 해 보겠다며

밤마다 국민학교 운동장을 헉헉거리며 홀로 돌 때

너는 그야말로 죽을똥 살똥 죽을힘을 다해 빨리 뛰어주었지

몸에서는 피를 자꾸만 더 달라고 하는데

몸으로 나가는 문, 입구가 작으니

너는 얼마나 더 열심히 몇 곱절로 뛰어야만 했을까

너무나 무모했던 그 때, 네 기본 용량을 훨씬 초과했었을 그 때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펑, 터지지 않고 

하나뿐인 목숨을 끝까지 붙들고 버티어주어서 정말 고맙다


내가 중학교 체육책에서 홀로 심장병을 알고

곡성읍내와 광주까지 홀로 몰래 나가서

선천성 심장병, 네 어려운 처지의 상태를 알았을 때

그때도 나는 사실 너의 고통에 앞서

내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만 했으니

너는 그런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미안하다 하트야, 미안하다 사랑하는 나의 심장아


그때는 육영수 여사님께서 심장재단을 만들어

심장병 어린이들을 외국까지 데려가서 수술을 시켜오곤 했었잖아

그때 나는 또한 너를 부여잡고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지새우며 울었던지

우는 나를 지켜보던 별빛들도 눈이 퉁퉁 부었었잖아

그 많은 밤들을 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겠지

가장 아프고 외롭고 힘들었을 때 늘 함께 해줘서 고맙다


가난이 무엇인지

그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바로 그 가난이 우리들의 입을 철저히 틀어막았잖아

그때는 그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잖아

집안에 심장병 환자 하나 있으면 집안 망한다는 시대였잖아

그나마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는

나 하나쯤 조용히 없어지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그것이 너와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잖아

그때 너와 내가 입을 꽉 다물어버리고

심장병을 발설하지 않은 것은 과연 잘 한 일일까


몸이 자꾸만 커지고

몸이 자꾸만 더 많은 피를 요구할수록

너와 나는 남몰래 한쪽 구석에 숨어서 너를 움켜쥐고 울어야만 했잖아

그때 너는 얼마나 아팠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는 아마도 사경을 헤매기도 했겠지

그 많은 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잘 견디어 주어서 너무너무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서울로의 가출에 성공했고

늘 실습복 차림이던 고교 3년, 기숙사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편지 속에서는 늘 건강한 아들이 되었잖아

나는 이제 너에게 한없는 감사와 사랑을 함께 보낸다

하트, 너에게 나의 뜨거운 하트를 보낸다

내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다 네 덕분이다


남몰래 계단 난간을 붙들고 쪼그려 앉거나

축축한 구석 어둠 속에 쓰러지는 것이 일이었던 우리에게도

세월이 흘러

기적처럼 드디어 기회가 왔잖아

내가 취직을 하고 돈을 모으고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되고

우리나라 심장수술 기술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서

아, 우리에게도 드디어 봄날이 찾아왔잖아


내가 여수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받기 전날

싱싱한 자신들의 피를 헌혈해주겠다며

대형버스 가득 직장동료들이 찾아왔을 때

너와 나는 또한 얼싸안고 얼마나 감격했던가

아, 이런 것이 진짜 삶이로구나!


하지만 감격은 잠깐으로 끝나고 나의 수술은 취소되고 말았잖아

전날 수술한 환자가 회복실에서 잘못되어 죽는 바람에

병원 마당에는 유가족들의 시위 텐트가 쳐지고

수술을 해야 할 의시들은

더 이상 칼을 잡지 못하겠다며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아, 그때는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다 힘이 들었던가

나의 심장병이 들통 난 마당에 너와 나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잖아


그 모진 세월 덕분에 우리는 1년 뒤

서울대학교병원 시절이 시작되었잖아

이게 다 새옹지마 였었잖아

내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더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으니

이게 다 네 덕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말이다 자고로

대학교 캠퍼스에서보다 병원 침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서울대학교병원에서도 물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잖아

대동맥판막이 세 갈래로 제대로 찢어지지 않아서 그렇다며

처음에는

사타구니의 큰 혈관으로 긴 관을 집어넣어

대동맥판막에서 풍선을 불어주는 풍선 확장 시술을 했었잖아

물론 오진이었지만

그런 것들이 다 우리들의 인생 아니겠니


그런 시행착오 끝에

대동맥 판막 앞에 사마귀 같은 작은 혹을 하나 발견했잖아

그런 혹이 있으니 판막이 다 열려도 구멍이 작아서 그렇다며

그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잖아

너도 잘 알잖아

천만 다행이었지

까딱 잘못했다간

멀쩡한 대동맥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할 뻔 했잖아

이게 다 그동안 네가 쌓아놓은 공덕 덕분이 아니겠니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했다면

평생 약을 먹어야만 하고 부작용도 많다는데

평생 왼쪽 가슴에서 금속판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데

너와 나는 천만 다행이도

혹 하나 제거로 치료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 아니더냐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지고

회복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퇴원을 하고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니 정말 살 것 같더라

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상쾌함이었지

물론 너는 더욱 좋았겠지

얼마나 가뿐 했겠니

그동안 끙끙 앓아가며 죽을힘을 다해 펌프질을 하는데

몸에서는 자꾸만 피가 부족하다고 불만이니

네 심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니

그런데 수술이 끝나고는

네가 평소보다 일을 조금만 해도

온 몸으로 피가 잘 돌아주니 얼마나 신이 났겠느냐


그동안 나는 너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았었나보다

그런데 이제 오십을 바라보니 자꾸만 네 생각이 나는 구나

수술 이후에도 사실은 네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비정상상태로 살았으니

그 비정상이 정상이 되었겠지

그에 맞추어 네 모습이 조금은 변해 있었겠지

그렇게 한 번 변해버린 모습은 

수술이 끝나고도 쉽게 되돌릴 수는 없었겠지

지금도 청진기를 대어보면

너는 여전히 힘겹게 벽을 긁어대며 뛰고

온 몸으로 가는 대동맥 문이 다시 좁아져 있다니

이제는 나의 아픔보다 너의 건강상태가 먼저 염려가 되는구나


한없이 미안하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나의 하트 나의 심장아

그래도 지금껏 우리 나름대로 아름답게 잘 살아왔듯이

우리들의 마무리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벚꽃 

꽃잎이 자꾸만 바람에 맨발을 대어보며

가장 아름다운 날을 가늠하고 있구나




겨울봄 일기 서(序)




거울을 본다

겨울을 본다 


거울 속에

겨울이 있다 


겨울 속에 

봄이 있다 


겨울과 봄은 하나다

겨울이 봄을 낳는다




2017년 10월 2일           

겨울봄 일기 1



외로우면 언제라도 찾아오라

푸른 언덕에 나란히 앉아서

오래도록 수평선 바라보다가

둥그렇게 수평선이 되어줄께



2017년 10월 3일           

겨울봄 일기 2



큰 수술 앞에 둔 사람 눈에는

아름다운 집 보다

아름다운 묘 터가

더 잘 들어온다

때로는 

묘지 하나가 명작을 완성한다

어쩌면 나도 큰 수술을 받아야할 듯

자꾸만 묘지에 눈길이 간다



2017년 10월 3일           

겨울봄 일기 3



오백 살 먹은 나무 한 그루 아직도 살아있다


맨 처음 태어난 밑둥은 500년을 살았다

그 다음 태어난 가지는 499년을 살았다

그 다음 태어난 가지는 498년을 살았다

작년에 태어난 가지는 2년도 살지 못했고

올봄에 태어난 가지는 돌도 지나지 않았다


오백 년 된 나무는 한 늙은이가 아니다

오백 살 먹은 노인부터 

이제 막 하늘을 기어다니는 아기까지

오손도손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장 아름다운 고향 마을이다


오백 세대의 나무가 아직도 한 동네에 살고있다

오백 살 먹은 나무 한 동네가 아직도 살아있다



2017년 11월 29일           

겨울봄 일기 4



오백 살 먹은 나무에 한 동네가 깃들어 있듯이

내 몸 안에도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한 살의 내가 있고 두 살의 내가 있고

서른 살의 내가 있고 쉰 살의 내가 함께 살아 있다


내 안에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고 있다

내 안에 언제나 살아계신 어머니가 나에게 편지를 쓴다 


미인하다 아들아


나는 평생 치부책에 외상값만 적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다

농약병을 곁에 두고 쓰려고 하니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네 아버지 곁으로 가기로 작정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지는구나


그래도 막상 떠나려고 하니 자꾸만 네가 마음에 걸려 몇 자 적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놈 없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닌갑다

내 잘못으로 너를 아픈 몸으로 낳았으니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구나


다른 놈들은 죄다 짝을 찾아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이 없는데

너만 홀로 두고 떠나려니 자꾸만 네가 눈에 밟히는구나

그래도 나는 이제 네 아버지 곁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말았구나


돌아보면 참으로 바쁘게만 살았구나

너도 잘 알다시피 나는 하루도 쉬지를 못하고 살았구나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믿어지질 않는구나


