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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29. 2022

송악산

― 이어도공화국 22






송악산





‘절울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송악산

늘 물결이 운다는 송악산 주위의 절벽들

절벽에서도 자세히 보면 길이 보인다

낭떠러지에도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 물결이 사납다

저 바다 밑 물결 속에는 이어도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이곳에서 탑승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어도에 살고 있다

나는 이어도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들었다

모슬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보목 자리보다 모슬포 자리가 억센 이유를

방어 축제 준비하다 이어도로 온 사람들,

아무리 지독한 빚쟁이도 순해진다는 전망대

가파도 되고 마라도 되는 우리들의 빚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시인을 만났다

어머니가 지금도 물질을 한다는 시인을 따라서

전복이 많은 바당, 소라가 많은 바당을 지나서

해녀들의 불턱에서 나도 이제 옷을 갈아입는다









오늘은 송악산을 산책한다. 나는 먼 여행을 가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서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일상 속에서 날마다 산책을 한다. 오늘은 가까운 송악산으로 간다. 송악산은 절울이 오름, 저 별이 오름, 솔오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중에서 나는 ‘절울이’라는 말이 참 좋다. ‘절’은 ‘파도’의 제주어이고 ‘울’은 ‘울다’라는 제주어이니, 절울은 바다 울음 혹은 파도 울음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절울이’는 파도가 절벽에 부딪쳐 우는 소리를 낸다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송악산이란 이름보다 절울이 오름이란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


입구에 메밀밭이 있다. 메밀꽃들은 마음을 참 평화롭게 만들어준다. 제주도에는 넓은 메밀밭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메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바로 제주도이다. 사람들은 흔히 강원도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제주도에서 더 많이 생산된다. 소설 <메밀꽃필무렵> 때문에 봉평을 떠올리기 쉽지만 앞으로는 제주도 메밀이 유명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주도에 메밀 방앗간이 없어서 강원도 방앗간을 거쳐 강원도에서 많이 소비되었지만 이제는 제주도에도 메밀 방앗간이 생겨서 메밀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자연휴식년제 때문에 송악산 정상은 오랫동안 출입이 막혀 있었다. 얼마 전부터 송악산 정상 1구간과 2구간 출입이 허용되었다. 오름 훼손지 식생복원을 위해서 3구간은 앞으로 1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만 같다. 산책로 중간쯤에 말 타는 곳이 있다. 마라도와 가파도를 조망하는 전망대 쪽에도 말 타는 곳이 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말 두 마리를 끌고 영업장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저 말들은 오늘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벌어줄 수 있을까? 사람들을 태우고 걸으면서 저 말들은 오늘 무슨 생각을 할까?


송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잘 만들었다. 야자수매트도 새로 깔고 돌계단도 새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밟아도 흙길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생보호를 위해서 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울타리 줄도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 억새꽃도 예쁘고 돌아보면 더욱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서 좋다. 형제섬과 월라봉과 산방산과 단산 그리고 저 구름 뒤에 숨어있는 한라산도 아름답다. 


송악산 정상에 오르면 암메창 또는 가메창이라 불리는 69m의 분화구가 있다. 분화구를 보면서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얼마나 큰 힘으로 불어냈으면 저렇게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을까. 얼마나 큰 분노를 폭발시켰으면 저렇게 큰 상처가 만들어졌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산방산이 눈에 들어온다. 저 산방산은 어떻게 분노를 조절했기에 분화구를 만들지 않고 종상 화산으로 솟아 있을까. 나는 날마다 분화구를 만들고 있을까 아니면 종상 화산을 만들고 있을까.


1코스로 올라가서 2코스로 내려오는데 중간쯤에 절개지처럼 잘려있는 땅이 있다. 수직으로 잘려 속살이 훤하게 보이는 땅이 있다. 오래전에 태풍 때문에 그랬거나 산사태 때문에 그랬었는지 잘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흙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한쪽은 검고 한쪽은 붉다. 화산 폭발의 연대가 다르거나 쌓인 흙의 성분이 달라서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각자의 마음도 다르고 각각 살아온 역사도 다를 것이다.


잘려있는 땅 가까이 가보니 아래쪽에는 억새가 자라고, 억새 아래쪽에는 야고 꽃이 피어있다. 좀 자세히 들여다보니 억새들이 저마다 야고를 거느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야고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억새마다 야고가 젖을 빨고 있다. 야고 밭인 지 억새 밭인 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아, 야고는 이런 조건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흙만 있을 것 같은 잘린 땅을 자세히 보니 쑥부쟁이들이 자라고 있다.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키가 너무 작지만 그래도 꽃은 예쁘게 잘 피어있다. 아,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마라도와 가파도를 조망하는 전망대 쪽에서 보면 절벽에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절울이 오름’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또한 이 주변에는 ‘새’라는 풀이 많다. 다른 말로는 ‘촐’이라고도 부르는 풀이다. 제주도에서는 풀을 ‘촐’이라고 하는데 보통명사로 쓰기도 하고 고유명사로 쓰기도 한다. 제주도 사람들이 고유명사로 쓰는 ‘새’는 억새풀처럼 생겼는데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새’라는 풀로 초가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벼농사를 많이 할 수 없었던 제주도 사람들은 볏짚 대신 이 ‘새’라는 풀로 초가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초가지붕뿐만 아니라 소와 말의 먹이로도 많이 이용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촐밭’이라는 밭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역시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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