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대한 기대감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조바심

by 예담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하겠지만 내 앞에선 아주 크고, 시간이 흐른 뒤 미래에서 보면 웃어넘기고 말 일들도 현재에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앞서 시간을 지나간 누군가가 아무리 말해주어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알 것 같지만 모른다. 내가 그 시간을 통과하는 날이 오면 불현듯 그 말들이 스치며 그제야 알게 된다. 그래도 시간을 먼저 통과한 이들은 자꾸 말해주고 싶다.






"언니! 영유랑 놀이학교 몇 군데 알아봤어요. 여기는 이렇고요. 저기는 저렇고... "



발단은 E엄마와 나의 '유리멘탈'로 부터 였다. 나는 첫째 돼지의 집을 지었기에 작은 바람에도 휩쓸리고 흔들렸다. 지쳐있을 때였다.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을 돌보며 떨어지는 체력은 그러려니 했지만 문제는 정신력이었다. 남편은 해외출장이 잦았고 퇴근 후의 약속도 많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엄마에게 늦은 시간까지 아이 둘의 케어를 부탁할 염치가 없었다. 더군다나 엄마는 활동적인 분으로 자원봉사회장, 부녀회장을 맡으며 대외활동이나 모임이 잦기도 하셨다. 남편과의 상의 끝에, 나는 일을 쉬기로 했다. (아이들을 키워놓고 다시 일을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과의 전쟁과 평화! 지지고 볶는 하루는 적당히 고소하고 달기도 했고 탄맛이 날 때도 있었다. 전엔 겪어보지 않았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가끔 우울했고, 때때로 멍해졌다. 숨기고 싶었던 못난 마음을 감추며 겉으론 즐겁고 명랑했던 이중성을 이제서야 인정한다.


옆 동에 사는 한 엄마와 친해졌다. 차분하면서도 밝고 말이 잘 통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단정하지만 센스 있게 입은 옷도, 밝은 표정도, 무엇보다 말을 걸며 눈을 맞출 때의 선한 눈빛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놀이터에서 알게 되었다. ( 흔한 일이겠지만, 나 같은 성향의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 상대가 말을 걸었다 해도 짧게 대답만 한 채 어색함에 이내 자리를 뜨고 먼저 말을 거는 확률은 제로다. 선의를 의심해서 호의를 사양하고, 친근하게 다가서려고 하면 정중히 인사를 한 채 등을 돌려 걸어가버리는 차가운 사람이 나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하고 싶지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사람을 믿고 사귐에 있어 나의 안목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순간이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찾아온 배신감과 슬픔은 상대를 넘어서서 믿음을 가졌던 나를 할퀴고 부정하게 만들었다.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었던 안목을 탓하며 새로운 인연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마치 '바람과 해님' 우화처럼 무장해제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수다스럽지 않고 (타인의 험담을 하지 않고 연예인 이야기도 하지 않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들만 진심으로 나누게 되는 E엄마와 서로의 집을 들락거리며 일상을 토닥이며 나누었다. 사실 가장 접점을 이루었던 부분은 책 육아였다. 책으로 가득 찬 그녀의 집과 책이 통로였던 나는 맞닿을 수 있었다.




아이는 4살 때 어린이집의 5살 반에 들어갔다. 또래들에 비해 인지능력이 높았고 한글도 다 뗀 터라 5살 반이 적합할 수도 있겠다는 원장 선생님의 말씀에 수긍하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후에 벌어질 일들은 모른 채.


다섯 살 반에 들어간 네 살짜리 아이는 당연히 같은 반 아이들을 친구처럼 대했다. 하루 종일 같은 반 친구로 지내다가 어린이집을 마치고 뛰어나온 놀이터에서 갑자기 언니! 오빠! 가 될 리 만무했다. 매번 "언니라고 해야 해."라고 알려주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어린이집에선 같은 반 또래들 모두 이름을 불렀으니, 놀이터에서 "노랑아!" "하늘아"라고 불렀을 뿐인데 그럴 때마다 호칭을 되짚어주며 놀이의 흐름을 깨는 것이 미안했다.