나도 어린 시절에는 오빠와 언니들 사랑 많이 받고 살았단다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막둥이였으니 참 꿈만 같구나

내가 니 아부지 잘 생긴 얼굴 한 번 보고 반해서 시집오는 바람에 고생문이 열렸지


시집을 오고 보니 마당에 쌓였던 나락가마니들은 사라지고 왕겨만 있었지

니 큰엄마가 목포로 도망가는 바람에 그날부터 내가 큰며느리가 되었지

집에는 쌀 한 톨 없는데 그 많은 시댁 식구들 먹여살리려니 앞날이 캄캄하더구나


그런데 8남매 동생들 입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호랑이 시어머니 입이였단다

배고픈 것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어도 시어머니 눈총과 사사건건 트집잡는데 견딜수가 없었단다

무슨 심보였는지 니 아버지 곁에 있는 꼴을 보지 못하니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냐


니 아부지 하나 보고 시집 왔는데 얼굴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었단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하늘을 볼 수 없으니 8년이나 아이가 생기질 않았지

그러다가 보리 한 되 가지고 빈 몸으로 지급을 나왔지 그래도 나는 그때가 가장 좋았다




2017년 12월 10일            

겨울봄 일기 5




어쩌면 지금부터 쓰는 이 글이 나의 마지막 글이 될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지금부터 쓰는 이 글이 나의 마지막 유언이 될 수 있으리라

지금부터 쓰기 시작하는 이 글이 언제 끝이 날는지 난 아직 모른다


운현궁 마당에 눈이 절반쯤 쌓여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반쯤 남아있고

반은 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났다


땅과 하늘이 함께 만들었을 붉은 홍시

달과 태양이 함께 들어있을 붉은 홍시

말랑말랑한 얼굴 만지며 가는 겨울 찬 바람


검은 대나무 숲에서 걸어 나온 저승사자

겨울로 가는 운현궁 마당을 거닐고 있다

나는 척화비 뒤에 얼마나 더 숨어있을까


2


비행기에서 보니 지구의 테두리가 보인다

높은 하늘에서 보니 삶의 테두리가 보인다

저 바다 건너 저 테두리 건너 무엇이 있을까


불가사리처럼 기어가는 산봉오리들 위로

흰구름 흘러가고 나는 지금 하늘에서 본다

구름이 모여들어 더 넓은 테두리를 만든다


폭설에 묻힌 산마을처럼 구름에 덮인 세상

구름계곡 사이로 언뜻 얼굴 내미는 지붕들

가끔은 바다도 보이고 사람 마을도 보인다


갈수록 눈부신 구름은 두꺼워지고 남극처럼

눈의 세상처럼 빙하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늪

저 눈부시게 빛나는 한낮은 어디로 가고 있나


꿈처럼 조용히 떠 있던 비행기, 구름 속으로 간다

두꺼운 구름을 뚫고 아래 세상으로 내려온다

푸른 겨울 바다에 관탈섬 홀로 떠 있고 한라산이 보인다


3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목요일 오후에 당장 입원하여 수술하자는 말에

입원을 다음 주 월요일로 미루고 내려왔는데

일주일쯤 더 미루어질 것만 같다

오늘 입원한 환자가 다음 주에 수술을 할 것만 같다

나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이 먼저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갑자기 일주일을 더 벌었다

나에게 일주일의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천 영흥도 앞에서 급유선과 충돌한 낚싯배처럼

제주로 가는 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처럼

우리들의 삶에도 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이 상황이 나도 아직 당황스러운데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14년 4월에는 한라병원에서 세월호 생중계를 보았고

2017년 12월에는 서울대학교병원 가는 길에 옆구리에 구멍 난

낚싯배를 보았고 갯벌에서 실종자를 찾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2017년 12월 12일           

겨울봄 일기 6



이 추운 겨울에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꼭 성공 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12월 14일에 입원하여 12월 20일에 수술할 듯

서울대학교는 가지 못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많이 공부하고

꼭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응원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2월 14일           

겨울봄 일기 6



내년 2월 정년퇴임 예정이신 안혁 교수님께서

너무 마음이 급하셔서

서둘러 수술을 결정하신 것은 아닐까?

90년 6월에

나의 심장을 열어 수술을 하셔서

나의 심장에 대하여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거의 28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아뵙고

겨우 심전도 검사만 하였는데

과거의 심장수술 차트와 심전도 검사지만 보시고

바로 당장 입원하여 수술을 하시자고 하시어

나는 아직도 너무 당황스럽다


당초 나의 계획은

정밀검사를 하여

지금 내 심장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한 내년 말쯤에나 수술을 할 생각이었는데...,

더구나 이번에는

대동맥판막까지 인공판막으로 교체할 듯 싶은데..,


불완전하지만 부모님께서 주신 판막을

좀 더 사용하는 것이 좋을 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인공판막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지

고민이 깊어진다

지금도 무리하지 않고 컨디션 조절만 잘 하면

그런대로 일상 생활은 할 수 있는데...,


한라병원에서 진료기록과 영상자료도 가져가고 있으니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좀 더 정밀검사를 한 후에

수술 날짜는 다시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워낙 큰 수술이니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만약에 수술 날짜를 뒤로 미룬다면

안혁 교수님께서 퇴임 후에 가신다는 병원에서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냥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다른 교수님께 하는 것이 좋을까?



2017년 12월 18일           

겨울봄 일기 7



존경하는 김종순 박사님

고마우신 송예진 후배님

눈도 오고 추운데 오셔서

너무나도 큰 힘을 주셔서

감사하고 고맙고 좋습니다


그 고마운 힘으로 꼭 성공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오늘밤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리안느에서 만난

이제하 선생님

이산하 시인님

황인숙 시인님

박철 시인님

기형도 시인 누님

그리고 박경하 가수

...,


덕분에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밤 입니다


이 크고 깊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저는 꼭 반드시 ...,



2017년 12월 19일           

겨울봄 일기 8



세상에는 참 고맙고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세상은 아직도 아름다운 사람들의 길이 참 많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아름다운 나의 길이 보인다

잠시 희망을 잃고 방황하던 나는 이제 일어선다

나의 유서는 먼 다음날 

희망의 편지로 처음부터 다시 써야만 하겠다



2017년 12월 17일            

겨울봄 일기 9

                                          


입원을 하니 환자용 팔찌가 채워졌다

나의 하느님은 선택의 안혁 교수님과

주치의 시가혜 선생님을 배정해 주셨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가는 출입증을 미리 준비하라 하시고

부처님은 천국도 지옥도 부질없으니 윤회를 끊으라 하신다


며칠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잘 쉬니 한결 편안하다

어쩌면 나의 생활방식을 바꾸라고 이런 기회를 준 것 같다


나는 욕심이 너무 많았고 내 몸을 너무 혹사 시켰다

나 홀로 평생학교 만든다고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다

지렛대 하나로 그 많은 시시포스의 바위들을 굴린다고

어깨를 다치고 허리를 다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결국 심장 내막염까지 앓았으니 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다

아직도 아름다운 숲을 구하지 못하여 

본격적으로 평생학교를 추진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가난한 시인들의 창작촌이라도

완성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혹시 내가 완성할 수 없다면 누군가 꼭 완성해주면 좋겠다

내 몸과 영혼이 깃든 그 아름다운 땅이 의미있는 땅으로 남으면 좋겠다


하느님과 부처님은 나만의 하느님과 부처님이 아니어서

늘 바쁘시다 안혁 교수님은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했고

나의 주치의 시가혜 선생님 또한 만나보기 어렵다

금요일 심장초음파 찍고 순환기내과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곧 흉부외과 주치의가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겁니다" 하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어제는 기다리다 간호사님께 전화라도 해보라고

괜히 죄 없는 간호사님만 괴롭힌 것 같다

어제 당직이라 병원에 오셨다는데

늦게라도 연락 하신다더니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좀 더 정밀한 판독이 필요하겠지만

순환기내과에서 엿듣은 말에 의하면

대동맥판막 앞쪽에 근종이 있어 길이 좁아져 있고

심실 사이막이 두꺼워져 있다고 하는 듯 하다

대동맥판막 자체는 그렇게 많이 손상되지 않아서

약간의 피가 역류 하는 듯 하다


모르긴 몰라도 내일은 아마 ct를 찍을 모양이다

Ct 촬영까지 한다는 것은

심장 초음파 만으로는 아직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어서 일 듯

그래서 어쩌면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나에게 서둘러 설명하는 것을 주저하고 계신 듯


하느님은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데 나는 아직 믿음이 부족하다



2017년 12월 18일 

겨울봄 일기 9


 

오늘 오전에 ct 촬영을 한다고

어제 밤부터

금식하고 조영제 먹고

0.9%생리식염 주사를 맞고

간이 심전도 기계를 부착했다

나의 심전도를 보니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내 심장이 참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규칙적으로 쿵 쿵 힘차게 뛰지 못하고

쿠궁 쿠궁 잔파도를 이루며

힘겹게 힘겹게 쥐어짜고 있구나

미안하다

사랑하는 나의 심장아

너를 너무 힘들게 하여 너무나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한없이 사랑하는 나의 하트여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의 심장이여

