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기 전에 할 일

프롤로그_책 한 권을 써야만 했기에

by 김리사

사라져 버려,

사라져 버려,

그렇게 살 거면 아얘 세상에서 없어져 버려!





모질게 몰아붙이던 나와 늘 동거하며, 늘 나의 삶은 불만족이었다.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나.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나는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영어 강사를 하면서 늘 가면을 쓰고 살았다. 강의장에서 만난 학습자분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좋아 보인다. 좋은 조건 속에, 안정된 일자리, 안정감 있는 부모님의 배경까지. 모두 다 내가 갖지 못한 스펙들이다.


없는 형편에도 영어에는 늘 진심이었고, 파고들었고, 잘 해내던 나, 영어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던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던 과목. 그것이 나를 세상에 붙들어 작고 작아진 나를 살려가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나는 영어에 의해 살려지고 있었다. 다른 것에 힘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저 영어라는 한 조각 구름위에 타고 세상을 아슬아슬하게 구경하던 구경꾼이랄까.


그러던 날,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며 나의 그 구름 한 조각을 걷어갔다. 일자리도 줄어들고, 다시 불안정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간이다. 온라인 줌 수업으로 몇몇 강의를 이어갔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해 지나지 않았던 시기. 나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의 늪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 차라지 잘 되었다. 코로나가 괜히 터진 게 아니지, 이참에 그냥 죽어버리면 좋겠네. '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온갖 모든 것들과 불화의 시기로 기억한다. 남편과도, 나 자신과도, 친구들 속에서도 따뜻함을 찾기 어려워, 나만의 외로운 섬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내 안의 슬픔으로 들어가던 때, 그 슬픔이 알코올 의존증과 겹치며, 매일 같이 술을 마셔대던 그때, 나는 정말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서 나쁜 생각을 했다. 술을 마시면 그 감정이 증폭되어 별로 두려운 것이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실낱같은 이성이 있었고, 남아 있어야 할 가족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괴로움의 근본 속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살아야겠기에,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었기에.


내면의 목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사라지고 싶으면, 그전에 책 한 권 쓰고 가.'

나는 순진하게도 그 목소리를 따랐다.


그리고 무지함으로 저질러 버린 그 모든 일들 중 가장 용감한 일이 되어 인생 기록으로 남았다. 출간후의 마음의 후폭풍을 알았으면 도저히 하지 않았을 일이다. 마치 아이를 낳기전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왜 사람들이 출간을 출산에 비유하는지 알것 같다.


까짓 뭐 죽으면 그만인데 책 한 권 못쓰겠어.

그래 한 권 쓰고 가자.

마음속에 천둥 치는 그 '사라져 버리라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듣고나 가보자.



이렇게 나는 책 쓰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렇게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가 세상 속에 태어났고, 몇 부 팔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강렬한 내 삶의 한 획을 그으며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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