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arn Feb 18. 2021

남매의 집

#64. movie sketch


지나간 일은 모두
그리움이 된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윤여정 배우가 영화 <미나리>에 대해 인터뷰한 걸 보았습니다. 그녀는 <미나리>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처음엔 독립영화라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예산이라 현장이 힘들고 고생할게 뻔히 보였다고 했죠.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과 인력이 부족해 촬영 환경에 제약이 많습니다. 예산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강행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죠. 또 독립영화감독이라는 건 연출 경험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직업 특성상 감독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배우에게 경험이 적은 감독과 함께 일하는 건 모험일 겁니다. 윤여정 배우가 고생길을 예상한 건 경력에 걸맞은 합리적인 추측이었죠.


그럼 무조건 상업영화가 좋은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 같습니다. 자본이 많이 들어간 영화는 투자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투자금이 클수록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더 많은 관객을 모아야 하고 그러려면 반드시 대중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투자자는 흥행에 걸림돌이 될만한 결말은 원하지 않으니까요. 가끔 개봉이 끝난 영화의 감독판이 다른 결말로 나오는 건 개봉 당시의 결말에 감독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독립영화로 주목받은 감독이 상업 장편을 연출하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잃는 건 흔한 일이죠.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이 독립영화에 바라는 건 화려한 미장센이나 그럴싸한 촬영이 아니라 상업영화가 투자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업영화는 내용이 조금 빈약해도 괜찮습니다. 유명 배우나 비싼 세트, 특수효과로 어느 정도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면 되니까요. 하지만 독립영화는 그럴 수 없습니다. 유명세 없이 평범한 화면으로 관객을 설득하려면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그려야 합니다. 불리한 게임이지만 성공하면 그만큼 더 대단하게 느껴지죠. 한정된 자원 안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려면 감독이 잘 아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선택하는 게 유리할 겁니다. <남매의 여름밤>은 윤단비 감독의 마음이 전해지는 개인적인 영화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장면들은 관객이 잊고 있던 어떤 시간을 불러내 그 시절의 행복과 슬픔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합니다.


<남매의 여름밤>은 일상을 배경으로 한 옥주와 동주의 성장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인 옥주, 동주,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는 나의 가족이 아니지만, 어디서 본 듯 익숙합니다. 두 남매는 새로운 환경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며 어른들의 세상을 곁눈질하고 몰랐던 결핍을 발견하며 조금씩 성장합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릅니다. 순수하지만 예민하고, 마음은 앞서지만 경험이 부족해  반드시 실수를 합니다. 아직은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하죠. 할아버지의 치매가 심해졌을 때 어린 옥주와 동주는 걱정하면 그만이지만, 어른인 아빠와 고모는 그들이 감당해야 할 시간과 해야 할 일이 먼저 떠오릅니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옥주는 조금 이르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건너려 하는 중입니다.



손주 사랑은 부모와는 또 다르다고 하죠. 자식을 향한 기대와 책임을 빼고 나면 남는 건 순도 높은 사랑일 겁니다.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할아버지는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을 아무 말 없이 품어줍니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죠. 한창 사춘기로 예민한 옥주는 답답한 마음에 동생에게 소리 지르며 화를 냅니다. 옥주는 동주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누나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동주는 서러워 울기만 하죠. 남매의 싸움을 본 할아버지는 잘잘못을 가리거나 혼내지 않고 말없이 우는 동주를 안아 줍니다. 할아버지에게 안겨 목놓아 우는 동주를 보면서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서럽게 진심을 다해 울면 조건 없이 누군가가 내 편을 들어주던 순간들이요. 어른이 되면 동주처럼 울지도 않고 다정히 안아주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갑니다. 잊고 있던 그 시절이 눈앞에 다가오자 하염없는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남매의 집>에는 진짜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기댈 곳 없는 독립영화가 진짜 같은 장면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건 감독의 연출력과 작품을 대하는 성의 있는 태도 때문입니다. 대충 슬픈 상황만 줘도 관객은 울 수 있습니다. 커다란 상영관에서 주입식으로 파고드는 영화에 슬픈 음악까지 휘몰아치면 그걸 견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남매의 집>은 그런 장치 없이도 관객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굳이 독립 영화, 상업영화로 나누지 않아도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어린아이가 이 영화를 본다면 어른이 받는 감동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건 어린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을 위한 영화입니다. 진실한 순간을 담으려 노력하는 것. 좋은 영화란 이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