그렇게 힘들어도 쉬지 않고

끝끝내 잘 뛰어 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다


그런데 복도 보다 병실이 더 열악하다

온도는 너무 높고 습도는 너무 낮다

통풍이 거의 되지 않아 공기도 나쁘다

이러다가 없는 병도 더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건물도 너무 늙었고 시설들도 너무 낡았다

북한과 전쟁놀이 할 돈을 의료사업에 투자하면 좋으련만...,



2017년 12월 21일

겨울봄 일기 10


  

28년 만에 다시 입원 하고 

처음으로 뵙는 안혁 교수님의 

"금요일에 수술 합시다"

라는 말씀을 듣고 돌아서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눈꺼풀은 눈물을 자르지 못한다

눈물은 자꾸만 흘러 넘쳐

눈을 적시고 눈꺼풀을 적시고

온 몸을 눈물 위로 떠오르게 한다

내 마음의 눈물 바다 위로 

떠 올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는

배 한 척


눈물 바다가 바닥을 드러내고 서서히 마르니

몸과 마음이 다시 환해진다

성수를 이마에 바르며

수녀님께서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신다

어떻게 알고 찾아 오셨을까

냉담자인 프란치스코를 어떻게 아시고...,


곁에서 부처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신다


다시 맑아진 마음으로 김은영 간호사님께

나의 마음을 조심히 말씀 드린다

예상 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여 수술이 커질 것 같다는 말씀에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한, 일 년 후에나 수술을 받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잠시 후에 나는 안혁 교수님 방으로 불려가

드디어 

너무나 보고 싶었던 나의 심장을 직접 내 눈으로 본다

심장초음파와 CT와 MRI로 검사한 나의 심장


아, 이런 심장으로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기적 이었구나

좌심실 방이 완전히 없어져버린 나의 심장이여

심실벽이 너무 두꺼워져서 심실 공간이 없어져버린 심장이여

그동안 나는 너무 빈 틈 없이 살아왔구나

그동안 나는 너무 두꺼워진 벽으로 겨우 버텨왔구나

겨우 바늘 구멍만한 통로만 남아있는 나의 좌심실

벽이 너무 두꺼워 입구의 문과 출구의 문까지 망가뜨렸구나

승모판막과 대동맥판막까지 못살게 괴롭혔구나


그래도 사랑하는 나의 심장은 나를 끝까지 살리려고

판막과 심장 작동을 정상적으로 살아있게 하였구나

이렇게 나를 끝끝내 살리려고

나의 심장은 남몰래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사랑하는 나의 하트여

지금껏 너무나 잘 버티어 주어서 눈물나게 고맙구나

이제 하루만 더 버티어주면 너무나 너무나 고맙겠구나


내일이면 그동안 네가 잃어버린 좌심실을 찾아주리라

두꺼운 벽을 깎아내어 너에게 넓은 방을 만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사랑하는 너와 나는 다시 신혼방에 불을 켜리라

우리 함께 두꺼운 겨울을 뚫고 나오는 

노란 눈새기꽃으로 피어나 따뜻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리라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우리들의 아름다운 세상의 복수초 되리라



2017년 12월 26일 

겨울봄 일기 11



수술 전날 밤에 느닷 없이

1천만 원이 입금 되었다

얼굴책에서 소식 듣고

나의 수술비를 꼭 내주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메모와 함께 입금되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다

조건은 단 하나

꼭 살아 돌아와 시를 써달라는 것

나는 이제 시를 써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가난한 시인들을 위하여

작은 방을 하나 만들어야만한다

평생학교에 작은 시인의 방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 방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준 그 시인의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시의 꽃이 피어나리라

시인은 다시 살아났고 시는 결국 죽지 않으리라



2017년 12월 29일

겨울봄 일기 12



나는 2017년에 마지막 부활을 하였다

1990년 6월에 첫번째 부활을 하였으나

나는 그동안 잘 살지 못했다

이제 나에게 마지믹 기회가 왔다

이번 부활은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부활이 되리라

이제는 너무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의 발걸음으로 끝까지 가리라

그 끝에서 나는 환하게 웃으며 저 세상으로 가리라


여러 좋은 님들의 응원 덕분으로

예상보다 훨씬 빨리 회복 되었다

오늘 당장 퇴원해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며칠 더 지켜보기로 했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 표도 여의치 않고

해서

2018년 1월 1일 퇴원하기로 했다

1월1일부터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나의 인생 후반전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여러 좋은 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7년 12월 30일

생명일기1



나는 아직 나의 심장이 낯설다

나는 아직 나의 피가 낯설다

나는 아직 나의 두근거림이 낯설다


내가 처음 받은 진단명은

대동맥판막하협착증 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을 위해

나의 심장을 자세히 보니

비후성 심근증에 더 가깝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병, 심근병증


나는 이 병을 너무 방치하여

대동맥판막이 망가지고 승모판까지 다쳤다고 한다

나는 결국 대동맥판막을 기계 판막으로 바꾸고

승모판은 다행히 성형수술로 치료가 되었다

이 병의 근본 원인인 좌심실 벽 또한 성형수술을 하였다

나의 심장은 이렇게 두 건의 성형과 기계 판막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나의 심장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오순도손 정답게 살아가야만 하겠다


내 몸에서 공작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2017년 12월 31일

생명일기 2



서울대학교병원 7층 복도에서

봄의 소리 왈츠가 울려퍼진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봄의 소리를 끌고 간다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자신도 저렇게 봄을 밀고 갈 수 있을까

그런 간절한 마음들이

면회실에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봄의 링거액은 하늘에서 내리고

겨울의 피고름들이

건반을 쓸어내며 끌고 간다


너무 일찍 나타난 종달새 한 마리

7층 복도를 잠시 기웃거리다가

남산타워가 보이는 저 쪽으로 날아간다

내가 가장 아름답게 살았던 곳으로  날아간다




2017년 12월 31일    

생명일기 3



사람의 혈관 총 길이는 동맥, 정맥, 모세혈관을 합쳐서 

약 120,000km로서 지구를 3바퀴 정도 감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멀리까지 피를 보내려면

심장에서 얼마나 높은 압력으로 펌프질을 해야만 할까


몸으로 가는 입구가 거의 다 막혀 있어도

저 먼 끝까지 피를 보내려면

심장은 또 얼마나 더 높은 압력으로 펌프질을 해야만 할까


그래도 사랑하는 나의 심장은

끝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사랑하였으니

이 얼마나 깊고 순정한 사랑이더냐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끝까지 택배사업을 그만두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 사랑의 직업이더냐


사랑의 배달부는 아무리 먼 길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배달한다

나도 이제는 나의 사랑에게 긴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낸다



2017년 12월 31일

생명일기 4



서울대학교병원 1층에

후원인의 거리가 있다

입원환자들이 새벽마다 불려가

제 가슴 속을 들여다보는

영상의학과 입구 벽에

좋은 말씀들이 적혀있다

내 가슴 속 벽에도

후원인의 거리가 있다

나를 살려주신 많은 분들의

좋은 말씀들이 나를 일깨운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5



바퀴 달린 폴대나무가 걸어간다

겨울나무가 겨울나무를 붙잡고 걸어간다

기둥이 휘어질 듯 휘청휘청 거리며

겨울이 겨울나무에 매달려 건너간다


바퀴 달린 나무들이 복도를 걸어간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주렁주렁 희망을 달고 바퀴로 걸어간다

포도당주머니들과

코로 먹는 영양제들과

산소통과 혈액주머니와

나무 하나로는 감당하지 못해

곁에서 또 다른 나무가 함께

보조를 맞추며 걸어간다

공급용량을 철저하게 조절해야만 하는지

링거주사액 중간에 정밀 타이머가 줄을 물고 있다

저 많은 잎과 열매들도

이미 걷기 시작하였으니

떨켜를 켜고 있으리라

나의 겨울 나무처럼

가볍게

물 한 잔 손수건 한 장 싣고

팔랑팔랑 날개 펼치는 겨울 나무가 되리라


나는 이제 막 겨울 끝에서 겨울의 시작으로 접어든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6



1990년 6월 8일 1차 심장 수술 후 퇴원 할 때

나는 가장 먼저 실크 스카프를 준비 했었다

가슴 가운데를 가르며 흐르는 강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 속으로 흐르는 강물소리는 폭포를 이루었다


2017년 12월 22일 2차 심장 수술 후 퇴원할 때

나는 가장 먼저 와파린과 나의 길을 챙긴다

2018년 1월 1일 병원 문을 나서며

나는 이제 스스로 강으로 흐르다가 산으로 가야만 한다


나는 이제 평생 19시에 와파린을 먹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평생 청국장을 먹어서는 안된다

나에게는 이제 비타민K가 독이다 키위도 독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평생 묽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아, 하늘은 맑고 강물은 푸르다

저 맑은 하늘을 가슴 가득 끌어들인다

저 푸른 강물을 가슴 가득 채워들인다

나는 이제 평생 이렇게 묽은 가슴으로 살아야만 한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7