한 살 어린데도 불구하고 활기차며 손끝이 야무져서, 아이들과 어울릴 때에 중심에 있다거나 활동자료가 올라올 때 잘하는 축에 끼는 경우가 많았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있어도 전혀 기죽지 않고 제 할 말 다하는 아이는 부모 입장에서야 용기 있어 보이지. 반대의 입장인, 한 살 많은데 기에 눌려있는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 보면 속이 터질 노릇인 거다. 예담이보다 한 뼘이나 키가 컸고 친하게 어울려 놀곤 했던 아이의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언니"라고 부르게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놀이터에서 놀 땐 곧잘 잊어버리나 봐요. 죄송해요. 놀이터에 들어설 때 한번 더 짚어줄게요."

"그래요. 오해하지 않고 들어줘서 고마워요."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간이라고. 일 년을 앞서 보냈으면 내년의 계획도 미리 세웠어야 했다. 아이가 5살이 되면 같은 반 친구들은 6살로 졸업을 하고 유치원으로 가게 되는 것을 난 왜 처음부터 염두해 보지 않았을까.


원장 선생님은 5살 반을 한 해 더 하면 된다 하셨고, 그렇다면 똑같은 과정을 1년 더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은 당연히 보육 중심인 것을 차치하더라도 학습놀이 과정에 단계 없이 일 년을 답보하도록 둘 순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6살에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5살은 사립 영유나, 놀이학교를 보내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이 E엄마와 친분을 쌓아가고 있을 때였다.


아이와 동갑친구인 E는 이미 4살 때부터 놀이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한글을 뗀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어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못하는 게 없고 야무진 E를 보며 혹했다. 우리는 우리의 갈길을 가면 된다며 "많이 놀고, 경험하게 하자." 남편과 늘 이야기했던 교육철학은 뭉게뭉게 구름 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E엄마는 똑똑하고 야무진 데다 정보도 많았다. 아이의 교육에 관해 듣고 있다 보면 "여긴 어딘가?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었나?" 자괴감이 들 때가 있었다. 교육에만 열을 올렸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완벽했던 책 육아에, 심지어 주기적인 긴 여행으로 아이에게 경험이 주는 배움과 자립심을 키워주고 있었다.


"언니, 라스베이거스 여행 갔다 올게요."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다 비슷할 줄 알았는데. 조금씩 육아에 찌들어서 성격에 모가 나 있고. 푸석푸석한 얼굴로 거울도 보지 않은 채 아침이 되면 아이를 챙기기 바쁘고. 아이로 인해 희로애락을 맛보고. 남편은 늘 바쁘고. 명절 연휴에 여행을 가려면 양가엔 미리 다녀오고 허락을 맡아야 하고. 밤잠 설치는 아이를 재우는 건 내일 아침 출근을 하지 않는 나의 몫이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경제적인 부유함이 주는 자유로운 사고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교육관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당당함이 시선을 머물게 했다.


어쩌면 그녀는 못다한 자아를 아이에게 투영하여 꿈을 꾸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잊고 있었던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직 나에게만 한정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이에 대한 욕심, 한계점을 초과해버린 사랑을 만들었다. 뭐든지 적당량을 맞추기가 어렵다.


아이는 놀이학교에 입학을 했다. 교육비는 대략 한 학기에 800 정도로, 한 달에 +@100을 넘나들었다. 갖가지 창의수업에, 원어민 수업과 악기수업, 유기농 식단과 간식, 매주 안전하게 이루어지는 야외 체험학습까지 완벽했다. 잘 짜인 프로그램과 적은 인원을 케어하기에 안정적인 선생님의 세심함이 어우러져 만족할 하모니를 내었다. 아이는 친절한 선생님과 재미있는 수업을 하는 놀이학교를 좋아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완벽함이 주는 페이백은 선명했지만 그로 인해 깨닫지 못한 채 간과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결핍이었다. 아이는 결핍을 경험하지 못했다.


