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 종의 전쟁

#25. movie sketch

by Yearn


아카데미형
블록버스터



<혹성탈출:종의 전쟁>이 개봉하고 이 정도면 블록버스터도 아카데미 상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습니다. 혹성탈출 전작들은 이미 평균적으로 높은 퀄리티에 성의 있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기에 저는 저 말이 완성도가 높다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니 저 말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아카데미에서 선호하는 영화 같다.'라는 의미로요.



2500013.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저는 <혹성탈출>의 팬이어서 이전에도 영화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3편을 기대하며 끝을 내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저는 <혹성탈출>이 영웅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저의 일대기는 영웅 신화의 구조와 대부분 일치합니다. 조력자를 만나 힘을 발휘하고 무리를 이끄는 리더가 된 후에 커다란 전쟁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일반적인 영웅물의 결말은 두 가지입니다.


영웅의 승리 또는 영웅의 죽음


하지만 <혹성탈출>은 이 부분에서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주인공의 승리인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시저는 코바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원한이 원한을 만드는 그 순환의 고리에 참여하고자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것이 시저를 더욱 영웅답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에 하나였죠. 만약에 시저가 인간과의 전쟁을 시작해 승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건 일반적인 영웅 이야기에서 처럼 승리가 될 수 없습니다. 시저는 그렇게 무작정 내 식구 만을 챙기는 무식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죠. 혹성탈출은 기존의 선악구도보다 좀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2500015.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스포일러 있어요!!!


그렇게 끝이 난 2편을 보면서 3편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있었습니다. 익숙한 방식으로 시저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여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인간들과 화해를 하고 그간의 앙금은 털어버린 채 억지 해피엔딩을 만들어 낼 것인가. <혹성탈출>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결말을 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혹성탈출은 해냅니다.


하지만 3편은 1,2편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영화들이 그렇듯 지루합니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처럼 1,2편의 느낌을 기대하셨다면 지루한 걸 견뎌야 합니다. <혹성탈출:종의 전쟁>은 액션보다는 사색으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그도 그럴 게 유인원들은 이미 인간만큼의 진화를 이루어냈습니다. 1,2편에서는 진화를 통해 (우와 말을 해!!, 무기를 이용해!! 말을 타!! 등등) 흥미를 유발하고 속도감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3편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이제 그들은 거의 인간과 같아졌고 인간과 똑같이 고민하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3편이 영화에 반 이상 투자하는 것은 시저의 고뇌입니다. 그러니 지루할 수밖에요



2500014.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새로운 <혹성탈출>을 시리즈로 끌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시저라는 캐릭터의 매력입니다. 시저는 유인원이지만 따르고 싶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는 영웅형 인물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훼손된다면 영화는 큰 매력을 잃게 될 겁니다. 그래서 3편은 가장 중요한 시저의 영웅성을 지켜냅니다. 고뇌하고 고통받는 구원자의 모습으로요. 3편에서 시저는 무력합니다. 가족에 대한 복수로 고뇌하고 인간들에게 핍박받으며 동료에게 마저 비난받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웅적인 면모가 발현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2500009.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인간에게 끌려온 유인원들은 작업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립니다. 포로로 잡혀온 시저는 가장 먼저 동족들을 위한 음식 제공을 요구하죠. 힘없는 시저가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이들로 인해 시저의 존재감은 드러납니다. 유인원들은 그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내려놓았던 노역을 자발적으로 시작합니다. 유인원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인격으로 존경받는 리더입니다.


반면 인간들의 리더인 사령관은 그만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뿐인 자식마저 희생시켰죠. 그를 따르는 무리는 전체주의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사령관의 사상에 동의하느냐 아니냐 와 상관없이 그것 외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거든요.



2500007.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그리고 영화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언어를 빼앗긴 인간은 유인원과 차이가 있을까? 혹성탈출에서 언어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애당초 시저가 유인원 무리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말을 할 수 있는 더 진화된 유인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저는 유인원들에게 '언어'를 가르쳤고 그들은 언어의 습득을 통해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로 유인원들은 언어를 얻었지만 인간은 언어를 잃어갑니다. 자연의 법칙에서는 살아남는 종이 우수한 종이지요. 대령이 느낀 공포심은 정확히 본질을 파악한 것이었습니다. 종의 전쟁이 발발한 곳에서 언어를 잃은 인간은 더 이상 다른 종을 다스릴 능력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2500010.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혹성탈출>이 종과 종의 대결을 끝내는 방법은 그들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자연의 분노입니다. 세 갈래로 나뉜 종의 전쟁에서 시저의 무리만 살아남은 것은 영화 내에서 그들이 주인공이고 핍박받은 무리이고 가장 무해한 가치를 지향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2500003.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유인원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던 종이었기에 변화에 더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마치 나의 소유인양 다뤄 왔던 지구의 반란은 실제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이 현재를 리얼하게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구의 유일한 종이 된 유인원은 그들만의 낙원을 다시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바이러스로 말을 잃은 인간의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와 유인원은 제대로 된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지만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관계를 맺어나갑니다. 그 모습은 유인원들이 새로 도착한 신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500008.jpg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종의 전쟁에서 보인 인간은 언제까지고 지구의 주인이고 싶어 하고 낯선 것은 적, 다른 것은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였기에 멸종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유인원과 말을 잃은 인간의 아이는 공존하며 살아갈 겁니다. 하지만 그 또한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겠죠. 왜냐면 시저가 죽었으니까요. 그의 영웅담은 전설로만 남고 그의 후예들은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겁니다. 마치 우리처럼요.


결국 <혹성탈출> 이야기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순환의 세계관입니다. 돌고 돌아 먼 곳에서 바라보면 제자리걸음처럼 보일 법한 그런 세계요. 실제로 혹성탈출 원작 역시 그랬다고 합니다. 유인원이 지배한 행성에서 인간이 지배하는 행성으로, 한쪽이 핍박받을 땐 한쪽이 우월하고 다른 쪽이 우월해지면 그 반대편이 핍박받는. <혹성탈출> 시리즈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4편을 프리퀄로 준비 중이라는.


마지막 편을 보면 늘 쓸쓸한 기분이 들기에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이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극히 드문 예인 <본 시리즈>의 상향평준화를 떠올리며 4편도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가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네요


"커서 시저 같은 사람이 되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