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속에 담긴 엄마의 시간

by 김리사

돌이켜 보면, 참 잔인한 방법으로 엄마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엄마의 험했던 삶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출간으로 털어놓았던 것. 나의 책 두 번째 챕터는 '엄마의 시간'이었다. 내 눈에 비친 그 시절 엄마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라도 나의 내면 아이의 목소리에 다가가고 그 아이를 달래 주고 싶었던 시간이다. 하지만 폭풍이 지나간 자리 엄마에게 깊은 미안함이 남았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그런 딸을 수용해 주셨다. 그녀의 일기장 속에 당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으신 것을 한참 지나고 나중에야 알았다.



2023. 6.2. 미야 책 만나는 날
딸이 출간 후, 보낸 책이 남의 집으로 가서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데도 사람이 없어, 그분이 오후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았다. 기다리는 동안 지치고, 책을 읽으니 울컥울컥 눈물이 나서 힘들었다. 내 삶의 한 20퍼센트는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잊고 있던 내 삶이 드러나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내 잘못도 아닌데 부끄러움이랄까, 힘듦이랄까.
전부 내가 살아낸 일상이었는데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날 저녁은 아무것도, 기도도, TV도 보기 싫었다. 그저 먹먹하여 멍하니 있다가 일찍 큰방으로 들어갔다. 그다음 날도 멍하니 보내고, 그러고 나서야 나머지 책을 읽었다.
그러고 나서… 삼 남매에게 미안했다. 아이들한테 숨긴다고 숨겼는데, 아이들은 나보다 더 상처를 받고, 더 생생하게 기억 속에 가둔 채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나 보다. 딸이 내 기억과 다르게 기억하는 부분도 있었고, 책을 통해 다른 눈으로 그 시간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을 보듬어 주지도 못하고, 잘 안아 주지도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빴던 것 같다.
미안해, 아들, 딸들… 사랑해. 고마워. 잘 커 줘서.


나는 30년 넘도록 그저 착한 딸이었다. 엄마에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 드리고, 친구 같고, 막내라 때론 아기 같고. 그런 딸이 서른 후반에 사춘기 같은 시간을 보내며 '이상한 책'을 출간해 냈으니, 엄마의 입장에서 얼마나 놀라셨을까?


여기서 말한 '이상한 책'이란 우리 가정사의 힘들음과 그 속에서 내가 느낀 그 전쟁과도 같은 마음을 '까발린 책'이라는 것이다. 다시 돌이켜 보아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무척 놀랍다. 아마 그때 그 책을 쓰던 심정은 정말 '죽을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잡아먹겠다는' 정도의 비장한 각오였던 것 같다. 가족 누구라도, 세상 누구라도, 내 입을 부디 틀어막지 말아 달라는, 여태껏 내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꾹꾹 눌러 담아 둔 그것들의 폭동인 것이다.


엄마는 감사하게도 나의 출간으로 풀어버린 사춘기를 어른스럽게 안아 주셨다. 감사하게도 수용받은 내 어린 자아의 마음은 이제 천사의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아빠가 계실 그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알아가는 시간을 맞았다.


엄마는 생각보다 더 단단한 어른이었다. 긴 세월 일기장을 쓰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가? 그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독하고 무서우리만치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 내가 본 엄마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떤 일이 와도 긴 시간 자신과 일기장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나는 겨우 마흔 즈음에 와서야 내 마음을 돌보는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아직 엄마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그렇게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속에 엄마의 시간을 떠나보냈다. 슬프고 무력하고 수동적인 줄만 알았던 엄마의 그 시간을 다르게 편집하며 말이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를 끝까지 책임지고 해냈으며, 세 차례의 암투병을 돌보아 주었으며, 잦은 교통사고로 만신창이였던 아빠를 인간답게 보살피고 보내주었다.


엄마의 시간을 회상하며, '아모르파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는 힘을 가진 엄마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에 합당한 더 나은 수식어를 아직 찾지 못해 아쉽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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