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24. movie sketch

by Yearn


대중 메타포
마음에 관하여



<옥자>를 보았습니다. 멀티플렉스에서 개봉을 하지 않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환경이 좋지 않은 영화관에 사람이 가득 들어차는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넷플렉스로 개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꽉 찬 극장을 보며 새삼 봉준호 감독의 티켓 파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영화관 표보다 넷플렉스가 더 싼데 말이죠. (넷플렉스는 한 달 월정액 9,900원입니다.) <옥자>는 봉준호라는 기대치에 부족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무엇보다도 봉준호의 영화는 절대 대중과 등을 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오라고 질질 끌고 가거나 보든말든 난 나만의 예술을 하겠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캐릭터와 설정을 촘촘하게 박아 놓았습니다. 본인이 싫어한다는 별명인 '봉테일'의 방식으로요.


그 디테일함과 대중성 때문에 유치하고 단편적인 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좀 더 구멍이 나 있는 불친절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미자의 감정에 얼마나 공감하느냐 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자의 마음이 낯설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뭉클하게 다가오는 장면들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스포일러 있어요!!!



46441_58d9b5c9c0f45[S750,750].jpg <옥자>



<옥자>는 미란다 컴퍼니의 슈퍼돼지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이 씬이 끝나고 나면 느리고 조용한 미자와 옥자의 산골 생활이 시작됩니다.


<옥자>는 많은 대비점들을 지닌 영화입니다.

산골 vs 뉴욕 / 어른 vs 아이 / 미란다 컴퍼니와 vs AFL / 제안 vs 거절 / 고용주 vs 고용인 등등

짝지어 대비되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손녀가 다칠까 전전긍긍하는 할아버지는

그리고 각 요소들은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데 그 상징이라는 것이 굉장히 단순합니다. 어렵게 뱅뱅 돌리지 않고 정확히 대중의 언어를 사용했기에 익숙한 이야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차원적인 틀 안에 <옥자>는 깊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요. 영화에서 미자의 할아버지는 때가 되어 찾아온 미란다 컴퍼니에 슈퍼돼지 옥자를 팔고 그 값으로 돼지 모양의 금덩이를 받습니다. 산골에서 부모 없이 자라는 미자의 미래를 위해서요.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들은 미자는 엄청나게 분노합니다. 손녀가 다칠까 전전긍긍하는 할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이 서울로 올라가 옥자를 되찾겠다며 집을 나가죠.


마음이 다친 겁니다.


저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봉준호는 한국의 정서를 잊지 않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씬은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라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미자를 사랑할 겁니다. 그래서 그녀의 미래를 위해 옥자를 돈과 교환한 겁니다. 아기 때부터 미자의 유일한 친구였고 미자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바치는 옥자를요. 할아버지가 맞을지도 모르죠. 세상살이는 녹녹지 않습니다. 아직 아이인 미자가 자신을 향한 할아버지의 걱정을 반에 반이라도 이해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루아침에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하고 친구를 잃은 미자의 마음은요?


영화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소중한 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 가.



2400006.jpg <옥자>



ALF(Animal Liberation Front) 동물해방전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미자의 할아버지와, 미란다 그룹, 세상의 어른들과 조금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 역시 엉성하고 뭔가 이상하지만 AFL의 리더인 제이는 마음에 신경을 씁니다. 옥자에게 몰래카메라를 달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자의 마음입니다. 그녀가 그것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그리고 케이의 거짓말이 들통난 후에는 미자가 상처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슈퍼돼지 콘테스트 시작 전에 찾아가 영상을 보지 못하도록 뒤돌아보지 말라고 귀띔하고, 실제 행사장에서도 혹시나 옥자의 학대 장면을 보게 될까 불안해하죠. 미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콘테스트 대회에서 분노하는 옥자가 미자를 물었을 때 ALF의 리더인 제이에게 옥자는 단순히 제어할 수 없게 된 동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미자는 달랐습니다.



