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의 마음 카페
평생을 ‘다리통이 굵은 사람’으로 살아왔다. 치마보다는 바지를,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것에 익숙했던 나의 하체는 언제나 내게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이자 지우고 싶은 흔적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무심코 내려다본 나의 오른쪽 종아리 위로 낯선 장면 하나가 겹쳐 지나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엄마의 다리’였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하체가 튼실하다. 외할머니부터 엄마,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진 유전적 대물림이다. 거울 속 내 굵은 다리를 보며 한숨을 내쉴 때마다 나는 이것이 원망스러운 유산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다리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조금 가늘어졌는데, 그것이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기력의 쇠함 때문인지 몰라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은 야윈 엄마의 다리가 아니었다. 오래전, 끔찍한 교통사고로 분쇄골절을 입었던 엄마의 상처 입은 다리였다. 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뼈가 부서지고 살이 패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었던 그 험한 흔적들. 병원 침대 위에서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엄마의 고통이 내 매끈한 다리 위로 선명하게 오버랩되었다.
순간, 묵직한 깨달음이 머리를 쳤다. 나는 그토록 내 다리를 책망하고 미워했는데, 정작 그 다리는 아무런 흉터 없이 건강하게 내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상한 모양으로 아물어버린 엄마의 작아진 다리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다리가 조금 굵으면 어떠니.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고 이렇게나 튼실한데. 얼마나 다행이니?”
그랬다. 세상에는 너무 당연해서 잊고 지내는 고마움이 너무도 많다. 엄마가 그 모진 사고를 겪고도 다시 일어나 걸으실 수 있게 된 것이 기적 같은 다행이라면, 내가 이 튼튼한 다리로 세상 어디든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또한 축복이었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굵을지언정, 이 다리는 나를 한 번도 외면하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 어디든 데려다주었다.
오늘 아침, 나는 평생 미워만 했던 나의 ‘통다리’에게 처음으로 화해를 청해본다. 수고했다는 위로와 함께 고맙다는 진심을 담아 다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못난 주인 만나 구박만 받았지?
나를 세상 여기저기로 데려다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도 잘 부탁해.”
콤플렉스라 여겼던 나의 신체 부위가 사실은 가장 건강한 생명력의 증거였음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의 아침은 평온해졌다. 당신이 미워하는 오늘의 무언가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기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