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간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속에 담긴 아빠의 시간

by 김리사

'온 가족과 애증관계였던 아빠가 증발했다..'

'죽으면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돌아가신 아빠는 도대체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

'아빠의 삶은 왜 그토록 힘들어야 했던가?'



이 질문들로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몇 해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며, 책의 콘셉트를 떠올렸을 때 아빠를 잘 보내드리는 책이 되어야 하겠다 생각했었다. 동시에 나의 상처도 떠나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곳에는 늘 아빠의 나쁜 말버릇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나의 첫 책 제목을 만드는데 기여한 말이었다. "자빠지고 싶은 너에게"라고 할 수 없으니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로 나름대로 순화시켜 출간을 했다.


"빨리 자빠져야 되는데!"


경상도 남자인 아빠의 술 취한 후의 입버릇인 '자빠져야 되는데, '는 '죽어야 된다'는 말이었다. 아마 아빠는 삶에 자신이 없고 몸이 아프니 자꾸만 위축되고 고단했을 것이다. 그것을 말로 풀어 나온 한마디가 그것이었다.


다른 어떤 말보다 내게 이런 아빠의 말버릇이 아프게 박혀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질 때도 같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던 것 같다. 아빠식으로는 "자빠지는 것, " 내식으로는 "사라지는 것, " 그저 삶이 힘들면 삶에서 그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고 싶은 무기력한 자아가 동시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다루고 위로하는데 나의 첫 책 한 챕터를 할애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인 챕터였다. 책 속의 "아빠의 시간"은 아빠를 떠내 보내는 나만의 애도의 시간이자, 정신적으로 아팠던 아빠를 진심으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알코올 의존증에 술 주사가 심한 어른으로 자라게 된 배경, 어린 시절 느꼈던 애정결핍과 가정 내의 불화 등에 대해 그 시절 아빠가 되어 따라 들어간 시간이다.


애도의 시간도 아끼지 않았다. 애도란, 모자람 없이 아주 충분히, 떠나간 그를 생각하고 추억을 다시 떠올려 보는 시간이다. 나는 "아빠의 시간" 안에서 많은 고통을 준 아빠지만 동시에 너무나 사랑이 가득했던 아빠의 귀중한 장면들을 불러왔다. 너무나 사소하지만 내겐 참 따뜻했던 아빠의 사랑을, 그 미소와 온기를 다시 불러와 마땅히 행복해했다. 눈물 어린 내 얼굴이 아빠의 눈물로 번지며 두 얼굴이 하나가 되기도 했으며, 상상 속의 장면들은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짐승 소리의 울음을 울어내며, 아빠의 고단함과 외로움, 트라우마 같은 장면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내내 안고 있던 질문에 답을 찾아왔다.


'아빠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아빠라는 물방울이 지구별 인생 체험을 마치고 다시 거대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갔다. 우리 모두는 거대한 바다이며, 바다는 크고 작게 파도를 만들며 물방울로 잠시 머물기도 한다. 잠시 물방울인 개체로 체험을 하며 각각의 인생여정을 맛보는 것. 그것이 삶이라 결론 내렸다. 그리고 결국 우리 모두는 바다이기에 분리된 적이 없다는 것. 지구별 시계로는 80여 년이라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물방울의 여정은 눈 깜짝할 사이와 같이 바다로 되돌아가는 찰나라는 것.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곧 만나게 될 테니, 아니 어쩌면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근원의 상태로 만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세계관을 품고, 나는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속 "아빠의 시간"이라는 첫 챕터를 덮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대로 웃었다. 밝은 웃음을, 맑은 웃음을, 아빠를 잃은 나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책 쓰기는 이 챕터로 완성이다. 이로서 충분하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다시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긴 이야기들을 나머지 책의 페이지들에 쏟아내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빠의 시간의 장을 덮으며,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그날밤, 아빠가 꿈에 나타나 말없이 웃어 보였다. 죽은자는 꿈 속에서 말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아빠는 아무 말도 없었으나 마치 나는 음성을 들은 것만 같다. 편안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잘했어, 딸.."

"아빠가 늘 함께 할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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