숨을 크게 들이 마시세요

숨 참으세요

자, 찍어요

하나 둘 셋 찰칵


이제 요령이 좀 생기고

언제 가야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찍을 수 있을 지

터득 할 즈음

퇴원을 하게 된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와 같아서

길이 좀 보이고

세상이 좀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삶도 졸업을 한다


그러니 좀 서툴러도 미워하지 말라

그러니 좀 몰라도 바보 취급 하지 말라

서툴고 모르는 것들이 우리들의 삶이다

오늘도 나는 서툴고 모르는 것들 속에서

잘 흔들리며 잘 넘어지며 잘 살고 있다


오늘 아침 나는 병원에서

떡국을 맛있게 먹고 하늘로 간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8



꿈처럼 새해를 맞는다

작년의 닭은 보이지 않고

올해의 개가 컹컹 짖는다


꿈처럼 하늘을 날아간다

작년의 구름은 보이지 않고

올해의 구름이 날개를 단다


꿈처럼 한라산을 맞는다

작년의 산은 보이지 않고

올해의 산이 날개를 펼친다



2018년 1월 2일

생명일기 9



2인실에서 4인실로

4인실에서 수술실로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2인실로

2인실에서 6인실로


서울대학교병원은 걸어갈 수만 있으면 퇴원 시키는 모양이다


수술실에서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수술용 전기톱으로

내 가슴을 갈랐으리라

갈비뼈를 양쪽으로 벌리고

내 심장을 만졌으리라


앞으로 2개월은 더 기다려야

나의 갈라진 흉골이 붙을 것이라 한다


다시 서귀포 평생학교로는 가지 못하고

제주시 외도에서 우선 1개월을 보내기로 했다

한라병원에도 가야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도 가야해서

제주시의 조용한 1인실에서 요양하기로 했다



2018년 1월 2일

생명일기 10



내 심장병의 근본 원인이었던

두꺼워진 좌심실 벽을 잘라내고

2차 파급으로 야기된

승모판막과 대동맥판막의 변형

승모판막은 성형수술로 마무리하였으나

대동맥판막은 기계판막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바꾼 기계판막이

앞으로의 내 삶을 많이 구속할 것이다

조직판막으로 바꾸었다면

그렇게 구속하지는 않겠지만

10년~20년 사이에

다시 수술하여 바꾸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계판막으로 바꾸었다


기계판막의 가장 큰 단점은

혈전 발생 가능성에 있다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평생 항응고제를 먹어야만 한다


정상보다 2배가량 묽은 피로 살아야만 한다

혈전 관리에 실패하면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

그 항응고제가 와파린(쿠마딘)인데

그 반대로 응고를 도와주는 것이 비타민 K이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와파린과 비타민 K의 적절한 조화가 결정할 것이다




2018년 1월 4일

생명일기 13



1월 8일에 서울 가려면

미리 연습을 해야한다

문 밖으로 나간다

월대천으로 간다

알작지로 간다

소나무도 팽나무도 잘 있다

할머니 한 분 유모차 끌고

꽃 심으려고 

외도물길 20리 걸어간다

월대천 은어들이

물 속에 누워있는 나무들을 흔들어 깨운다




2018년 1월 8일

생명일기 19



겨울비 내린다

나는 이제 안다

저 구름 뒤를 안다

저 구름 뒤

환한 세상

을 안다

비행기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두꺼운 구름 뚫고

푸른 히늘이 된다

내 몸에 

겨울비 내린다

나는 이제 안다

이 구름 뒤

푸른 하늘을 안다

깨끗한 구름이 깊다



2018년 1월 13일

평생 일기 26



제주도에는 신구간(新舊間) 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제주도 사람들의 이사하는 기간을 말한다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육지와 달리 일정한 기간에 이사를 한다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로 보통 일주일이 된다

이 기간에 이사나 집수리 등 여러 가지 금지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기간은 이른바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교대하는 과도기간으로 지상의 모든 신격(神格)이 천상에 올라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내려오기까지의 공백 기간이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지상에 신령이 없는 것으로 관념되고 있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는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한 평소에 금기되었던 일들을 하여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한다


이 기간에 하는 일은 이사를 비롯하여 부엌·문·변소, 외양간고치기, 집 중창(집의 일부분을 고침)·울타리 안에서의 흙 파는 일, 울타리 돌담 고침, 나무 베기, 묘소 수축 등 다양하다 만일 아무 때나 이러한 일을 하면 동티가 나서 화를 입는다 한다


신구간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마음 놓고 하는 기간인데, 근래 도시지역에서는 이사하는 일이 강조되어 주로 이사하는 기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은 이 기간에 일제히 이사를 하므로 거리마다 가고 오는 이삿짐을 많이 보게 된다


2018년 신구간은 정확하게 2018년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를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정확하게 그 날짜를 지키지는 않고

신구간 부근 날짜 중에 자신에게 맞는 날을 선택하여 이사를 한다

제주도의 1월은 이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부산할 듯하다



2018년 1월 14일

평생 일기 27



사람들은 왜 심장이

왼쪽 가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대동맥 때문일 것이다

가운데 있는 심장에서 나오는 큰 강물이

왼쪽부터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부터 엉덩이까지 대동맥이 찢어져서

대동맥을 통째로 인공 대동맥으로 바꾸셨다는

그분은 지금도 6개월째 병원에 있으리라


나의 계획은 올해 연말쯤 수술을 할 예정 이었다

한 1년쯤 내 심장을 들여다보며 

가장 적당한 수술시점을 찾아 수술할 예정 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년 연말

28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아간 안혁 교수님께 붙들려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정밀검사를 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돌연사, 급사할 확률이 많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은 한 달 이었다

2017년 12월 14일에 입원을 하고

2017년 12월 22일에 수술을 하고

2018년 01월 01일에 퇴원을 하고

2018년 01월 08일에 외래로 가고

나의 심장은 이제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다시 대방어를 잡기 위하여

자리돔을 잡기 시작한다 고도리(고등어 새끼)를 잡기 시작한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2018년 1월 20일

평생 일기 36



2014년 4월 나는 한라병원 병실에서

침몰하는 세월호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 안에 염증이 생겨 패혈증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패혈증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


나는 다행히 침몰하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

패혈증의 원인 이었던 심내막염 또한 처음 알았다

멀쩡한 심장에는 잘 생기지 않는 병이라고 했다

나처럼 심장에 한 번 칼을 댄 사람에게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주로 치아쪽으로 침투한 균이 심장판막에 달라붙어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포도알균이 심장판막을 뜯어먹는 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핏줄을 타고 다니며 다른 장기들과

뇌에까지 염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천만 다행으로 심내막염과 패혈증 치료가 잘 되었다


치료하면서 심장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았다

감염내과와 심장내과와 흉부외과에서 함께 보았다

심내막염과 패혈증은 치료가 되었지만

심장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또한 알았다


나는 다시 1990년 6월로 돌아갔다

수술실에서 바로 영안실로 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나의 심판의 날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유고 시집 한 권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고 정리를 서둘러 마치고 누군가에게 발송하려고 하였다


나는 또한 천만다행으로 수술도 성공했다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2018년 1월 23일             

평생 일기 41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의 거시기에서 출발하여

어머니의 머시기로 들어가 만났으리라

제우스의 거시기 끝에서 출발하여

다나에의 머시기로 들어가 벽을 뚫었으리라


우리들은 모두 1등으로 골인 한 기억이 있다

3억 명을 따돌리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달렸던가

오직 너 하나 만나기 위하여 얼마나 꼬리를 흔들었던가

우리들은 모두 얼마나 용감하고 빠른 전사였던가




메두사의 목을 자르기 위해 


나는 얼마나 깊은 밤을 지나와야 했는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는 또한 얼마나 깊은 바다를 헤엄쳐야 했는가




나는 이제 다시 나의 거시기가 꿈틀거린다


나는 이제 다시 너의 머시기가 그리워진다


나는 이제 다시 제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하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포세이돈을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진정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오랜만에 내가 가야할 지도나 그려볼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대와 함께 춤추는 몽유도원도나 그려볼까




아, 내 안에 숨어있던 페르세우스가 먼저 뛰쳐나간다









2018년 1월 26일  ·           

공유 대상: 전체 공개                                          













평생학교 50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를 신구간이라고 한다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 2018년 기준)


이 기간은 작년 한 해 동안 근무했던 1만 8천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서 업무보고를 하기 때문에


이 지상에는 신들이 없는 기간 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동안 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못했던 일들을 한다


그 대표적인 일이 바로 이사다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입춘을 전후하여 대대적으로 굿을 한다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내려오는 신들을 맞이하는 행사다


탐라국 입춘굿은 설문대할망을 비롯하여 소별왕과 대별왕


자청비와 영등할망 그리고 문도령과 정수남이 등등


1만 8천 신들을 성대하게 맞이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탐라국 입춘굿을 지켜보면 제주도는 아직도 신들의 땅이다