2400003.jpg <옥자>



그녀는 제이보다도 옥자가 당한 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옥자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옥자가 크게 상처 받았고 그로 인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옥자를 때리려는 제이의 몽둥이를 막고 팔이 물린 채로 옥자의 분노를 받아들입니다. 자본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미친 사회의 한 복판에서 우리가 가장 크게 잃어가고 있는 것은 이런 것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자는 이미 굳을 때로 굳어버려 자신의 분노가 닿지 않는 세상에 필사적으로 저항합니다. 미자는 부숩니다. 분노를 발산하며 저금통을 부수고 들여보내 주지 않는 미란다 컴퍼니의 유리문을 부수고 황금 돼지를 집어던집니다. ALF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옥자를 탈출시키기 위해 차를 부수고 강에 뛰어내리고 시류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죠.



2400004.jpg <옥자>



반대로 틸타 스윈튼을 주축으로 하는 반대편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스스로 액션을 취한다기보다는 시류에 방해가 되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합니다. 미자가 옥자를 찾기 위해 미란다 컴퍼니를 찾아간 장면은 그들의 대비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꼼짝도 안 하고 안 된다고만 하는 안내데스크 여인과 어떤 소통도 불가능한 기계의 음성메시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미자. 그리고 미자는 기어이 문을 부숴버립니다.


<옥자>는 상징적입니다. 예고편만 보았을 때는 폴 다노를 비롯한 ALF 무리가 악당처럼 보입니다. ALF는 전형적인 악당의 컬러와 모습(복면, 검은 정장)을 하고 있었고 반대로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은 밝은 원색 의상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영화 <옥자>의 숨은 주제인 '이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란다 그룹의 대표 루시가 미자를 데려오라고 하면서 내뱉는 인상적인 대사가 있습니다.


'베네통처럼은 하지 마'


베네통은 다인종 모델을 내세워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성공한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죠.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마케팅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베네통 방글라데시 공장 참사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구글에 benetton factory를 쳐보세요. 안타깝게도 네이버에는 나오지 않네요.) 평등을 기업 가치로 내세웠던 베네통이 보여준 이면은 정말로 추악했습니다. 미란다 컴퍼니의 컬러와 냉혈안 사업가 낸시의 담배가 초록색인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계획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마케팅=거짓말이라는 것은 이제 와서 말하기 새삼스러울 정도로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정말 몰라서 속았던걸 지금은 알면서도 속는다는 것입니다.



2400005.jpg <옥자>



이쯤 되면 <옥자>는 상징적인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기도 합니다. <옥자>는 현재 세상의 완벽한 축소판입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사람들은 싸면 먹게 되어있어. "


저는 우리가 이런 자본가들의 이면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낸시의 말이 맞는 것뿐이죠. 우린 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옥자>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며 귀에 진물 이 나도록 들어온 이야기예요. <옥자>의 새로운 부분은 견고하게 무관심으로 점철된 세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미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말이 덧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 역시 현재 삶이고 미자가 살아 나갈 세상인걸요. 미자와 옥자가 소중한 존재를 하나 늘린 것만으로도 더 나은 삶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옥자>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이지만 한 편으로는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미자와 옥자의 성장기를 다룬 잔혹동화.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봉 감독의 메시지에 저는 깊게 공감합니다.



<옥자>



++ <옥자>에는 숨은 의도가 담긴 장면들이 있습니다. 영화에 스치듯 나오는 담뱃갑까지 신경 쓰는 감독인데 특정 배우의 목소리와 생김새가 오바마를 닮은 것이 우연 일리 없죠.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는 오바마와 힐러리의 패러디 외에도 미란다 그룹의 회의 중 오바마를 닮은 배우가 루시에게 커피를 건네는 장면이 있습니다. 별것 아닌 장면인데 튀게 느껴질 정도로 강조가 되어있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뒤져보니 힐러리가 예전 경선 당시 "오바마는 우리에게 커피나 내올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본인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싫다고 하지만 이쯤 되면 봉테일만큼 잘 어울리는 별명도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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