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13. movie sketch

by Yearn


돌고 도는
순환의 세계관



혹성탈출 시리즈를 보았습니다. <반격의 서막> 개봉을 맞아 별생각 없이 <진화의 시작>을 봤다가 바로 팬이 돼버렸습니다. 혹성탈출 전편을 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양이 너무 방대하더군요. 티비 시리즈에 애니메이션에 영화만 다섯 편이 넘는다는... 일단 보류하고 최근에 본 세 편에 대해서만 써 볼까 합니다. 팀 버튼의 <혹성 탈출>, <혹성 탈출 : 진화의 시작>과 <혹성 탈출 : 반격의 서막>에 대해서요.


<혹성 탈출>의 재미난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화의 시작>에서 'No!!!!!'가 명장면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저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말하는 유인원, 말 타는 유인원, 도구를 사용하는 유인원까지 낯선 광경들이 주는 강렬함이 영화를 흥미롭게 합니다. 실제로 스토리의 전개 방식은 평범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영화 속 유인원들의 빠른 진화 과정이 스토리에 속도를 붙여주는 데다 지능의 발달이 곧 신체조건의 변화로 이루어지기에 액션도 점점 화려해집니다. 유인원의 액션은 남다른 골격과 파워, 스피드로 몸의 근육과 마디를 그대로 드러내는 육체파 액션이기에 더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칩니다.



1300002.jpg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덕분에 저는 액션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도 유인원들이 뛰기 시작하면 피가 솟구치더군요. <혹성 탈출> 시리즈에서 인간과 유인원은 대립합니다. 약물로 인해 지능이 높아진 유인원들은 인간에게 지배받기를 거부하고 인간은 인간대로 그들의 반항에서 공포심을 느껴 유인원을 적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인간은 악하고 유인원은 선하다 이런 이분법의 구조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집단과 집단의 대립 속에 선과 악의 위치는 계속해서 변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 주인공 제임스 프랭코는 유일하게 선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실험을 시작한 이유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효심이 지극한 아들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전지적 시점에서 보자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인간 외의 생물을 실험용으로 사용한 과학자 중 하나 일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연구는 후에 인간을 멸망으로 몰고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00004.jpg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반격의 서막>의 코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유인원의 세계를 만들어낸 시저를 존경하는 한 편 인간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그를 미워합니다. 그는 사실상 <혹성 탈출> 시리즈에서 가장 복잡한 감정을 지닌 인물인데 그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일들을 보자면 인간사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과 어리숙한 민심이 결합하여 극단적인 독재자가 탄생하는 이 과정은 인간사에서도 몇 번이고 되풀이된 낯익은 풍경입니다.


영화는 숲에서 평화를 찾았던 유인원들이 인간과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것을 보여주며 선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순환의 세계관을 드러냅니다. 물론 코바라는 인물 자체가 시저의 공동체를 무너트린 강력한 동기가 되긴 했지만 코바가 살아온 환경에서 바라보자면 그의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인간과 유인원의 강력한 대결구도 안에서도 복합적인 개개인의 상황이 스토리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이 영화를 단순한 블록버스터 이상으로 만들어줍니다.


위의 두 영화와 달리 팀 버튼의 <혹성탈출>은 그의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로 채워진 영화입니다. 팀 버튼은 <혹성 탈출>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기존의 시리즈를 재연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혹성탈출>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고찰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유인원의 위치를 바꾸어 일어나는 이질적인 상황으로 상징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둡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화의 시작>과 <반격의 서막>을 통해 살아있는 듯한 시저를 경험한 이들이 짜치는 특수분장으로 무장한 유인원들을 두 시간 가까이 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1300005.jpg <혹성탈출> - 팀 버튼



팀 버튼의 다른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이야기의 몰입도가 높은 편도 아니고요.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제작 환경이 좋지 못해 완성도가 떨어졌다고도 하네요. 팀 버튼의 <혹성탈출>은 최근의 시리즈와 정 반대로 유인원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유인원들이 사치스러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젊고 진보적인 주인공(헬레나 본햄 카터) 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낭만적인 상상을 지니고 있는 반면 권력을 쥐고 있는 보수적인 원로들과 군인들은 인간과 접촉하는 것조차 꺼려하며 그들을 혐오합니다. 그 모습은 상반된 의견을 지닌 정치가들이 대화 나누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데 사실 유인원들이 하는 행동들은 인간의 행동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결국은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른 생물체가 인간의 모습을 모방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혹성 탈출> 시리즈는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인간에 대해 논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혹성 탈출> 시리즈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유인원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봅니다. 그 두 가지의 만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서사가 있는 블록버스터가 탄생했습니다.


<혹성탈출>은 앞으로 한 편을 더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가 어떻게 끝 날지 기대가 되는 한편 완벽하게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블록버스터의 특성상 아름다운 결말로 끝을 내야 하는데 역사 속에서 사례를 찾기는 어렵고 온전히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채워나가야 하니까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부디 완벽한 마무리가 되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