신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땅에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하고 가슴아픈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현대사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3.1운동에서 시작한다


일본에게 빼앗겼던 주권을 우리 손으로 찾아오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에게 다시 한 번 넘겨주어야만 했던 슬픈 과정에서


제주도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짓밟히는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이 사건을 제주4.3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4.3이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건을 제주 3.1절 발포사건 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사건은 간단하지 않다 그 기간 또한 짧지 않다


제주3.1절 발포사건을 시작으로


제주4.3항쟁을 거쳐 6.25전쟁 예비검속까지를 아우르는


길고도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풀기 어려운 사건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 전체의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서


해결 방법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하게 이름붙인 것처럼


4.3을 앞세우면 6.25전쟁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분단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과 역사적 접립이 쉽지 않다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관점을 지향한다면


3.1절 발포사건을 전면에 내세워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4.3을 앞세우면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3.1절 발포사건을 전면에 앞세우면 피해자일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따뜻한 품성을 지녀서 피해자편에서 응원한다




관덕정 앞에서 그날 총을 맞고 쓰러진 


우리들의 3.1정신이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자청비를 알고 있다 가믄장아기를 알고 있다


삼승할망을 알고 있다 바리공주를 알고 있다


우리들의 3.1정신은 다시 일어나 촛불을 켜고 꽃으로 피어나리라




신을 닮은 제주 해녀들이 오늘도 바다 속으로 헤엄쳐들어간다










2018년 1월 31일  ·           

공유 대상: 전체 공개                                          













평화와 생명 58




2018년 1월 31일 수요일이다


무술년 올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은 나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 주고싶다


작년 12월 갑자기 시작된 입원과 수술 그리고 부활


이렇게 나는 정신없이 12월과 1월을 지나


입춘 같은 2월 앞에 서 있다




제주도에서는 2월 2일부터 탐라국입춘굿을 한다


나도 조촐하게 평생학교 입춘굿을 해야겠다


나의 봄을 맞이하고 평생학교에 봄을 파종해야겠다




어제는 나의 심장을 수술하신 안혁 교수님을 만났다


나의 심장 속 심실벽에서 깎아낸 상당히 많은 살점을 보여주셨다


또한 망가진 대동맥판막 사진도 보여주셨다


두꺼워진 승모판막에서 깎아낸 조각도 보여주셨다


그리고 지금 내 심장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기계판막 모형도 보여주셨다


참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결과가 좋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앞으로 6개월은 지나야 안정이 될거라고 말씀하셨다


혈전 생성 방지를 위해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처방해주셨다


그리고 강심제 디곡신과 맥박 안정제 콩브럭정도 처방해주셨다


또한 너무 심하게 아프면 가끔 먹으라며 진통제도 처방해주셨다




그렇겠지 암, 그렇고 말고


한 군데도 아니고 심장 속을 온통 헤집어 놓있으니


적어도 한 6개월은 되어야 그나마 좀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겠지


그래도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 위험하다는 돌연사를 극적으로 극복하고 


이렇게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가


나는 오늘 나를 위한 촛불을 켜고 조촐한 입춘굿을 해야만 하겠다






2017년 12월 30일

생명일기1




나는 아직 나의 심장이 낯설다

나는 아직 나의 피가 낯설다

나는 아직 나의 두근거림이 낯설다


내가 처음 받은 진단명은

대동맥판막하협착증 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을 위해

나의 심장을 자세히 보니

비후성 심근증에 더 가깝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병, 심근병증


나는 이 병을 너무 방치하여

대동맥판막이 망가지고 승모판까지 다쳤다고 한다

나는 결국 대동맥판막을 기계 판막으로 바꾸고

승모판은 다행히 성형수술로 치료가 되었다

이 병의 근본 원인인 좌심실 벽 또한 성형수술을 하였다

나의 심장은 이렇게 두 건의 성형과 기계 판막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나의 심장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오순도손 정답게 살아가야만 하겠다


내 몸에서 공작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2017년 12월 31일

생명일기 2



서울대학교병원 7층 복도에서

봄의 소리 왈츠가 울려퍼진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봄의 소리를 끌고 간다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자신도 저렇게 봄을 밀고 갈 수 있을까

그런 간절한 마음들이

면회실에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봄의 링거액은 하늘에서 내리고

겨울의 피고름들이

건반을 쓸어내며 끌고 간다


너무 일찍 나타난 종달새 한 마리

7층 복도를 잠시 기웃거리다가

남산타워가 보이는 저 쪽으로 날아간다

내가 가장 아름답게 살았던 곳으로  날아간다





2017년 12월 31일    

생명일기 3



사람의 혈관 총 길이는 동맥, 정맥, 모세혈관을 합쳐서 약 120,000km로서 지구를 3바퀴 정도 감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멀리까지 피를 보내려면

심장에서 얼마나 높은 압력으로 펌프질을 해야만 할까


몸으로 가는 입구가 거의 다 막혀 있어도

저 먼 끝까지 피를 보내려면

심장은 또 얼마나 더 높은 압력으로 펌프질을 해야만 할까


그래도 사랑하는 나의 심장은

끝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사랑하였으니

이 얼마나 깊고 순정한 사랑이더냐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끝까지 택배사업을 그만두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 사랑의 직업이더냐


사랑의 배달부는 아무리 먼 길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배달한다

나도 이제는 나의 사랑에게 긴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낸다




2017년 12월 31일

생명일기 4




서울대학병원 1층에

후원인의 거리가 있다

입원환자들이 새벽마다 불려가

제 가슴 속을 들여다보는

영상의학과 입구 벽에

좋은 말씀들이 적혀있다

내 가슴 속 벽에도

후원인의 거리가 있다

나를 살려주신 많은 분들의

좋은 말씀들이 나를 일깨운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5



바퀴 달린 폴대나무가 걸어간다

겨울나무가 겨울나무를 붙잡고 걸어간다

기둥이 휘어질 듯 휘청휘청 거리며

겨울이 겨울나무에 매달려 건너간다


바퀴 달린 나무들이 복도를 걸어간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주렁주렁 희망을 달고 바퀴로 걸어간다

포도당주머니들과

코로 먹는 영양제들과

산소통과 혈액주머니와

나무 하나로는 감당하지 못해

곁에서 또 다른 나무가 함께

보조를 맞추며 걸어간다

공급용량을 철저하게 조절해야만 하는지

링거주사액 중간에 정밀 타이머가 줄을 물고 있다

저 많은 잎과 열매들도

이미 걷기 시작하였으니

떨켜를 켜고 있으리라

나의 겨울 나무처럼

가볍게

물 한 잔 손수건 한 장 싣고

팔랑팔랑 날개 펼치는 겨울 나무가 되리라


나는 이제 막 겨울 끝에서 겨울의 시작으로 접어든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6



1990년 6월 8일 1차 심장 수술 후 퇴원 할 때

나는 가장 먼저 실크 스카프를 준비 했었다

가슴 가운데를 가르며 흐르는 강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 속으로 흐르는 강물소리는 폭포를 이루었다


2017년 12월 22일 2차 심장 수술 후 퇴원할 때

나는 가장 먼저 와파린과 나의 길을 챙긴다

2018년 1월 1일 병원 문을 나서며

나는 이제 스스로 강으로 흐르다가 산으로 가야만 한다


나는 이제 평생 19시에 와파린을 먹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평생 청국장을 먹어서는 안된다

나에게는 이제 비타민K가 독이다 키위도 독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평생 묽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아, 하늘은 맑고 강물은 푸르다

저 맑은 하늘을 가슴 가득 끌어들인다

저 푸른 강물을 가슴 가득 채워들인다

나는 이제 평생 이렇게 묽은 가슴으로 살아야만 한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7




숨을 크게 들이 마시세요

숨 참으세요

자, 찍어요

하나 둘 셋 찰칵


이제 요령이 좀 생기고

언제 가야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찍을 수 있을 지

터득 할 즈음

퇴원을 하게 된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와 같아서

길이 좀 보이고

세상이 좀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삶도 졸업을 한다


그러니 좀 서툴러도 미워하지 말라

그러니 좀 몰라도 바보 취급 하지 말라

서툴고 모르는 것들이 우리들의 삶이다

오늘도 나는 서툴고 모르는 것들 속에서

잘 흔들리며 잘 넘어지며 잘 살고 있다


오늘 아침 나는 병원에서

떡국을 맛있게 먹고 하늘로 간다



2018년 1월 1일

생명일기 8



꿈처럼 새해를 맞는다

작년의 닭은 보이지 않고

올해의 개가 컹컹 짖는다


꿈처럼 하늘을 날아간다

작년의 구름은 보이지 않고

올해의 구름이 날개를 단다


꿈처럼 한라산 맞는다

작년의 산은 보이지 않고

올해의 산이 날개를 펼친다




2018년 1월 2일

생명일기 9



2인실에서 4인실로

4인실에서 수술실로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2인실로

2인실에서 6인실로


서울대학병원은 걸어갈 수만 있으면 퇴원 시키는 모양이다


수술실에서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수술용 전기톱으로

내 가슴을 갈랐으리라

갈비뼈를 양쪽으로 벌리고

내 심장을 만졌으리라


앞으로 2개월은 더 기다려야

나의 갈라진 흉골이 붙을 것이라 한다


다시 서귀포 평생학교로는 가지 못하고

제주시 외도에서 우선 1개월을 보내기로 했다

한라병원에도 가야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도 가야해서

제주시의 조용한 1인실에서 요양하기로 했다




2018년 1월 2일

생명일기 10



내 심장병의 근본 원인이었던

두꺼워진 좌심실 벽을 잘라내고

2차 파급으로 야기된

승모판막과 대동맥판막의 변형

승모판막은 성형수술로 마무리하였으나

대동맥판막은 기계판막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바꾼 기계판막이

앞으로의 내 삶을 많이 구속할 것이다

조직판막으로 바꾸었다면

그렇게 구속하지는 않겠지만

10년~20년 사이에

다시 수술하여 바꾸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계판막으로 바꾸었다


기계판막의 가장 큰 단점은

혈전 발생 가능성에 있다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평생 항응고제를 먹어야만 한다


