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에 만나요.
함께 마시는 술을 좋아한다. 사이사이 통하는 교감에 마음이 노곤해지고 흔들대는 마음에 취하곤 했다.
술을 마시면 더 들어주고 싶어 지고 그만큼 하고 싶은 말도 진해진다. 내일이면 이해 못할지라도 오늘은 공감지수가 최고치가 된다. 호의와 공감에 최선을 다하는 순간이 되었다.
오래 마실수록 잘 취하지 않고 되려 얼굴은 새하얘지고 정신은 말똥 해지는 어빌리티를 지니고 있었다. (얼음물을 옆에 두고 수시로 마시고 얼음을 오물거려 와그작 깨어먹는 아이스 어빌리티.) 20대까지의 일이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며 맥주 한 모금을 아쉬워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무알콜 맥주 한 짝을 사 왔다. 고마웠지만 아무 감흥도, 맛도 없는 무알콜 맥주는 몇 캔 먹지 않고 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출산 후에는 모유수유로 인해 금주가 계속되었고, 2년 터울의 둘째가 생기며 금주는 마라톤처럼 길게 이어졌다. 내가 그렇게 지구력이 있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네.
그렇게 서른 이후는 자연스레 술과 멀어졌다. 아이들이 제법 크고 나서 이따금씩 아이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모임을 갈 때도 있었는데, 딸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그마저 끊었다. 일을 하며 키웠던 딸은 할머니 집을 오가는 생활을 했었다. 수업이 늦은 밤에 끝났기 때문에, 잠든 아이를 밤에 들쳐업고 왔다.
둘째를 낳고 일을 그만두었다. 아들은 온전한 엄마손에 컸다. 먹이는 것은 할머니보다 부실했을 텐데, 마음은 그보다 불렀을까. 좋은 엄마여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는 안정감을 갖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엄마 냄새는 아이의 콧속으로 파고들어 이내 마음을 물들인다.
조금 더 안정되게 컸던 아들은 엄마의 부재를 대범하게 받아들였고, 품을 바꿔가며 적응하느라 마음이 바빴을 딸은 엄마를 고파했다. 그것을 채워주기 위해 애썼다.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 했던가! 맞는 말이다. 잠깐을 보아도 아이와 깊게 유대하면 신뢰와 믿음이 쌓이게 마련이다. 종일 보아도 아이와의 유대감이 없다면 불신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라는 작은 생명체는 그 둘을 다 필요로 한다. 양과 질 모두 충족된 애정.
바라고 바라며 채우고 채워도 끝이 없는 애정, 오늘 80을 주었으니 내일은 나머지 20을 줄게. 오늘 100을 주었으니 내일은 0이어도 괜찮지? 가 아닌 매일매일 새롭게 채워지는 애정과 믿음을 원했다.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애태우던 시간들, 그럴 때마다 호의와 공감에 최선을 다하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놓쳐버린 마음을 알아채기 위해서 아이가 잠들면 글을 썼다. 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나의 술친구는 오롯이 나에게 말을 걸며 마음을 살피고 공감했다.
어떤 밤은 읽었고 어떤 밤은 써 내려갔다. 고요한 밤에 잘 어울리는 나의 술친구는 그렇게 부유하던 마음들을 하나씩 건져내어 살펴주었다.
쉽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귀한 아이와의 사랑. 아무리 많은 육아서를 보아도 정답은 없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기질은 다르듯, 엄마 아빠의 라이프도 다름을 육아서 한 권에 담을 수 없을 터. 어떨 땐 오답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본다. 우리에게 맞는 그릇을 두고 걸맞은 애정을 주고받기 위해서 마음을 살핀다. 마음의 그릇이 새진 않는지, 크거나 작진 않은지, 씻어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빛을 내고 있는 모퉁이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치과의사가 입안을 들여다보듯 너와 나의 마음 구석구석을 가만히 살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