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국인은 꿈을 거래하게 되었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꿈은 언제나 해석하고 싶은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오랜 탐구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는 아직 다 풀리지 않았지만요. 꿈에 대한 한국인들의 믿음은 더 특별합니다.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꿈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죽하면 '꿈자리가 사납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와 같은 말들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될까요. 뿐만 아니라 우리말에는 '꿈에 밟히다', '꿈도 못 꾸다', '꿈에 떡 맛보듯'처럼 '꿈'과 관련된 속담과 관용구도 정말 많습니다.
한국인에게 꿈은 개인 내면의 무의식을 넘어,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는 듯 합니다. 한국인의 꿈 속에는 지혜나 예언, 어떠한 일에 대한 기대와 징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꿈이 행운이나 불행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용이나 호랑이, 돼지가 나오는 꿈은 '좋은 꿈'이었습니다. 용과 호랑이는 명예와 성공을, 돼지는 부를 상징합니다. 이들이 나오는 꿈을 꾸면 행운이 오는 것입니다. 또, 배설물이 나오는 꿈도 돈과 소원 성취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파리올림픽 태권도 58kg급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준 선수는 대회 전에 소변이 멈추지 않고 나오는 꿈을 꿨다고 밝혔고, <오징어 게임>의 '한미녀' 역을 맡은 배우 김주령도 드라마 공개 며칠 전 변이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꿈을 꿨다고 말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는 '당장 일어나서 로또 사야하는 꿈', '로또 1등 당첨자 무슨 꿈 꿨나'와 같은 게시물들이 매우 흔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꿈'에 대한 믿음은 한국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좋은 꿈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은 종종 꿈의 주인을 바꾸곤 했습니다. 적당한 대가를 받고, 꿈의 신묘함이 더욱 필요한 사람에게 그 꿈을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꿈을 사고파는 이같은 전통은 한국만의 독특한 풍습입니다. 이 흔적은 삼국시대에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문희매몽'과 <고려사>의 '진의매몽'이 그 예입니다. '문희매몽'은 신라 김유신의 누이 김문희가 언니인 김보희의 꿈을 사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김보희가 꾼 꿈은 서악(西岳)에 올라 소변을 보니 장안에 가득 찼다는 내용입니다. 다음날 김보희가 꿈 이야기를 하자, 김문희는 그 꿈을 사고 싶다며 비단 치마 한 벌을 주었습니다. '진의매몽'은 보육(寶育)의 첫째 딸이 오관산 정상에 올라 소변을 보니 천하에 가득 흘러내렸다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둘째 딸 진의가 그 꿈을 사서 정화왕후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좋은 꿈을 사들여 왕비가 된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길몽은 지위의 상승과 큰 운을 가져오는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꿈 매매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오랜 풍습이지만, 보통 구두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서화 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길몽을 사고판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는 문서 2점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문서에는 꿈을 사고파는 양측의 날인과, 거래를 지켜본 증인 두 명의 서명이 포함되어있습니다.
1814년 대구에 사는 박기상은 청룡과 황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웅장한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이를 한양에 과거 시험을 치러 가는 친척 동생 박용혁에게 팔았습니다. 꿈값으로는 1천냥을 주고받기로 되어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금액을 과거 급제 후에 지급하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자료는 1840년 2월 2일 경북 봉화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진주강씨 집안의 하녀 신씨가 청룡과 황룡이 엉켜있는 꿈을 꿨고, 이를 집주인의 친적인 강만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신씨는 꿈의 대가로 청·홍·백의 삼색 실을 받았습니다. 문서에는 꿈의 주인인 신씨와 그 증인으로 참석한 남편 박충금의 날인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인은 상서로운 기운이 담긴 꿈을 통해 미래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행운이 깃들기를 바랐습니다. 한국의 특별한 전통, 꿈 매매. 오늘밤 여러분의 꿈은 어떤 내용일까요? 꿈꾸던 일에 도전할 용기와 힘이 필요했다면 지금 시간을 내어 마음속으로 용과 호랑이를 불러 보세요. 아무런 꿈도 꾸지 못했다면 주변에서 좋은 꿈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위에서 본 박기상과 신씨처럼 여러분의 첫 꿈 거래를 문서로 남겨보는 것도 좋겠네요.
모든 생명력이 추동하는 3월, 여러분께도 행운의 꿈이 가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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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이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