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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Aug 20. 2023

인생2막

인생2막이라고 하면 대개 젊음을 바쳐 일한 직장을 은퇴하고, 남은 인생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좀 다른,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런데 인생2막을 얘기할 때 주로 중심이 되는 것은 경제수단으로써의 직업에 대한 것으로,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찾아 돈벌이를 이어가는 것이 인생2막을 시작하는 것인 양 포장되곤 한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직업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이긴 하지만 사회 초년병 시절, 그 직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간과되었던 고민들을, 인생2막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또 다시 지나쳐버리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젊은 시절 자신에 맞는 직업을 잘 찾아 그 일에 보람을 느끼고 업적을 쌓아 성취감을 느낀 사람이라면 인생2막도 그 연장선에 따른 일을 해나가며 자신의 성취를 연장시킬 수 있겠지만 변화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인생2막을 단지 새로운 돈벌이를 찾는 것으로 시작되게 해서는 안 된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그 본성(nature)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본성을 모른다는 것이 불행이자 아이러니이지만 사실, 정직하게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면, 우리의 대부분은, 자신의 본성을 무시하거나, 속이거나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둔 체로 살아왔기에 이제는 어떤 모습이 자신의 진짜 마음 생김새인지 잘 알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불행한 일이며 슬픈 일이다. 우리는 경쟁과 생존이라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고단한 삶속에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때로는 실제의 자기모습을 감추며 페르소나를 만들고, 때로는 실제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도록 자아를 팽창시켜 그 허무하고도 무거운 굴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외로움에 시달려왔다. 인생2막의 무대는 무시되고 감추어졌던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그 본성에 어울리는 참 삶을 사는 기회의 무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상처받은 자아를 어루만져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거웠던 짐은 내려놓고 단출하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본성을 찾는 일은 지나온 삶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순수했던 유년시절의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구하고, 마음가는대로 따르는 경향이 강했기에 그때의 모습에서 우리의 본성을 발견해 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천진하게 웃어대는 추억의 사진을 보며 그 때의 자신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다보면 장난기 많고 항상 남을 웃겨주는 것을 좋아했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혹은 먼지 묻은 일기장에 그려진 낙서를 보면서 그림을 그릴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도 있다. 시간을 두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살펴보고 현재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숙고하다보면 우리는 서서히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게 되고 덧 씌워진 페르소나를 구별해 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본성을 발견해 냈다면 이제 인생2막의 출발점에서부터는 그 본성에 따르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내려놓자! 인생의 후반전은 가식과 페르소나는 벗어버리고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에 순응하며 살아가 보자!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행복을 생각할 때, 만족을 주는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상상하며 어떤 단계를 극복하고 행복한 단계로 올라가면 더 이상은 불행과는 만날 일이 없는, 그런 상태를 상상한다. 마치 행복이란 노력하여 도달할 수 있는 성취 가능한 목표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의 행복은 환상이다. 세상은 비가역적이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원래대로 담아낼 수 없고 지금 이순간이라고 외치자마자 그 순간은 지나가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다. 지속가능한 만족상태란 존재하지 않으니 행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무모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행복이라는 무모한 환상을 쫓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다. 하물며 인생2막을 새로이 시작하는 인생들에게 남겨진 시간이란 오랜만에 찾아온 황금연휴처럼 짧고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종교가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의 구원으로 짧은 인생의 아쉬움을 위로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쓸쓸하고 허무한 시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죽음 이후의 구원을 믿진 않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미련도 없다. 나의 영혼을 구원해줄 신의 존재를 믿는 대신 우주를 운전하는 거대한 자연법칙을 숭배하며 그것이 나에게 신이며 위로를 주는 절대자이다. 그 자연신이 내게 말한다. 너를 포함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일생은 여기서 끝나지만 그 생명을 구성한 재료들은 다른 생명을 구성하는 재료로 사용되고 순환될 것이라고. 자연신이 알려주는 이 말씀(?)은 인생의 덧없음으로 인한 허무감에 빠져버릴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도록 도와준다. 생명으로서 주어진 한시적인 시간을 살아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남겨진 세계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삶의 시간은 다른 생명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행복이라는 무모한 환상을 쫓는 대신 매 순간 삶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 삶이란 매 순간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순간들이 매번 즐겁고 만족스러울 수도 없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픈 일을 맞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다양한 모습들일 뿐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행복한 상태로 승화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 사건들을 맞는 우리의 마음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매사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인생2막의 삶은 그러한 마음자세로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은퇴 후에도 적당한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다만 은퇴 전 일해 왔던 시간에 비해 은퇴 후의 시간은 반 이하라면 좋겠다. 은퇴 후 삶에 있어서 적당한 일이 주는 가치와 보람에 대해 새겨들음직한 조언들이 많지만, 그 무엇보다도 내게 일이 필요한 이유는 지루함을 못 참는 나의 본성상 일없이 하루를 채우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꼭 돈이 목적일 필요는 없다. 물론 은퇴 후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돈벌이가 필요하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여유가 있다면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땀을 흘리는 원초적인 노동이 곁들여진 일이라면 더 좋겠다. 땀을 흘린 만큼의 대가만 받고 만족하며, 욕심내지 않는 정직한 노동은 은퇴 전 세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했던 부조리한 모습과는 맞지 않지만 자신의 개별적인 본성과는 어울릴 수 있다.         


 인생의 가치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대답하기에 너무 거대한 철학적 질문이고 우리의 짧은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의미 없다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은 인생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창작하는 일에 가치를 두고 있다. 창작의 수준이 어떠한가는 중요치 않으며 창작물이 무엇인가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소박하더라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세상에 존재하게 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 창작물에 대한 가치를 공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 앵글로 조명한 인생2막으로서의 삶이 무대 위에 오른다.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그에 순응하며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단출해진 마음으로 현재의 매순간을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간다.

자전거를 타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목가구를 만들고

....

사랑하고...

그리고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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