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소란했던 하루가 저물고 고요한 밤이 열렸다. 조아렸던 마음을 펴고 다이어리를 끄적이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가슴에 꽉 조여진 붕대에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갈비뼈마저 아파온다. 잠자리에 예민한 나는 이미 잠들긴 틀렸다. 신에겐 책 한 권과 넷플릭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키보드도 가방에 넣었지요. 병원짐을 싸면서 제일 먼저 챙긴 것이 책과 키보드이다. 그다음엔 몽쉘을 넣었지. 몽쉘이 부서지지 않게 하려고 소지품의 가장 위에 올려 둔 내가 웃겨서 수술 후 병실에 들어와서 가슴을 부여잡고 키득거렸다.
아무튼 공식적으론 수술이지만 '시술'정도로 일컬어지는 맘모톱 수술을 했다. ( 유방을 1센티정도 절개하여 진공보조흡입장치를 이용해 조직을 채취하고 절제하는 수술이다.) 가슴을 압박해 놓기에 수술 후가 더 힘들었다. 물론 고통과 불편함의 범주는 각기 다르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 그런 글이 있다. 고통에도 목적이 있어서,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 돌볼 수도 없게 된다는 글을 읽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었다.
몇 년째 치매가 진행 중이신 아버님은 이제 오감을 느끼고 표현하는데 온전치 못하시다. 아픔을 표현하지 않으시기에 늘 건강을 체크해야 하고, 뜨거움과 차가움을 체감하지 못하셔서 씻을 때나 음식을 드실 때 조심해야 한다. 요즘은 음식을 드시다가 사레가 들리거나, 기침을 많이 하신다. 지난 토요일엔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은 것이 일반 병원에선 치매노인의 진료에 난색을 표한다. 예컨대 감기 같은 진료도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을 듣는다. 소소한 질병에 아플 때, 아니 당신의 아픔도 표현하지 못해 가족이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진료가능 여부를 물으며 예약을 하고 병원을 돌며 대기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니 당연히 다른 감각반응도 느리거나 멈춰있다. 마치 나무늘보가 되신 듯하다. 주토피아에 나오는 나무늘보의 눈빛과 행동, 표정과 닮았다. 앞에서 눈을 맞추고 큰소리로 말을 하면 아주 천천히 눈을 맞추시고 웃으신다. 그리고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으신다. 길고도 짧은 세월을 지나 깊어졌을 눈옆의 주름살이 곱게 파이고 총명했던 눈동자는 생기를 잃은 채 흐릿해졌지만 어쩐지 다 아시는 것만 같다.
지으시는 미소가 따뜻하여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할아버지 곁으로 가 어깨를 주무르고, 눈을 맞추며 웃는다. 귓밥이 많은지 귀를 들여다보며 만져주고 눈썹이 왜 이렇게 긴지 물으며 실없는 질문을 이어 간다.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아이들은 질문을, 웃음을, 대화를, 마음을 멈추지 않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금세 순응한다.
흔들리는 정신과 흩어지는 생각들은 우리가 고이 주워 담을게요. 행여 텅 비어버린 바구니를 보고 당황하지 않으시도록 시나브로 마음을 채워 담는다. 채울수록 허해져도 멈추지 않는다. 함께 마주 보고 웃음을 나누며 표정만으로 서로를 위안하는 순간에 그저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