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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효모 Mar 10. 2024

깊이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랑원다오

 뤽 베송의 출세작이자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그랑블루>에서 주인공은 바다에 대해 매우 깊이 있는 반응을 보인다. 그는 돌고래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사는 포유류에 속한다. 마침내 주인공은 인생의 마지막 시합에서 바닷속 깊은 곳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잠수해 내려가다가 결국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1980년대 말, 이 영화가 일으킨 반향은 그 옛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비견될 정도였다. 수많은 소년들이 이 잠수부를 따라 자살을 택했다. 그들은 주인공처럼 바다의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사랑했다. 그러고는 빛과 소리가 있는 수면의 세계에서 자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현대 언어학의 경전인 <삶으로서의 은유>를 읽은 것은 10여 년 전 대학교에 다닐 때였다. 당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상하'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사유방식과 문화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은유였다. 예컨대 시험 점수가 좋게 나올 경우 우리는 '점수가 올라갔다'고 말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점수가 내려갔다'고 말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감정이 고조되었다'고 말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기분이 저조하다'고 말한다. 또한 천국에 간다고 할 때는 항상 '올라간다'고 말하고 지옥에 간다고 할 때는 항상 '떨어진다'고 말한다. 상하고저는 그저 공간의 범위를 나타내는 수사가 아니라 가치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은유인 셈이다.

 어째서 올라가는 것은 항상 좋은 것이고 떨어지는 것은 나쁜 것일까. 저자들은 이에 대한 설명을 유보하고 있다. 단지 이것이 거의 모든 문화의 공통적인 법칙이라는 사실만 밝힐 뿐이다, 바벨탑이 무너지기 전에도 인류는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과정을 경험해 높은 곳의 즐거움과 하강할 때의 범속한 고통을 알았던 것일까.

 우리는 사랑의 정도를 표현할 때 '사랑의 깊이'를 따지지 '사랑의 높이'를 따지진 않는다. 인간들의 의식 깊은 곳에서 사랑의 본질은 후미진 곳에 깊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고, 심지어 사악한 것이다. 확실히 정욕은 '높이 팽창할' 수 있으며 인간의 심리도 흥분하고 크게 '고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감정의 즐거운 유혹일 뿐이며 훔쳐보거나 마약 같은 일시적인 쾌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은 결국 대단히 침울하고 무서운 것이다.

 나는 매일 그에 대한 나의 애욕의 깊이를 측량했었다.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서 하늘의 해도 보지 못하고 끝나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깊이는 스스로 두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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