정상보다 2배가량 묽은 피로 살아야만 한다

혈전 관리에 실패하면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

그 항응고제가 와파린(쿠마딘)인데

그 반대로 응고를 도와주는 것이 비타민 K이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와파린과 비타민 K의 적절한 조화가 결정할 것이다



2018년 1월 4일

생명일기 13



1월 8일에 서울 가려면

미리 연습을 해야한다

문 밖으로 나간다

월대천으로 간다

알작지로 간다

소나무도 팽나무도 잘 있다

할머니 한 분 유모차 끌고

꽃 심으려고 

외도물길 20리 걸어간다

월대천 은어들이

물 속에 누워있는 나무들을 흔들어 깨운다





2018년 1월 8일

생명일기 19



겨울비 내린다

나는 이제 안다

저 구름 뒤를 안다

저 구름 뒤

환한 세상

을 안다

비행기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두꺼운 구름 뚫고

푸른 히늘이 된다

내 몸에 

겨울비 내린다

나는 이제 안다

이 구름 뒤

푸른 하늘을 안다

깨끗한 구름이 깊다



2018년 1월 11일  ·           

평생 일기 22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부터 거칠게 부는 바람소리

긴급재난문자가 온다

세상은 너무 춥고 눈이 많다

방에 있는 텔레비젼 안에는

어느 아나운서 딸과 아버지의 김천 여행 중

연화지를 지나 포도 밟기가 한창이다

어제 밤에 본 마추픽추가 자꾸만 겹친다

트레킹 노트, 세상을 걷다

잉카 트레일

마추픽추 트레일, 페루, 안데스가 겹친다

지금 제주시의 온도는 0°C

길은 얼기 시작하고

빙판에서는 자꾸만 미끄러지기 시작하리라


하지만 나는 병을 핑계로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다

김천과 마추픽추를  가슴에 담으며 속담을 생각한다

화면 속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은

마티나스 래비츠키 아코디언 콘서트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이제 막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고 있다


※ 다음을 보고 속담 10개 중  7개 이상 맞추시면 100세까지는 치매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1. ㄴㅋ ㄱ 석 ㅈ

2. ㄷㅁ 삼 ㅋ ㄱ ㅆ ㅁ 밷 ㄴㄷ

3. ㄷ 로 ㅈ ㄱ ㅁ 로 ㅂ ㄴ 다

4. ㄸ ㅈ ㄱ ㅎ ㅇ 치기

5. ㅁ ㄹ ㅎ ㄴ ㅇ 날 ㅂ ㄹ

6. ㅂ ㅂ ㄷ ㅂㄲ ㅇ 더 ㅋ ㄷ

7. ㅂ 주 ㄱ ㅇ ㅈ 다

8. ㅂ ㅈ ㅈ 도 ㅁ ㄷ ㅁ 낫다

9. ㅅ ㄱ 이 ㅁ ㅇ 면 ㅂ 가 ㅅ ㅇ ㄹ 간다

10. ㅅ ㄷ ㄱ 삼 ㄴ ㅇ ㅁ ㅍ ㅇ 을 읊 ㄴ ㄷ



2018년 1월 11일  ·           

                             

평생 일기 23



눈 눈이 오신다

한 없이 오신다

쉼 없이 오신다

끝 없이 오신다


발자국을 지운다

길을 지운다

세상을 지운다

후후

지우개똥을 불어가며

시간을 지운다


눈님이 오신다

하늘이 오신다

하늘이 지운다

흰 눈이 검은 땅을 덮는다


고드름 창살이 가둔다

창살 안에서

당신의 숨소리 듣는다

하늘의 숨소리 듣는다


당신의 신발이 보인다



2018년 1월 12일  ·           

                                 

평생 일기 25



오늘은 항응고검사를 해야 한다

1월 8일 1.50 가 나와서 3mg 씩 먹고 있다

항응고치료실에서 오늘 검사를 하라고 했다

한라병원 대신에 개인병원에 가기로했다

가까운 내과의원에서 검사가 가능 하다고 했다

3일째 눈이 내리고 길이 얼었다

오정헌 내과로 걸어서 갔다

간호사 말과 달리 의사는 안된다고 한다

대신 심장 전문병원을 소개해 준다

버스를 타고 조대경 안심내과로 간다

눈은 쉬지 않고 내리고 길은 미끄럽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여행하니 좋다

작년에 개원 했다는 심장 전문 병원이 호텔같다

세상이 참 아름답고 친절하다

검사결과 2.03이 나왔다

와파린 용량을 어떻게 바꿀지 아직은 모른다

앞으로 조대경 안심내과를 이용해야겠다

오늘 오전 참 아름답고 의미있는 여행을 했다

세상은 춥고 미끄러워도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다

오후에는 서울에서 전화가 오리라

내가 전화하면 언제나 통화 중 이지만

필요 할 때마다 전화를 해주니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2018년 1월 13일  ·           

평생 일기 26



제주도에는 신구간(新舊間) 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제주도 사람들의 이사하는 기간을 말한다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육지와 달리 일정한 기간에 이사를 한다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로 보통 일주일이 된다

이 기간에 이사나 집수리 등 여러 가지 금지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기간은 이른바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교대하는 과도기간으로 지상의 모든 신격(神格)이 천상에 올라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내려오기까지의 공백 기간이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지상에 신령이 없는 것으로 관념되고 있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는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한 평소에 금기되었던 일들을 하여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한다


이 기간에 하는 일은 이사를 비롯하여 부엌·문·변소, 외양간고치기, 집 중창(집의 일부분을 고침)·울타리 안에서의 흙 파는 일, 울타리 돌담 고침, 나무 베기, 묘소 수축 등 다양하다 만일 아무 때나 이러한 일을 하면 동티가 나서 화를 입는다 한다


신구간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마음 놓고 하는 기간인데, 근래 도시지역에서는 이사하는 일이 강조되어 주로 이사하는 기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은 이 기간에 일제히 이사를 하므로 거리마다 가고 오는 이삿짐을 많이 보게 된다


2018년 신구간은 정확하게 2018년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를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정확하게 그 날짜를 지키지는 않고

신구간 부근 날짜 중에 자신에게 맞는 날을 선택하여 이사를 한다

제주도의 1월은 이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부산할 듯하다




2018년 1월 13일  ·           

                        

평생 일기 26



제주도에는 신구간(新舊間) 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제주도 사람들의 이사하는 기간을 말한다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육지와 달리 일정한 기간에 이사를 한다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로 보통 일주일이 된다

이 기간에 이사나 집수리 등 여러 가지 금지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기간은 이른바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교대하는 과도기간으로 지상의 모든 신격(神格)이 천상에 올라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내려오기까지의 공백 기간이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지상에 신령이 없는 것으로 관념되고 있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는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한 평소에 금기되었던 일들을 하여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한다


이 기간에 하는 일은 이사를 비롯하여 부엌·문·변소, 외양간고치기, 집 중창(집의 일부분을 고침)·울타리 안에서의 흙 파는 일, 울타리 돌담 고침, 나무 베기, 묘소 수축 등 다양하다 만일 아무 때나 이러한 일을 하면 동티가 나서 화를 입는다 한다


신구간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마음 놓고 하는 기간인데, 근래 도시지역에서는 이사하는 일이 강조되어 주로 이사하는 기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은 이 기간에 일제히 이사를 하므로 거리마다 가고 오는 이삿짐을 많이 보게 된다


2018년 신구간은 정확하게 2018년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를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정확하게 그 날짜를 지키지는 않고

신구간 부근 날짜 중에 자신에게 맞는 날을 선택하여 이사를 한다

제주도의 1월은 이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부산할 듯하다



2018년 1월 14일  ·           

                                     

