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요?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란.

by 예담


아이를 낳기 전 부부는 어떤 아이로 키울 것인지 각자의 로망을 꿈꾸듯 이야기한다. 다양한 로망들이 있겠지만 그중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뜻은 일치한다.

약해서 세상살이가 힘든 아이가 아닌, 강한 아이! 무엇이든 이겨내고 버티는 강한 아이로 키워내고 싶다는 다짐은 부부를 꿈꾸게 했다. 반드시 이끌어 줄 것이고, 우리의 아이는 당연히 그러리라는 믿음.


아이를 키우며 예기치 못한 여러 돌발상황에 맞닥뜨리며 더러 당황한다. 놀이터에서 놀다 다른 아이에게 밀침을 당해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속이 상한다. 맞대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고 어떤 부모들은 가만히 있지 말고 맞서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사회생활이 시작되면 태권도를 보내기 시작한다. (태권도는 싸움의 목적이 아닌, 운동의 목적이지만... ) 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낫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종종 보았다.





2년 전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는 아빠와 화장실을 다녀오던 참이었다. 돌아온 아이의 한쪽 얼굴이 발갛다. 평소 감정의 변화가 크게 없이 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유순한 남편도 왠지 굳은 표정이다. 자초지종을 듣자 하니,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에 맞은편에서 한 아이가 팽이 줄과 막대를 손에 휘두르며 걸어오다 플라스틱 팽이 줄이 우리 아이의 얼굴에 명중한 거였다. 당시 유행하던 팽이였고, 팽이 사이에 플라스틱 막대 줄을 끼웠다 빼면서 팽이가 돌아가는 원리였기 때문에, 익숙한 아이들은 팽이 줄을 한 번에 휙! 하고 빼는 속도와 힘이 꽤나 강했다. 알고 그랬겠냐만은, 사람이 많은 백화점이고, 돌아서면 사람이 부딪히는 주말이었다. (2년 전의 백화점은 그렇게나 붐볐음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아무튼 팽이 줄을 끼웠다 뺐다 하며, 팔을 크게 휘두르고 다니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부모의 제지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부모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참을 지나 아이가 앞서 가고 난 뒤, 뒤에서 아이 엄마 또래로 짐작되는 여자 몇몇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오고 있었다 한다. 남편이 가서 아이의 엄마이냐 물으니 맞다고 하였고,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알겠다고 했단다. 아주 시큰둥하게.


돌아온 아이의 상처가 눈 옆이다. 혹여 눈을 찌르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일었다. 상처 난 부위를 보니 속이 상했다. 아이가 놀다가 그랬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가만히 아빠 손잡고 걸어오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그렇게 상처를 들여다보고 병원을 가야 하나 괜찮으려나, 주말이라 오늘은 어차피 병원도 못 갈 텐데, 그냥 둬도 되려나,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팽이를 들고 휙휙 돌리며 걸어오는 한 아이가 보였다. 아! 그 아이가 맞았다. 조금 뒤에 엄마들이 몰려서 들어오더니 한 엄마가 우리 아이 옆으로 슬 걸어오며 한마디 던진다.


"문제 있음 청구해요! 뭐 그거 가지고. 나는 아이 그렇게 안 키워. 강하게 키우지!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 아이는 옆에 서서 우리를 쳐다보며 기세 등등하게, 보란 듯이 힘껏 팽이 줄을 잡아당겼다.




말문이 막혔다. "...... "





아니, 그럴 수 없죠. 이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고, 부모는 더더욱 그럴 순 없어요. 사람이 많은 곳이잖아요. 아무리 작은 장난감일지언정 플라스틱 막대를 휘두르고 다니면 누군가가 맞을 수도 있다는 것쯤은 인지할 나이였으니, 부모가 제지했으면 당연히 하지 않았겠죠. 아예 그런 복잡한 공공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장난감은 들고 갈 생각도 안 했을 테고요. 하지만 부모가 대수롭지 않게 그냥 뒀으니 고민되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겠죠. 들고 가도 되는구나! 에서, 휘두르고 다녀도 괜찮구나!로.


그러다 이젠 이렇게 바뀌겠죠. 아! 누가 다쳐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나는 강한 아이인 거구나!


그러면 안돼요. 그건 강한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비뚤어진 관점과 기준을 가지고 자라면 안 되죠.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잖아요. 적어도 바른 관점을 심어줘야죠. 남을 다치게 하는 것은 강한 게 아니라, 잘못된 일이라는 것. 모르고 그랬던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사과를 하고 뉘우쳐야 한다는 것.

강함은 공존할수록 세지는 것이지, 혼자 우두커니 꼭대기에 서있다고 강한 건 아니라는 것.


강한 것은 무엇일까요?




워킹데드 시즌 10에서 주디스는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떠나려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걱정과 슬픔, 미안함을 꾸역꾸역 삼키며 말하는 엄마 앞에서 덤덤한 척 괜찮다고 말한다. 엄마는 엄마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고, 나는 동생도 잘 돌보고 견디고 있겠노라 한다.

모두의 공존을 위한 일생을 살아갔던 아빠, 이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엄마를 보며 자라 온 아이는 담대하다. 부모가 없는 곳에서도 자유롭고 용기를 잃지 않는다. 강한 자들 앞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약한이 들 앞에선 아량을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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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을 겪어내고, 곁에 있는 이들을 지키며 아빠가 걸어왔던 삶을 밟아갔던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울음을 토해낸다. 가족과 다름없는 데릴삼촌 앞에서 삼켜만 왔었던 슬픔과 두려움, 절망에 대해 묻는다. 데릴은 덜지도 보태지도 않은 진심을 이야기한다. 그것 또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마음에서였을 터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으니 너의 슬픔은 당연한 것이라는 덤덤한 위로. 그렇다고 계속 슬픈 날들이 이어지진 않을 거라는 희망. 곁에 남은 사람들이 언제나 너를 지켜줄 것이기에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의미가 있다는 조언. 너도 크면 저 사람들을 위해 뭐든 다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이타심.


아이를 존중하는 대화법을 배웠던 부분으로 인상 깊게 새기게 되었다. 진정한 어른이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던. 지금 우리 사회에 대두되고 있는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 또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어른보다 약한 존재, 그저 어른의 소유물로 취급당하는 아이들은 하염없이 부서진다. 단단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려 애쓰는 마음이 아이라고 없을까. 사랑받기 위해 두리번거렸을 마음들이 애달프다.


좋은 어른이 곁에 있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은 아이로 키우기 위한 마음이 먼저가 아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우선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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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부모를 거울삼아, 곁에 있는 어른을 보며 자라고 삶의 목적을 정하게 된다.


좋은 아이로 잘 키우겠다는 지나친 바람은 때론 아이를 이기적이고 의존적이게 만든다. 아이들은 부모를 나무삼아 자란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 싶을 땐 가만히 기대고, 걷다가 지쳐 쉬고 싶을 때 털썩 앉아 쉴 수 있는 나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믿음으로 나를 토닥여 줄 수 있는 그런 나무가 되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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