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나

진짜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by 예담

요즘 트렌드인 연애프로그램에는 여러 재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흥미 있어하는 요소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이다. 누구와 함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들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에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매력도 한계가 없다. 하여 누군가를 속단하려 들지 않아야 하고 오래 보았다고 쉬이 재단하는 습관은 뒤통수를 맞기 딱 좋다.


'너는 이런 나를 보았겠지만, 그게 나의 다가 아니다.'


마주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진다. 자신이 가진 지위와 역할에 따라 목소리톤부터 태도까지 바뀌듯, 소소한 일상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표정부터 바뀌고야 만다. 의식해서 잘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긴장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가 앞에 있다면 긴장과 불편함마저 설렘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와 어디에 있을 때 진짜(?)의 내가 되는가!


분명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어 진다. 이유 없이 행복이 스민다. 그들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나의 몸짓과 표정, 목소리, 마음과 생각, 그 모든 감성과 이성이 잘 맞물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학원에서의 시절인연.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고유한 향기를 품고 있다. 나는 그 시절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남자친구와 함께일 때의 내 모습보다 어학원 같은 반 사람들과 함께 일 때의 내가 훨씬 맘에 들었다.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툭! 나를 렛잇비 할 수 있어 좋았달까!

재학 중인 대학교가 다른 이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다음카페도 만들어서 친목을 유지했다. 주로 방학기간에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나이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지만 함께 공부를 하고, 공부가 끝나면 주기적으로 모여서 커피도 마시고, 술잔을 기울였다.


20대였다. 왜 아니겠는가! 그 사이에서 미묘하게 싹트는 연애의 감정들도 있었고, 좋아함의 표현을 받은 적도 있지만 어색하지 않게 장난처럼 넘기며 더 오래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이 좋아했던 남자친구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성의 감정을 넘어선 뜨끈한 동지애가 들끓어 식어버릴 사랑에 그것을 양보할 수 없었지.


편견 없이 서로를 대했던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오롯이 내가 되었다. 마음을 내비치며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왕왕 까불고 실없이 웃을 수도 있었다. 친밀하지만 몹시 애틋하진 않은 사이. 개별성을 존중하며 공감해주는 사이. 하여, 나의 정체성을 밝혀갈 수 있었기에 결국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더러 무거웠고, 적당히 좋은 이들과 있을 때의 내가 더 좋았다. 나는 한없이 가벼워졌다. 아무 말이나 해도 부는 바람사이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 어떤 표정을 지어도 거리낌이 없었다.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해 만났지만 공부보단 마음을 많이 나누었. 시절에만 통할 수 있었던 위안이 있었다. 언제 만나더라도 시시덕 거리며 옅은 농담사이에 진한 진담을 섞어 휘휘 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흐르는 시간만큼 벌어진 간극은 추억만으론 가닿을 동력이 부족하다.


다들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인정 깊게 살고 있는지, 가끔 궁금해진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 봤는데 다음카페가 휴면상태로 아직 존재함에 반가워서 또 이런 글을 쓰게 되고...) 함께일 때의 유쾌함은 레모네이드보다 청량하여 살다가 기운이 처질 때면 생각을 끌어온다. 언제든 코끝이 상쾌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어쩐지 오늘은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나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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