평생 일기 27




사람들은 왜 심장이

왼쪽 가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대동맥 때문일 것이다

가운데 있는 심장에서 나오는 큰 강물이

왼쪽부터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부터 엉덩이까지 대동맥이 찢어져서

대동맥을 통째로 인공 대동맥으로 바꾸셨다는

그분은 지금도 6개월째 병원에 있으리라


나의 계획은 올해 연말쯤 수술을 할 예정 이었다

한 1년쯤 내 심장을 들여다보며 

가장 적당한 수술시점을 찾아 수술할 예정 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년 연말

28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아간 안혁 교수님께 붙들려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정밀검사를 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돌연사, 급사할 확률이 많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은 한 달 이었다

2017년 12월 14일에 입원을 하고

2017년 12월 22일에 수술을 하고

2018년 01월 01일에 퇴원을 하고

2018년 01월 08일에 외래로 가고

나의 심장은 이제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다시 대방어를 잡기 위하여

자리돔을 잡기 시작한다 고도리(고등어 새끼)를 잡기 시작한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2018년 1월 20일  ·           

                                       

평생 일기 36



2014년 4월 나는 한라병원 병실에서

침몰하는 세월호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 안에 염증이 생겨 패혈증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패혈증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


나는 다행히 침몰하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

패혈증의 원인 이었던 심내막염 또한 처음 알았다

멀쩡한 심장에는 잘 생기지 않는 병이라고 했다

나처럼 심장에 한 번 칼을 댄 사람에게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주로 치아쪽으로 침투한 균이 심장판막에 달라붙어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포도알균이 심장판막을 뜯어먹는 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핏줄을 타고 다니며 다른 장기들과

뇌에까지 염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천만 다행으로 심내막염과 패혈증 치료가 잘 되었다


치료하면서 심장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았다

감염내과와 심장내과와 흉부외과에서 함께 보았다

심내막염과 패혈증은 치료가 되었지만

심장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또한 알았다


나는 다시 1990년 6월로 돌아갔다

수술실에서 바로 영안실로 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나의 심판의 날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유고 시집 한 권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고 정리를 서둘러 마치고 누군가에게 발송했다


나는 또한 천만다행으로 수술도 성공했다

내가 보냈던 원고의 운명은 4월이 되어야 결정될 것이다

그 원고와 관계 없이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2018년 1월 23일 

평생 일기 41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의 거시기에서 출발하여

어머니의 머시기로 들어가 만났으리라

제우스의 거시기 끝에서 출발하여

다나에의 머시기로 들어가 벽을 뚫었으리라


우리들은 모두 1등으로 골인 한 기억이 있다

3억 명을 따돌리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달렸던가

오직 너 하나 만나기 위하여 얼마나 꼬리를 흔들었던가

우리들은 모두 얼마나 용감하고 빠른 전사였던가


메두사의 목을 자르기 위해 

나는 얼마나 깊은 밤을 지나와야 했는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는 또한 얼마나 깊은 바다를 헤엄쳐야 했는가


나는 이제 다시 나의 거시기가 꿈틀거린다

나는 이제 다시 너의 머시기가 그리워진다

나는 이제 다시 제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하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포세이돈을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진정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오랜만에 내가 가야할 지도나 그려볼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대와 함께 춤추는 몽유도원도나 그려볼까


아, 내 안에 숨어있던 페르세우스가 먼저 뛰쳐나간다



2018년 1월 14일                                         

평생 일기 27



사람들은 왜 심장이

왼쪽 가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대동맥 때문일 것이다

가운데 있는 심장에서 나오는 큰 강물이

왼쪽부터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부터 엉덩이까지 대동맥이 찢어져서

대동맥을 통째로 인공 대동맥으로 바꾸셨다는

그분은 지금도 6개월째 병원에 있으리라


나의 계획은 올해 연말쯤 수술을 할 예정 이었다

한 1년쯤 내 심장을 들여다보며 

가장 적당한 수술시점을 찾아 수술할 예정 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년 연말

28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아간 안혁 교수님께 붙들려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정밀검사를 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돌연사, 급사할 확률이 많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은 한 달 이었다

2017년 12월 14일에 입원을 하고

2017년 12월 22일에 수술을 하고

2018년 01월 01일에 퇴원을 하고

2018년 01월 08일에 외래로 가고

나의 심장은 이제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다시 대방어를 잡기 위하여

자리돔을 잡기 시작한다 고도리(고등어 새끼)를 잡기 시작한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2018년 1월 14일  ·           

평생 일기 28



내가 좋아하는 월대천은 

제주올레길과

외도물길20리와

절로가는길이 함께한다


월대천 아래 외도 다리를 건너면 알작지가 나오고

다리 아래로 곧 바로 지나가면

연대마을 방파제까지 이어지는 해안산책로가 나온다

오늘은 연대마을까지 해안 산책로를 걸어간다


노인과 바다 횟집을 지나면 대원암이 나온다

세계유일의 해수관세음보살 와불로 유명하다

주지가 꿈을 꾸었는데 바로 앞 바다의 돌들이

관세음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 나한상

사자, 코끼리, 토끼 등으로 나투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

내 눈에는 저 무심한 바위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랑은 이제 언제 어디서라도 자꾸만 보인다



2018년 1월 15일 

평생 일기 29


오늘은 내도 알작지를 지나

이호해수욕장까지 갔다가

보리밭길과 갈대밭과

징검다리 건너 돌아왔다

내가 좋아 하는 알작지는

많이 변했다

해안도로가 새로 뜷렸다

길 확장공사 때문에

알작지의 많은 몽돌들이

길에 묻히고 말았다

그들을 마냥 비판 할 수 만은 없다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편함을 강요할 수는 없다

꼭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해안도로를 걸어보니

좋은 점도 있다

이호해수욕장이 참 가까워졌다




2018년 1월 16일                              

평생 일기 30



오늘도 바다는 기침을 한다

오늘도 바다는 가래를 뱉는다


오늘도 바다는 구토를 한다

오늘도 바다는 바다를 토한다


튼튼한 장기로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들

넓고 깊은 마음으로도 삭히지 못하는 것들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끊어진 밧줄

차마 소화시킬 수 없는 감정들을 토해놓는다


나는 오늘도 기침하여 가래를 뱉는다

나는 오늘도 구토하여 하늘을 토한다



2018년 1월 18일                          

평생 일기 32



진통제를 먹지 않으니 많이 아프다

나는 지금껏 진통제에 취해 살았다

우리나라도 어쩌면 진통제로 살았다

이명박전대통령이 오늘 입장 발표를 했다


진해거담제를 끊으니 기침이 나온다

기침할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래도 참아야만 한다

진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아야만한다


병원에서 나는 너무 많이 보았다

재발하여 다시 수술 받는 사람들을 보았다

제발, 내 몸 속으로 들어간 기계판막이

온전한 내 몸이 되어 나와 함께 잘 살 수 있기를


하루라도 빨리 직장에 복귀하려던 계획을

수정해야만 하리라

진통제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때

그 때에 비로소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리라



2018년 1월 18일                                   

평생 일기 33



제주도 마당은 대부분 잔디밭이다

아마도 바람 때문일 것이다

오늘 산책길에 특별한 마당을 보았다

마당 가득 텃밭 이었다

겨울에도 싱싱한 밥상이 펼쳐져 있다

나도 마당 가득 텃밭을 만들어야겠다

겨울에도 싱싱한 밥상 마당을 가꾸리라

그리운 님 오시면 언제라도

따뜻하고 싱그러운 밥상을 차려야겠다



2018년 1월 19일      

평생 일기 34


나의 아픈 심장이 

참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참 많은 사람을 보여주고

참 많은 사랑을 보여준다


나는 이제 아픔도 고맙다

내가 살아 있어 아름답다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숨을 쉬면 너의 숨결이 느껴진다


1월 30일은 서울 구경 가는 날

오늘 비행기 예약을 하며

나의 마음은 벌써 대학로를 걷는다

나의 심장이 서울 구경도 시켜준다


오늘도 항응고 검사를 받았다

1.97 INR 이란다

조대경 원장님께서는 내가 너무 예민해서

자꾸 기침을 한다고 말씀 하신다



2018년 1월 19일

평생 일기 35



날씨가 참 따뜻하다

며칠만에 보리가 많이 자랐다

흙이 새싹 이불을 덮었다

마음까지 참 따뜻한 날이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돌들이

둥그렇게 둥그렇게

둥그런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나는 어디에서 굴러와서

둥그렇게 가다듬고 있을까

얼마나 더 나를 굴려야

바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시금치가 날개를 펴고

수선화가 향기를 날린다

평생학교 수선화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나의 금잔옥대

나를 생각하며 시간을 마시고 있으리라



2018년 1월 20일           

평생 일기 36


2014년 4월 나는 한라병원 병실에서

침몰하는 세월호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 안에 염증이 생겨 패혈증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패혈증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


나는 다행히 침몰하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

패혈증의 원인 이었던 심내막염 또한 처음 알았다

멀쩡한 심장에는 잘 생기지 않는 병이라고 했다

나처럼 심장에 한 번 칼을 댄 사람에게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주로 치아쪽으로 침투한 균이 심장판막에 달라붙어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포도알균이 심장판막을 뜯어먹는 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핏줄을 타고 다니며 다른 장기들과

