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
도대체 엄마는 언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엄마의 일기장이 점점 두꺼워진다.
엄마의 일기장이 점점 무거워진다.
지금 일흔의 엄마가 마흔의 엄마 자신에게
찾아 갔던 것은 아닐까?
타임 슬랩이라도 한 것처럼
주옥같은 글을 쏟아내고 그러니 살아 보라고,
조금 더 견뎌 보라고 그 시절 엄마를
일기장에서 만나 위로한 것일까?
40년 구멍가게, 엄마의 일기장
엄마,
나 마흔이 다 되어서 엄마의 일기장을
만났어..
엄마의 마흔이 너무 치열해서, 너무 가여워서
나는 그 시절 엄마가 되어 엄마를 바라 봤어..
내 마흔이 엄마의 마흔에 위로를 보내며..
엄마,
엄마처럼 내 일기장도 점점 두꺼워져 가..
내 일기장도 점점 무거워져 가..
결혼하지 말껄 그랬어.
이런 글이 내 일기를 메울 무렵
아빠는 암 투병중셨고, 엄마는 아빠 병수발에 구멍가게 장사에
마음이 쉴 곳 없던 날이었지.
지금 돌이켜 보니,
남편도 나도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를 내면에 안고 살았고
아빠의 인생 책장이 얼마 남지 않을수록
나는 표출하지 않은채 묵혀 둔 서운함과
한 존재로 그저 보호받고 싶었던 마음을 남편에게
터트렸더라고..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음을
알아버린..마흔..
아빠가 떠나고 긴 시간 방황하며
나는 얼마나 내가 엄마 아빠의 삶에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는지 깨달았어.
부모에게서 분리되지 못한 슬픈 눈을 한 아이..
엄마도 그래서 그랬을까?
엄마 안에도 자라지 않은 내면 아이가 살아서
아빠와 그렇게 사는 일이 힘들었을까?
엄마의 삶을 보는 일이 참 힘들었고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썼는데
나도 그냥 참고 또 참는 사람이 되어 점점 마음이
피폐해져 갔어. 급기야는 사라지고 싶다는 목소리를
만나게 되더라..
엄마..
나 그냥
결혼하지 말껄..그랬어..
이런 말, 이제 할 수 있겠어, 이제는 말야.
나 힘든거 들킬까봐 괜찮은 척 살았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아.
나는 이런 말 해도 괜찮으니까. 내 마음 표현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아.
엄마도 그렇게 일기장에 표현했잖아.
안전한 곳에 내 마음을 꺼내 놓고,
그렇게 잠시 숨을 쉬어 봐..
그 시절 엄마처럼..
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