늘 잘 들어주고 다정한 선생님들과 지내다 보니 누구와 만나도 들어주기보단 말하기에 능했다. 높아진 자존감과 함께 승부욕도 강해서 하나를 하면 만족감이 들 때까지 도전을 하곤 했다. 다양한 놀이를 접하다 보니 사고력이 높아졌지만 사소한 놀이에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칭찬받으며 최고가 되는 재미에 길들여진 아이는 무관심한 선생님을 만나며 서운해하고 질 때마다 큰 상실감을 느꼈다. (다양한 선생님이 있고,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고 나쁜 선생님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었다. 항상 네가 잘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네가 질 때 이기는 누군가에게 박수를 쳐줄 수 있어야 한다고. )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깨끗한 화장실만 가보았던 아이는 공중화장실을 보며 기겁을 했고, 식판의 잔반을 스스로 치워야 하는 단체생활을 불편해했다. 뭔가 정화된 환경에서 비슷한 친구들과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놀이터에서 다소 과격한 친구를 만나면 같이 어울리는 걸 꺼려했다. 물론 아이의 기질적인 면들에 의한 것들도 있지만 결핍과 좌절의 경험이 적은 이유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계에 따른 성과와 결과는 선명하게 드러났으나 과정 속의 결여된 부분은 보이지 않아 짐작할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로 보이게 된다. 당시에 내었던 성과는 흐려지지만 과정 속에 결여되었던 결핍, 경험하지 못했던 좌절감은 또 다른 무수한 시작 앞에서 머뭇거리게 한다.


사랑을 잘 잃기 위해서 더욱 견고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모가 만들어주는 사랑이 너무나 달콤하여 그것에만 종속되어 있다면, 안전한 감옥이 되어버릴 수도 있음을! 성장을 하며 사랑의 흐름을 조절하고 때론 물길을 바꿔주어야 함은 엄마의 몫이다. 물길이 바뀌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에게는 틈이 필요하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 생각을 떠올리며 주체가 되어 놀이를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공부를 골라서 하며, 읽고 싶은 책은 어디든 접어두고 자유로이 읽을 틈. 꽉 짜인 스케줄과 깨끗이 정돈된 책장을 대신한 자유가 필요하다.


아이는 5살, 일 년을 놀이학교에 다녔고 6살에 유치원에 갔다. 보통의 시간 속에 아이를 놓아주며 나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


어느덧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발레를 배우는 것을 제외하면) 사교육은 하지 않는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조바심과 기대로 아이의 손을 끌어당기지 않으려고 한다. 배움은 스스로 팔을 휘두르며 걷는 것이다.







부모님의 내리사랑 아래서 나는 뙤약볕에 방치된 젤리처럼 흐늘흐늘한 인간으로 자랐다. 아무도 그렇게 키우지 않았지만 혼자 단단함을 잃어갔다.


태양빛과 바다는 단지 따뜻하고 넓다는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 가치를 있는 그대로 풍성하게 지켜주는 무엇이다.


성취감은 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지루함을 묵묵히 견뎌내는 시간 뒤에 찾아옵니다.


자존감의 세 가지 기본축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 자기 조절력을 가진 아이가 자존감도 높다.


실패란 '난 오늘 뭔가를 하는데 실패했어. 그러니 실패자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나쁜 일이 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사실상 뭐든 기꺼이 시도해 보는 자리.
초심을 지키는 일은 가장 어렵다. 나무에 오르는 사람이 작은 나무에 오르고 나면 큰 나무가 보인다. 기를 써서 큰 나무에 오르면 웬일인지 큰 나무도 시시해 보인다.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높이가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은 못한다. 성장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깊어지는 일이라는 것,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일이란 것을 모른 채 숲을 헤맨다. 성장의 비밀은 뿌리에 있다. 팔을 위로 올리고 싶으면 아래에서 반대로 당기려는 몸통과 다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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