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다면 우물을 파라고 했던가?
덧붙이자면 한 우물만 파야한다.
물론 우선적으로 물이 나올 자리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바탕이 깔려야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아빠는 재주가 참 많으신 분이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들은 우리 아빠가 선생님이시냐는 질문을 내게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에는 한 선생님께서 전과목을 모두 다 가르쳐주시다 보니 드는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아빠는 글씨도 잘 쓰시고 그림도 잘 그리시고 글도 물론 잘 쓰시고...... 거기에 정치 이야기까지.
어릴 적 내가 생각해도 아빠는 정말 우주 최강의 지식인이었다.
그런 아빠를 닮아서인지 나 역시 이것저것에 다양하게 관심이 많고 호기심 또한 왕성하다.
그릇이 뜨겁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직접 느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또한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시키곤 했다.
대학 때 전공은 수학 그러나 복수전공으로 영어영문학을 택했고 아르바이트로 컴퓨터 강사를 비롯 수학 영어 전과목을 가르쳤다. 9년 전 작가로 등단하면서 논술까지.
은행에도 취직해봤고 관공서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해봤다.
문화센터 강의도 수월하게 따내고 지방신문이긴 하지만 신문과 문학지에 부족한 솜씨지만 시와 칼럼 등 글도 꽤나 연재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건강과 사정만 조금 더 도와준다면 문학 강사도 꿈꾸고 미술평론가도 꿈꾸고 있다.
7살 때 아픈 엄마를 보며, 커서 의사가 되어 엄마를 꼭 치료해주겠다고 내가 늘 말했다고 한다.
그 꿈은 중학교 때까지도 시험 기간이면 거의 하루 한 시간씩 3주간 잠을 자며 공부를 해대는 통에 유지가 되는 듯 싶었으나 그것도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무너져 버렸다.
단순히 학교 다니는 등하굣길이 내겐 체력적으로도 큰 한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에 꿈은 약사로 그 뒤에는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꿈은 계속 수정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건강한 사람을 꿈꾸며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는 목적이 내 꿈의 공통점이었던 것 같다.
공부 잘하던 늘 인정받던 시절을 회상하며 과거에 얽매어 있기를 한참 그것도 지나고 나니 다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꿈의 연장선에 서 있다.
신체가 아닌 정신적인 건강에 초점을 두게 된 채 말이다.
글로써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위로를 건네며 더 나아가 강의로써 사람들과 직접 마주 보며 소통하고 싶은 꿈!
한 우물만 파도 나오기 힘든 물인데
이 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물은커녕
밤새 내리는 이슬조차 못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지만 꿈이 있다면 아직 살아있기에
꿈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이 한 인생 저물기 전에
한 평생 품은 꿈을 이룰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아직 메마른 각박한 대지의 한 줌 흙을 작은 두 손으로 옮겨 보며 물 대신 꿈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