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기의 시작_가슴에 묻어둔 얘기를 꺼내며

Part 1.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by 김리사

"무슨 일 해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친분이 쌓여 우연히 직업을 물으면,

"기업에 영어 강의를 하러 다녀요, 중고등부 그룹 과외도 하고 있고요."라고 말한다.


내게 스펙이라고 할 것은 영어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수업을 하러 나가면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곳에서 모인 중소, 중견기업, 대기업 사람들을 학습자들로 만나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에너지가 한 껏 상승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그들과 같이 내 삶이 업그레이드된 것만 같다. 쭈그러든 내면의 상처는 영어를 하며 회복되는 줄 알았다.


내 내면의 한쪽 그림자를 안은채, 나는 내가 꿈꾸던 영어 강사가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강의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낳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내가 숨겨둔 그림자를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아빠의 암투병이었다.

아빠는 40대부터 암으로, 잦은 교통사고로 고생이 많으셨다. 위암은 두 번의 재발 후 완치가 되셨지만, 몸은 늘 사고 후유증과 통증으로 만신창이었다. 60대가 되면서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암이 한번 더 찾아왔다. 마지막 병명은 폐암이었다. 소세포폐암. 수술도 되지 않는 그저 방사선과 항암치료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병이다.


그렇게 발병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하늘로 떠나셨다.

그렇게 가신 후 가족들은 긴 시간 아빠의 지병과 알코올 의존증에 마음고생이 있었기에, 막상 떠나시니까 심리적으로는 편안해졌던 것 같다. 말로 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덤덤하게 살던 삶을 잘 살았다. 아니 잘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 과정에 나의 그림자는 더욱더 짙고 깊게 나를 잠식했다. 원래부터 그림자밖에 없었던 사람인 마냥 나를 뒤덮어 오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빠처럼 술을 마시며 달래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면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세상이 밝아졌다. 사람들이 내게 친절한 것처럼 느껴지고, 원래부터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각은 착각마저 들었다. 때론 슬픈 장면을 꺼내와 술기운을 빌려서 감정을 쏟아냈고 울어댔으며, 기분 좋은 날에는 세상에 없을 극 E 타입의 사람이 되어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갔다.


어린 시절, 아빠의 알코올의존증으로 온 가족이 그토록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니.. 자괴감이 수시로 올라왔다. 술 마신 다음날 아침은 아얘 거울조차 보지 않았다. 거울을 깨버리고 싶을까 봐. 그런 내가 내 안에 살고 있는 것은 죽도록 싫은 일이었고 마주하기 두려운 그림자였다.


점점 거울 속의 나는 아빠의 그 시절 그것처럼 슬프고 무기력했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꾸려낸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있으면서도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어둡고 슬픈 마음의 공간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현재에 살지 않았다. 미워하고 분노하던 아빠의 나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 무한반복이 나를 떠나가기까지는 3년도 넘게 걸렸으니, 책 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나는 그 공간에 살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빠의 눈에서 살기를 본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마터면 집에 살인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는 어른이 되어서도 긴 시간 내 안에 머물고 있었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워 가둬버린 수많은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하나씩 되살아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때론 '살려 달라며, ' 또 때론 나에게 '죽어버리라며, ' 혹은 '잘못했다며..' 각각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무시무시한 대포 쏘듯 터트리고 떠난다. 포탄을 맞은 마음의 자리는 초토화다. 다음날은 내내 멍하게 좀비처럼 하루를 지냈다.



내내 그런 마음들로 자기혐오와 우울을 반복하며 살다가 우연히 블로그를 시작하며 조금씩 나는 생기를 얻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 내 체면을 깎아먹고, 사람들이 나의 근본을 욕할까 두려운 이야기들을 나는 과감하게 뱉어내기 시작했다. 내 마음으로 들어와 포탄을 쏘아대던 그 천둥소리 같던 마음들을 블로그에 쏟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이런 것을 자기 해방의 글쓰기라고 하나? 일전에 감명깊게 보았던 김영하 작가님의 "자기해방의 글쓰기"라는 주제의 세바시 강연이 떠올랐다.



'나를 해방하자. 이 지옥 같은 마음으로부터, 나를 해방하자!'



글쓰기가 내 삶에 들어오며, 나는 이상한 경험을 수시로 했다. 노트북위에 손을 얹어두면, 곧 몸이 사라지고 그저 자동으로 손이 두두두두 움직이며 글자가 화면에 튀어나오는 일들. 그것을 무수히 겪으며, 한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보랏빛 울음, 보랏빛 슬픔과 절규, 그리고 슬픔의 극에서 만난 생의 환희라는 극까지.



여전히도 나는 내가 왜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 깊이 알지 못한다. 국문학전공도 아니고, 대학 졸업 후 에는 글쓰기와 먼 삶을 살았던 나이다. 그저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내 삶의 응어리가 풀려나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 신이 주신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기왕 쓰는 것 책으로 꽃 피워 보자.

그렇게 다음 단계로 나의 무모한 책 쓰기 본능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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