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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Feb 09. 2023

죽어가던 너와 함께

리사의 자기 사랑 에세이

내가 지금까지 마흔 해 넘게 살면서 한 일들은

아주 아주 많지만 그중 가장 잘한 일은

바로 한 사람을 살린 일이다.



죽어가는 그녀를 살렸다.

사라지고 싶어서 몸부림치며 자기 학대를 일삼던 그녀를 내가 살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던 그녀는 점점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자기가 아프다는 것도 모른 채 삶을 벼티기만 했다. 괜찮다는 말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며, '난 괜찮아.' 다들 사는 게 힘든데 뭐, 너는 괜찮니? 네가 힘들 땐 나에게 꼭 말해 줘. 내가 위로해 줄게.'이렇게 먼저 타인을 위로하려 한다. 그렇게 자신은 정말 괜찮은 줄로만 알고 씩씩하게 살았던 것이다. 몸이 여러 개 인 듯 분신술을 써가면서 일과 가정생활을 위해 여기저기에 존재하던 그녀는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흐르더니 어디서 오는지 모를 괴성이 뛰쳐 나온다. 아아아악~~~ 신발 비슷한 단어를 외치며 욕도 잘하지 않던 그녀가 욕을 울부짖듯 내뱉는다. 그리곤 운전대를 꺾고 싶어 진다.



뭔가 단단히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처음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녀 안의 괴물과 마주했다. 그녀의 병은 단시간에 치료되진 않았다. 오랫동안 감정을 돌보지 않았던 그녀는 억눌린 감정의 시간만큼 긴 긴 날을 마음속에서 지껄이는 목소리와 사투를 벌였다.



그 과정에 내가 그녀를 만났고 나는 죽어가던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조금씩 우울의 늪에서 걸어 나왔다. 아직도 어쩌면 그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증상은

오랫동안 올라오는 자신 안의 목소리를 모른채하면 생기는 일이다.


가면성 우울증상이었다.


가면성 우울 증상.  (19개 중 해당 증상이 많을수록 가면성 우울 증상자에 가깝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죄책감이 든다.

이유 없이 슬픔에 빠진다.

'나는 실패자다'라는 생각이 날 괴롭힌다.

미래가 비관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원인이 나의 잘못으로 시작됐다고 느낀다.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배가 고파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추하다는 느낌이 든다.

불면증에 시달린다.

체중이 갑자기 줄었다.

열등감이 심하다.

내 모습을 돌아보면 실망스럽다.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일을 하지 않아도 피곤하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을 잘 못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진다

매사에 의욕이 떨어진다.

짜증이나 화가 자주 난다

평소에 자주 눈물을 흘리는 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체크리스트>




상당 부분 그녀의 증상이었다.

문제는 '가면성'이라는 말이 앞서 붙었듯이 평소의 삶에서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있는 우울이기 때문에 누군가에 공개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그녀의 증상을 알아차리고 나는 그녀와 함께 많이도 울었다. 울어 낸 울음만큼 그녀는 위로를 받았고 나도 그녀를 더 알아가게 되었다.


상당 부분 그녀의 어린 시절 상처와 관련이 있지만 어떤 부분은 선천적으로 그런 기질을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많이 아프고 슬펐다. 오랫동안 그렇게 아프게 지낸 줄도 모르고 씩씩한 척 살아온 시간이 아렸다. 온 마음이 아리고 찌릿하며 두통도 생겼다.



공감이란,

상대의 아픔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 같이 아프다가 손잡고 돌아 나오는 어느 후미진 골목길 같다. 골목이 참 두렵다. 골목 모퉁이를 돌면 뭔가 훅,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이 도사린다.


그럼에도 그 골목에 그 마음과 계속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그녀를 살리기로 한 것은

그녀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후미진 골목길을 그녀의 손을 잡고 울고 웃어야 더 밝고 건강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젠 자동차 핸들을 꺾고 싶은 무모한 충동성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녀와 봄 햇살 한 자락에 들떠서 웃으며 놀았다. 오늘도 죽음을 생각한다. 살고 싶어서 말이다.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가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온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그렇게 사랑하기로 했다.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우리의 운명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살아있는 동안 나는 그녀와 더 행복해지기로 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그녀를 살린 일이다.

아직 그녀의 삶에 어떤 영광과 희망과 빛나는 태양의 순간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이미 오늘 봄빛이 모든 할 일을 다하고 간다.



삶은 봄날의 봄바람처럼 그렇게 따스하고 다정하다. 적어도 오늘은 말이다.

그러니 죽기 전까진 죽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더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평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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