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기쁨과 불안

아들과 딸

by 예담



다시 욕실로 가서 머리를 감았다. 이번엔 페퍼민트 향의 샴푸로 거품을 내어 머리를 마사지하듯 꾹꾹 눌러주었다. 차분히 머리를 말리고 가만히 눈을 감으니 두통이 사라진 것도 같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되었지만 잠시라도 시원해지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샤워기를 틀고 차가운 물줄기에 머리를 내어준다.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극심한 두통은 왠지 나이가 더해질수록 심해지는 건지, 아니면 약해진 몸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뿐인지, 두통을 안고도 하루 종일 가열차게 뭐든 해내었던 시절도, 아~ 옛날이여!

이제는 좀비가 되어 침대와 한 몸으로 있다가 꾸역꾸역 일어나 약을 먹고 대안이 없는 집안일을 좀비처럼 하다가, 다시 소파에 앉기를 반복하는 하루를 보낸다. 그러고 다음 날쯤이면 어김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하고 눈이 뜨이며 숨통이 트인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알기에 두통의 날을 맞이하여 하얗게 질려 있는 엄마에게 어서 누우라며 침대로 손을 끌어당기고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머리 마사지를 해준다며 꾹꾹 눌러댄다. 심지어 엄마가 쉬어야 하니 오늘은 햄버거를 먹는 게 어떠냐고 씨익 웃는 넉살도 보인다. 그럼 우리는 낄낄 웃으며 햄버거를 먹는 쉼표 같은 저녁을 맞는다.


차마 콜라까지 끼워 넣진 못했던 아이의 머릿속에 뭉게뭉게 얼음 띄운 콜라가 피어오른다. 솔솔 피어오르는 너의 생각이 왜 난 보일까? (엄마니까.) 콸콸콸 콜라까지 따라주면 아이들의 표정은 팝콘처럼 팡팡 터지니 아니 줄 수가 없지. 한 번씩은 괜찮아. 해로운 것들은 즐거움이 다 이기고 말 거야.


그 맛에 산다.






아이들을 키우며 마주하는 다채로운 귀여움이 지나갈 때쯤 되면 실질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들이 온다. 성장하며 자연스레 맞는 몸의 변화와 내면의 독립성, 교육에 대한 현실적인 타협과 집 밖에서 아이가 가지는 태도에 대해 객관성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빠르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 아이가 4학년이 되자 잔잔했던 마음에 불안이 한 줌 날아왔다. 아이의 또래 친구들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초경을 늦추는 주사'를 맞으러 간다는 말이 들려왔다. 요즘에는 평균적으로 6학년쯤 되면 시작하니 일이년전에 미리 검사를 하고 가능한 더 늦출 수 있도록, 키가 더 자랄 수 있도록 대비? 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라고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렛잇비 하기로 하였다. 남편과 내린 결론은 미리 걱정을 쌓고 걱정 주머니에 담는 수고를 하지 말자 하는 것이었다. 뭐든지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니까.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시기가 온 듯하여 런닝 브라( 초등학생이 입는 속옷으로, 런닝의 가슴 부분에 부드러운 면 재질의 천이 몇 겹 덧대어져 있다.)를 준비해두었다. 라떼는 말이야. 보통 중학교 2~3학년쯤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여아는 초등4, 남아는 초6이 평균이라고 한다. 에너지과잉 섭취 등 식습관도 변화했다. 그만큼 환경이 달라지기도 했다. 나의 유년시절, 햇빛을 받으며 내내 밖에서 뛰어놀던 땀 흘리던 아이들은 그런 걱정이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 가만히 앉아 전자파를 받으며 수업을 듣고, 운동이 줄어들면서 작년과 올해에 걸쳐 비만이나 성조숙증이 생기는 아이가 늘어났다고 한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검사를 하고 다이어트를 시키며 스트레스를 주는 대신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다. 학원을 보내 실내운동을 시키는 대신 함께 배드민턴을 칠 수 있다.


다만 지켰던(지키려 하는) 원칙은 인스턴트를 즐겨먹지 않고, 가능한 한 두유는 적게 ,가공식품은 성분을 체크해서 먹이는 것이다. 계란은 동물복지 유정란으로 난각 번호가 1 또는 2인 걸로 구입했다. 양파와 갖가지 채소를 듬뿍 넣은 카레를 즐겨 먹고 (지방을 분해하고 여성호르몬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한다.) 단백질과 비타민을 챙기고, 섬유질이 많은 과일, 고기는 살코기 위주로 먹였다. 물론 일회용 그릇이나 용품은 사용하지 않는다. 샴푸와 로션은 성분을 확인하여 딸아이의 몸에 닿거나 흡수되는 것은 신경을 쓰는 편이다.


반면 우리 집 늑대소년은 아무거나 먹는다. (요즘 넷플에 DP가 핫하다던데 아들이 있어 못 보고 있다. 그 아들은 초등 2학년이다. 이건 뭐 아둔함이 우산장수 부채장수가 따로 없네 그려. ) 아들앞에서는그런 걱정이 앞서고 태권도를 계속 시켰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알고 있다. 내면이 단단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고 되도록 2차 성징이 늦게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아이는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고 있다. 요즘은 가끔씩 툭툭 받아치는 무뚝뚝한 말투에 내면의 변화를 감지하곤 한다. 아이가 성장하며 어떤 변화들을 마주할 때마다 애정을 담아 축복하고 응원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아이는 사소한 일들도 귀히 여길 수 있기를, 크고 작은 일들에 잠식당하지 않고 쉬이 떨쳐버릴 수 있기를, 오늘의 햇살 속에 웃었으면 좋겠다.


차분히 생각하고 뭐든지 스스로 마주하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아이는 절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부모의 유연한 사고를 닮아 배워간다. 그런 태도가 일상이 되려면 부모가 그런 삶을 살아야겠지. 비타민도 오메가 3도 마그네슘도 꿀떡꿀떡 챙겨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비스듬히 앉아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어른이 말고 어렴풋한 음성과 모습으로도 확신을 줄 수 있는 어른에 대해.


계절만큼 아름답고 정직한 것이 또 있을까? 푹푹 찌던 더위는 어느새 흩어지고 서늘한 공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흐드러지게 꽃이 피는 봄만큼이나 떨어지는 낙엽도 아름다운 가을이다. 뚜벅뚜벅 걷기 좋은 선선함은 어쩐지 오늘에 충실하게 한다.



얘들아, 성장한다는 건 기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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