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겪은 어느 아찔한 기억들은 시간과 함께 아스라해졌다. 바삭하게 마른 가을길의 낙엽처럼 아름답게 바래버린 색이다. 바사삭 사라지기 전에 책 속에 고이 넣어두고 싶은 낙엽.
남편과 나는 초밥을 좋아한다. 소식을 하고 일식을 즐기는 우리는 회사를 마치고 몰래 따로 퇴근하여 (비밀 사내연애를 했다. 결국엔 들켰지만!) 밖에서 만나던 데이트 시절부터 조용하게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일식을 선호했다. 추운 한겨울밤에는 따뜻한 사케를 홀짝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이 아련하다.
그렇게 수없이 먹었던 초밥이었는데, 그 초밥이 사람을 잡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어디서든, 아무거나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키고,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탈이 전혀 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40대가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몸이 신호를 보내는 거다. "이제 아무거나 먹지 마. 잘 확인하고 조심히 먹어야 해."
20대에 감탄하며 먹었던 맛집의 음식은 지금 입맛에 맞지 않는다. 그때의 토실토실했던 감성과 마음, 적은 경험으로 인한 미각의 순진함, 충만한 에너지와 설렘이 주는 온 우주의 긍정의 맛이 총망라되어 다 맛있었지. 어딜 가도 맛집이고, 무엇을 먹어도 대박이었지!
경험이 쌓이고,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구별하는 엄마의 마음이 생기며 음식점에 가면 위생부터 살피게 된다. 미묘한 맛의 차이도 알아버려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조미료의 달큼하고 느끼한 맛을 감지하지만 모른 척 먹다가 끝내 거북함에 굴복해 버리기도 한다. 미식가가 아니어도 나이와 함께 쌓여가는 혀의 연륜이랄까. 엄마의 손맛과 비슷한 건가. 아니다. 혀의 연륜만 쌓였지, 내세울 만큼의 손맛은 없군. 어중간하고 시건방진 나이를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근처 초밥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아이들과 함께 초밥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소고기 초밥과 새우초밥, 아보카도 롤, 알밥, 튀김, 우동을 먹었고 우리는 프로초밥러답게 여러 초밥을 흡족히 먹었다. 친한 지인을 만나기도 했다.
식사가 끝난 뒤, 옆동의 (아이친구의 엄마) 언니에게 연락이 와서 나는 잠깐 차를 마시러 가고,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몸이 안 좋으니 급히 와달라는 목소리가 꽤 심각하다.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언니와 눈짓을 하고 다급히 현관으로 달음질쳤다.
3분도 안걸렸을거다. 한달음에 달려온 집앞, 숨을 고르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집은 태풍전의 바다만큼이나 잔잔함속에 오소소소 긴장감이 넘친다. 오 마이 갓!
남편은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고 있고, 아이들은 놀란 표정과 천진한 표정을 동시에 내뿜으며 나를 바라본다.
"여보 괜찮아?"
"얘들아, 괜찮아!"
남편에게 괜찮은지 묻고, 아이들에겐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며 스스로 문답을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엄마니까.
남편은 괜찮지가 않다. 심한 구토가 계속되더니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끝날 듯 끝이 나지 않는 증상이 계속되며 남편이 쓰러질 것 같다며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한다. 잔병치레도 잘 없거니와 웬만한 일은 참고 넘기는 점잖은 사람의 말은 깊이와 무게가 있다. 놀라움을 애써 감추고 남편의 겉옷을 챙겼다.
그리고 잠깐 동안 생각을 한 뒤 아이들 앞에 다가가, 몸을 낮추어 손을 잡은 채 눈을 마주 보았다.
"얘들아, 아빠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지금은 깜깜한 밤이니까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아빠를 혼자 보내기가 걱정이 돼.
너희들도 걱정이 되겠지만, 우리가 다 같이 가면 엄마는 너희들을 챙기느라 아빠한테 소홀할 것 같아. 응급실은 소란스럽고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응급실의 밤공기는 유난히 춥거든."
"엄마, 우리 둘이서 집에서 기다릴까? 무서워서 우리끼리 잠은 못 자겠어."
"응. 할머니한테 지금 전화할게. 그렇지만 할머니가 오시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그때까진 둘이서 잘 있을 수 있지? 할머니가 오시면 코 자야 해. 병원가면 나으니까 아빠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많이 컸네 우리 아기들!"
"응! 우리 아기 아니야. 엄마 잘 다녀와."
남편과 응급실로 향했다. 초밥을 먹고 탈이 난 듯한데, 아마도 내가 먹지 않은 초밥 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남편이 더 늙어서(겨우 세 살 차이)면역의 차이라고 말하며, 그 와중에 놀림의 포인트를 찾아 키득거렸다. 키득대는 나를 보고 남편은 계속 웃어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핸드폰이 없었다. 고작 4살, 6살이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 액셀을 밟아가며 달려오신 외할머니가 도착하기까지 1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할머니가 현관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자, 집안은 적막했다. 놀란 할머니가 이리저리 아이들을 찾았는데, 짜잔! 아이들은 안방의 커튼 뒤에 숨어있었다. 커튼 뒤에 숨어서 둘이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서우니까 무서운 이야기가 생각이 나고, 떠오르는 영감을 나누며 몰입하다보니 더 무서워져 커튼뒤에 숨었던 아이들은 어쩜이리 투명하고 귀여울까!
물론 외할머니가 한시간정도면 올 수 있다는 믿는구석이 있었기에 응급실을 따라나선 것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처음으로 아이들이 혼자 집에 있어본 시간이었고, 돌발상황이라 마음의 준비도,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은 커튼 뒤에 숨어 남매의 정을 나누었다. 고요한 밤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이어가고, 아빠를 걱정하며 서로 공감했을 것이다. 애틋한 마음속엔 엄마를 보내주어 아빠가 더 안전하리라는 안도감속의 뿌듯함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아이들은 한 뼘 더 성장했다. 예기치 못했던 파도를 넘어가는 과정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 그로부터 5년 뒤, 남편은 초밥을 먹고 또 한 번 혼자 휘몰아쳤다. 내과에 가서 주사를 맞은 그를 간호해주며 기시감을 느꼈다.
여전히 초밥을 좋아하고 즐겨먹는 그는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이다. 아니면, "도리"인가? (영화 니모를 찾아서 속의 '도리"는 자꾸만 까먹는다. 지난 일도, 방금 있었던 일도 깜박한다. 그러고도 즐겁다.)
그래서 우리는 고급 초밥을 먹으러 다닌다. (뷔페의 초밥은 되도록 먹지 않는다.) 도리 씨의 먹거리를 단속하고, 밖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 위생에 대해 잔소리를 장전한다.
초밥을 한입가득 넣고 오물거리다 뭉쳐진 와사비를 씹었을때, 코가 얼얼해지며 촉촉해진 눈을 깜박거리게 되는 그 맛도 좋아한다. 바로 뒤에 찾아오는 풍미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