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의 육아모임 아.지.트 (2)
옆집선배의 아지트 이야기
아빠가 되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까? 요즘은,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도 많이 있지만, 경제활동이 아빠의 주역할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더 큰 것 같다. 나 또한 그 대다수의 아빠 중 한명이었다. 다만, 가능한 빨리 퇴근하여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고, 주말에는 최대한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하고자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육아에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를 위한 자기개발을 하면서 부터다. 자기개발은 비단 나만을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보다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미래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육아에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지 않고, 한발짝 다가서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 때 만난 것이 아.지.트(아빠의 지금을 트레이닝 하자) 프로그램이었다.
자기개발을 하게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시스템에 나를 맞겨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어느정도의 의무감이나 강제성이 없으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도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출석을 하고 졸업을 해야한다는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과연, 이런 학교의 시스템 없이 학생의 자율성에 맡겼다면, 과연 학교를 꾸준히 다닐 수 있었을까? 매일 출석 하는 것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쉽고 편안한 것을 찾다 보니, 행동을 촉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지트는 나에게 육아라는 활동을 더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한 활동과 아빠의 성장을 위한 자기개발 내용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도 타인의 시선은 의식하기 마련이다. 서로가 인증하는 내용을 보면, 자연스레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발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아지트는 최적의 프로그램이자 시스템이었다.
2021년 8월 말 부터 '육아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반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 그 일기장은 절반가까이 아이들을 생각하며 쓴 글로 채워지고 있다. 육아 감사 일기는 나의 새벽 루틴 중 하나이다. 다른 어떤 루틴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바로 이 일기이다.
일기라고 해서 길게 쓰지 않는다. 하루에 쓰는 양은 130mm x 196mm의 작은 노트 절반 정도이다. 문장으로 치면, 8~10문장 정도이다. 아들이 둘 있으니, 매일 20문장 정도를 아이들 생각으로 적어가고 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간혹 쓸 내용이 떠올르지 않아도, 10분을 넘기는 일은 드물다. 하루 24시간, 1,440분 중에서 육아 감사 일기에 필요한 시간은 0.7%정도 이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1%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아이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것이 과연 힘든 일일까? 물론 쉽지 않았다. 늦잠을 자게 되는 날이나, 지쳐 힘든 날은 쓰지 못한 날도 있다. 그런 날은 과감하게 넘어가기도 하고, 잠들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적기도 했다.
육아 감사 일기라 하지만, 늘상 감사한 일만 쓸 수는 없었다. 호된 훈육을 하고 난 다음 날이면, 감사한 마음 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클 때가 있다. 아빠의 마음을 몰라주던 날이면, 되려 섭섭한 마음을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나의 생각과 마음을 글로 써내려간다. 일기란 그런것 아닐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일기라 생각하기에 솔직함을 쓰고 있다.
육아 감사 일기는 매일 쓰는 짧은 편지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내 마음을 글로 써낸 편지이다. 지금은 글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훗날 언젠가 글을 읽을 수 있을 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때론 밝은 내용이고, 때론 씁쓸한 마음이 담긴 내용의 편지가 된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진심이다. 그런 아빠의 진심이 닿을 그 날을 위해 묵묵히 써내려간다.
이렇게 글을 쓰는 10분은 온전히 아이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
일기가 그러하듯, 이 시간은 아빠로서 나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는 순간이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고, 육아의 전문가가 아니다. 무엇보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실수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다. 아빠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잘 해나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리뷰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이 짧은 10분이 쌓이고 쌓이면, 분명 두 아들에게 좋은 아빠의 모습으로 만들어 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소 악필인 나의 글씨를 언제 쯤 읽을 수 있게 될까?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하여도, 나의 지렁이 같은 글씨를 읽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조금 기대하고 있는 것은, 내가 쓴 글씨를 나에게 물으러 오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 순간이 오면, 그 일기를 썼을 때 아이의 행동과 아빠의 생각이 어땠는지 이야기 나눠 보고 싶다. 함께 한 순간들의 기록을 보며 수다 떨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 모습을 떠올리면 도무지 펜을 멈출 수가 없다. 이 기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내가 멈추기 전까지는 계속 해나갈 것이다. 육아 전선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육아 감사 일기는 계속 될 것이다. 부디, 아빠가 만들어가고 있는 작고 소박한 선물을 아들들이 감사하게 받아 주길 바랄 뿐이다.
다독가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대한민국 평균 독서량 보다는 많은 책을 읽고 있다. 대부분 자기개발 분야이지만, 간혹 업무에 도움되는 실용서적이나 경제, 심리, 마케팅에 대한 책을 읽는다. 독서 편식이 조금 심한 편이다. 소설 문학도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 하는데, 육아 서적은 오죽할까? 그리고, 내 손으로 동화책을 주문한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내가 오은영 선생님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읽었고, 전이수 작가의 『걸어가는 늑대들』, 『새로운 가족』을 주문해서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이 모든 것은 아지트 프로그램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아내는 임신한 순간부터, 육아 관련 책을 사서 읽곤 했다. 그렇게 아내가 구입한 책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끄럽지만, '그래 육아는 엄마 담당이지.'라고 생각했었다. 아내가 사둔 육아 관련 서적은 제목만 봤을 뿐, 꺼내어 목차나 머리말도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아지트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함께 읽은 책이 오은영 선생님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였다. 물론, 아내는 이 책을 일찌감치 구매해 두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 때부터 아내가 사둔 책의 제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서점에 갈 일이 있으면, 희한하게도 육아 서적 코너에 발길이 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육아서적 중에 내가 직접 구입한 책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육아에 열정이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학습 서적에도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인문고전에 관심이 조금은 있는 터라, 사자소학, 명심보감 같은 책도 아이들을 위한 것이 있는지 한 번 더 찾아보기도 했다. 아지트에서 함께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편식에 가까운 독서를 하고 있을 것이다.
육아 서적에 관심을 가진 것 보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내 손으로 동화책을 주문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지트 독서 모임의 지정도서였기에 주문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손으로 아이들과 함께 읽을 동화책을 살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문이 나 스스로에게는 큰 변곡점과도 같았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사놓은 책을 읽고, 엄마가 준비한 야외활동을 함께 하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직접 아이들과 읽을 책을 사고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도의 작은 차이가 만드는 큰 변화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한 점에서 1도의 차이로 걸어 나간다고 보자. 처음 시작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계속 앞으로 나가다보면 전혀 다른 방향을 걷고 있게 된다. 지구의 둘레가 40,086km 인데, 위도 1도 차이는 약 111km의 차이를 만든다. 1도라는 작은 차이가 그만큼 큰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의 방향을 1도 꺾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 방향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꺾은 1도의 방향에는 아이들과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한 미래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이 변화의 여정을 아지트의 아빠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