뇌에까지 염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천만 다행으로 심내막염과 패혈증 치료가 잘 되었다


치료하면서 심장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았다

감염내과와 심장내과와 흉부외과에서 함께 보았다

심내막염과 패혈증은 치료가 되었지만

심장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또한 알았다


나는 다시 1990년 6월로 돌아갔다

수술실에서 바로 영안실로 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나의 심판의 날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유고 시집 한 권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고 정리를 서둘러 마치고 누군가에게 발송했다


나는 또한 천만다행으로 수술도 성공했다

내가 보냈던 원고의 운명은 4월이 되어야 결정될 것이다

그 원고와 관계 없이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2018년 1월 21일           

평생 일기 37


산책길에 만난 고양이들이

자꾸만 나를 따라온다

꿈속까지 따라 들어온다


고양이 목에 철사 올가미

상처가 선명하다

상처마다 피가 철철 흐른다


내가 어린시절 잡았던 산토끼들

겨울산에서 철사 올가미로 잡았던

바로 그 올가미가 나의 목을 조인다


나는 어린시절 한 때 고향 산 가득

산토끼를 방생하여 생계를 유지할 생각까지 했었다

내가 철사 올가미로 잡은 산토끼는

광주 어느 토끼탕 골목으로 사라져갔었다


나는 늘 겨울을 기다렸고 눈을 기다렸다

싸이나로 잡은 꿩과 철사로 잡은 토끼가

나의 겨울을 풍성하게 했고 흰 눈이 좋았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고양이가 나를 후빈다

꿈속까지 따라 들어와 나를 물어 뜯는다

겨울밤 싸늘하게 식어가던 꿩과 산토끼

뒤늦게 다시 살아나 나의 마음을 뜯는다



2018년 1월 23일

평생 일기 40



오랜만에 좀 더 멀리 떠내려왔다

한담마을 장한철 표해록 산책로

길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책이다

먼 옛날 장한철 선생도 막막했으리라

오키나와까지 떠내려갔을 때

그 바람이 또한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하지만 이제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바람인가

우리들은 언제나 뜻밖의 바람에 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뜻밖의 바람이 나의 아름다운 길이다

그 뜻밖의 바람이 나를 아름답게 만든다



2018년 1월 23일       

평생 일기 41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의 거시기에서 출발하여

어머니의 머시기로 들어가 만났으리라

제우스의 거시기 끝에서 출발하여

다나에의 머시기로 들어가 벽을 뚫었으리라


우리들은 모두 1등으로 골인 한 기억이 있다

3억 명을 따돌리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달렸던가

오직 너 하나 만나기 위하여 얼마나 꼬리를 흔들었던가

우리들은 모두 얼마나 용감하고 빠른 전사였던가


메두사의 목을 자르기 위해 

나는 얼마나 깊은 밤을 지나와야 했는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는 또한 얼마나 깊은 바다를 헤엄쳐야 했는가


나는 이제 다시 나의 거시기가 꿈틀거린다

나는 이제 다시 너의 머시기가 그리워진다

나는 이제 다시 제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하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포세이돈을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진정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오랜만에 내가 가야할 지도나 그려볼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대와 함께 춤추는 몽유도원도나 그려볼까


아, 내 안에 숨어있던 페르세우스가 먼저 뛰쳐나간다



2018년 1월 23일     

평생 일기 41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의 거시기에서 출발하여

어머니의 머시기로 들어가 만났으리라

제우스의 거시기 끝에서 출발하여

다나에의 머시기로 들어가 벽을 뚫었으리라


우리들은 모두 1등으로 골인 한 기억이 있다

3억 명을 따돌리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달렸던가

오직 너 하나 만나기 위하여 얼마나 꼬리를 흔들었던가

우리들은 모두 얼마나 용감하고 빠른 전사였던가


메두사의 목을 자르기 위해 

나는 얼마나 깊은 밤을 지나와야 했는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는 또한 얼마나 깊은 바다를 헤엄쳐야 했는가


나는 이제 다시 나의 거시기가 꿈틀거린다

나는 이제 다시 너의 머시기가 그리워진다

나는 이제 다시 제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하데스를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이제 다시 포세이돈을 만나러 가야할까


나는 진정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오랜만에 내가 가야할 지도나 그려볼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대와 함께 춤추는 몽유도원도나 그려볼까


아, 내 안에 숨어있던 페르세우스가 먼저 뛰쳐나간다



2018년 1월 24일          

평생 일기 42



고고학자들은 뼈를 보고 상상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들의 인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 인류의 고향은 아프리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고향 아프리카는 어찌하여 사막이 되었을까


셀담도 루시도 투르카나 소년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호모하빌리스와 호모에렉투스는 지금 어디에

하이델베르크와 네안데르탈인은 어디로 갔을까


스클라디아화석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기후변화에 잘 적응한 호모사피엔스는 나의 조상인가

급격한 자연환경의 변화는 우리들을 어디로 안내할 것인가

우리 인류는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무 위에서 나무를 붙잡고 놀다가 걸을 수 있게 되었으리라

자유로워진 앞발이 손이 되어 무엇인가 만들기 시작했으리라

인류는 이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어지고 말았다

인류는 이제 인류 스스로까지 망하게 만들 물건까지 만들었다


우리 인류는 이제 어디로 가야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시인의 상상력은 이제

고고학자의 상상력과 미래학자의 상상력이 함께 필요하리라



2018년 1월 26일 

평생학교 50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를 신구간이라고 한다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 2018년 기준)

이 기간은 작년 한 해 동안 근무했던 1만 8천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서 업무보고를 하기 때문에

이 지상에는 신들이 없는 기간 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동안 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못했던 일들을 한다

그 대표적인 일이 바로 이사다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입춘을 전후하여 대대적으로 굿을 한다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내려오는 신들을 맞이하는 행사다

탐라국 입춘굿은 설문대할망을 비롯하여 소별왕과 대별왕

자청비와 영등할망 그리고 문도령과 정수남이 등등

1만 8천 신들을 성대하게 맞이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탐라국 입춘굿을 지켜보면 제주도는 아직도 신들의 땅이다


신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땅에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하고 가슴아픈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현대사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3.1운동에서 시작한다

일본에게 빼앗겼던 주권을 우리 손으로 찾아오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에게 다시 한 번 넘겨주어야만 했던 슬픈 과정에서

제주도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짓밟히는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이 사건을 제주4.3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4.3이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건을 제주 3.1절 발포사건 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사건은 간단하지 않다 그 기간 또한 짧지 않다

제주3.1절 발포사건을 시작으로

제주4.3항쟁을 거쳐 6.25전쟁 예비검속까지를 아우르는

길고도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풀기 어려운 사건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 전체의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서

해결 방법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하게 이름붙인 것처럼

4.3을 앞세우면 6.25전쟁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분단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과 역사적 접립이 쉽지 않다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관점을 지향한다면

3.1절 발포사건을 전면에 내세워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4.3을 앞세우면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3.1절 발포사건을 전면에 앞세우면 피해자일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따뜻한 품성을 지녀서 피해자편에서 응원한다


관덕정 앞에서 그날 총을 맞고 쓰러진 

우리들의 3.1정신이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자청비를 알고 있다 가믄장아기를 알고 있다

삼승할망을 알고 있다 바리공주를 알고 있다

우리들의 3.1정신은 다시 일어나 촛불을 켜고 꽃으로 피어나리라


신을 닮은 제주 해녀들이 오늘도 바다 속으로 헤엄쳐들어간다



2018년 1월 31일 

평화와 생명 58



2018년 1월 31일 수요일이다

무술년 올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은 나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 주고싶다

작년 12월 갑자기 시작된 입원과 수술 그리고 부활

이렇게 나는 정신없이 12월과 1월을 지나

입춘 같은 2월 앞에 서 있다


제주도에서는 2월 2일부터 탐라국입춘굿을 한다

나도 조촐하게 평생학교 입춘굿을 해야겠다

나의 봄을 맞이하고 평생학교에 봄을 파종해야겠다


어제는 나의 심장을 수술하신 안혁 교수님을 만났다

나의 심장 속 심실벽에서 깎아낸 상당히 많은 살점을 보여주셨다

또한 망가진 대동맥판막 사진도 보여주셨다

두꺼워진 승모판막에서 깎아낸 조각도 보여주셨다

그리고 지금 내 심장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기계판막 모형도 보여주셨다

참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결과가 좋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앞으로 6개월은 지나야 안정이 될거라고 말씀하셨다

혈전 생성 방지를 위해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처방해주셨다

그리고 강심제 디곡신과 맥박 안정제 콩브럭정도 처방해주셨다

또한 너무 심하게 아프면 가끔 먹으라며 진통제도 처방해주셨다


그렇겠지 암, 그렇고 말고

한 군데도 아니고 심장 속을 온통 헤집어 놓있으니

적어도 한 6개월은 되어야 그나마 좀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겠지

그래도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 위험하다는 돌연사를 극적으로 극복하고 

이렇게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가

나는 오늘 나를 위한 촛불을 켜고 조촐한 입춘굿을 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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