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movie sketch
발견하는 영화
사람은 위험한 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저기는 절대 가면 안된다고 하면 저곳만큼은 가고 말겠다는 의지가 샘솟고 여러 명이 특정한 한 명을 싫어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 청개구리 기질이 높은 편입니다. 삐뚤어진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낯설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막연히 가지 말아야 하는 곳,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감옥이나 정신병원 같은 곳 말이에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범죄 기사를 보며 공포심을 느끼기는 하지만 나와는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들에게서 특수한 원인을 찾아 일반적인 사람과 구분 지으려고 합니다. 이유를 찾으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공포심을 해소해 보는 거죠. 하지만 그들을 특수하게 나누면 나눌수록 두려움은 커지기만 합니다. 인간은 낯선 것에 공포를 느낀다고 하니까요.
왕빙 감독의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정신병원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강력한 추천이었습니다. 그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중국에 정말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는데 그 사람의 영화는 러닝타임이 10시간이기에 한국에선 절대 개봉하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는 왕빙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철서구>입니다.) 하지만 보게 된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마침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서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으로 개봉하는 왕빙의 영화가 있었죠.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를 마련해준 시네마 아트와 정성일 평론가에게 감사를)
이 영화는 약간의 사전 정보를 필요로 하는데 우선 왕빙은 영화를 길게 만드는 걸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아직 국내 개봉작이 없어 저도 이 작품 한 편 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의 전작들을 보면 한 시간 반짜리는 단편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영화에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역시 러닝타임이 거의 4시간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왜 이렇게까지 길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지만 보고 난 후, 그 정도가 그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에 꼭 맞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편입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제 나름의 좋아하는 영화와 싫어하는 영화를 나누는 기준이 있습니다. 영화를 아주 크게 두 종류로 나누고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 영화들을 싫어합니다. 그 두 종류는 1. 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고, 보고 싶은 영화와 2. 두 번은 못 보겠지만 기억에 깊게 남아 실제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영화입니다. 양쪽에 다 속하는 영화도 있고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영화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저 커다란 범주중 한 곳에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좋은 영화라고 느끼는 편입니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완벽하게 후자에 포함되는 영화였습니다. 단순히 정신병동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소재의 희귀성을 떠나 영화가 취하는 방법과 태도가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영화는 4시간 동안 병동 안의 여러 환자들을 보여 줍니다. 배경음악도 없고 내레이션도 없고 환자에 대한 정보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알려주는 것은 환자의 이름과 입원기간뿐. 사전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한 채로 관객 각자가 정신병원에 지닌 자신의 편견을 가지고 영화를 봐야 합니다.
하지만 주어지는 정보가 너무 적어 내가 가진 편견을 발휘할 기회도 없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그들의 일상은 동물원의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주로 먹고, 자고, 약을 먹고, TV 보고 다시 자고. 커다란 철창으로 둘러싸인 병원 복도에 나와 우리 안의 동물들처럼 넋 놓고 바깥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복도는 유일하게 병동 외의 공간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철창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마치 영화 감상하듯 한없이 바깥을 바라봅니다. 바깥이라고 해봤자 외부가 아니라 병동 내의 다른 층이 보이는 것뿐인데도요.
무료한 일상이 지속되다 보니 환자들은 먹을 것에 집착합니다. 다른 사람의 가족이 먹을걸 가지고 면회라도 오면 그 방에 들어가 음식을 나눠달라고 조르고 줄 때까지 방구석에 앉아 기다립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온순해 보이는지 동물원 안에서 야생성을 잃어버린 맹수들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벌거벗고 다른 환자의 침대에 들어가 꼭 끌어안고 자는 성인 남성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졸지 않고 4시간 동안 감상한다는 건 정성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기 침대에 앉아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환자의 모습을 컷 없이 몇 분 동안 지켜보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방식이 적절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는 체험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듦새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4시간 동안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병원 안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무방비가 되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도 내려놓고 영화 속 인물들을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이해하려 하는 것도 포기하고 단순하게 보기만 하는 순간이 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화면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스포일러(?)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던 중 졸다가 깨어나 보니 처음 보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등장한 환자들에 비해 말도 똑바로 하고 매 번 면회를 찾아오는 부인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데려가 달라고 이야기도 합니다. 저 환자는 자기 생각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걸 보니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했습니다. 한참 동안 그 환자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자막이 뜹니다.
(이전에는 인물의 등장 초반에 자막이 나타났었습니다.)
이름:000
병원 입원 기간:15년째
그 환자의 부인은 자주 면회를 옵니다. 와서 남편에게 말도 걸고 항상 웃는 얼굴로 그를 대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를 애처럼 얼르고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은 들어주지 않는 부인에게 점점 화가 나 찾아와도 툴툴 대기만 합니다. 그런 그에게 웃음으로 일관하던 부인도 어느 날은 기분이 상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묻습니다.
'당신 여기 들어온 지 얼마 됐는지 알아?'
남편은 대답합니다. '당연히 알지 2년 아니야.'
부인은 '당신은 자기가 여기에 왜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잖아. 당신은 나갈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영화를 보는 저는 그들의 자세한 사정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아내가 입원한 남편과 귤을 나눠먹으며 잠깐 창밖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그간의 시간들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크레디트 이전에 처음으로 감독이 정신 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정신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신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사람들로 치료가 아니라 격리를 위해 병원 안에 있는 거라고요.
영화가 끝난 후 정성일 평론가의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는 왕빙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이 영화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왕빙과의 일화를 여러 가지 이야기해주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왕빙은 정신병동에서 한 환자가 오줌을 누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 안에서는 다들 방 안의 대야에 볼일을 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볼일을 마친 환자가 자기가 본 소변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보통은 그런 희귀한 장면을 담았을 때 좋은 소스가 생겼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왕빙 감독은 그 남자가 소변을 마시는 순간 카메라를 꺼버리고 그 방을 나갔다고 합니다. 후에 정성일 평론가가 왜 그랬냐고 묻자 그는 촬영을 당하는 인물들이 어떤 때가 되면 카메라를 향해 거짓된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자긴 그런 장면은 찍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고 발견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영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