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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Apr 06. 2024

스페인 바르셀로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삶"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29 _ Barcelona, Spain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페인 바르셀로나,

두 번째 이야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삶.





바르셀로나의 첫인상



    여행을 준비하며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껏 기대에 부푼 마음을 품고 있었다. 살면서 가장 방문해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스페인을 생각하였을 때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도시이기에 가우디의 건축물과 함께 낭만적인 도시모습을 꿈꾸었다.


    바르셀로나는 인구 150만 명이 넘게 사는 대도시임과 동시에 매년 2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방문하며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런 국제적인 도시 규모답게 휘황찬란하고 화려한 모습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길거리의 풍경은 생각보다 투박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다 보면, 서울이 깔끔하고 모던한 좋은 도시였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도심가 안에서도 현대적이지만 연식이 오래돼 보이는 건물들을 많이 보았으며, 거리 곳곳에 작은 구멍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근대 건축물은 고풍스러운 느낌과는 거리가 있지만, 묘하게 도시 안에 잘 녹아들어 바르셀로나만의 특유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들'이었다. 관광객도 많지만 이민자들도 많아서 그런지 가끔 '내가 남미에 있나'하는 착각이 들었다. 또한 특별히 인종차별은 겪지 않았으나, 거리 위 거의 유일한 아시아 사람인 내가 신기했는지 꽤나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COVID-19 상황이 끝난 직후의 상황이라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기기로 했다.






여행하며 혼자 사진 찍는 법



고딕지구

    바르셀로나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장소는 '고딕지구'였다. "고딕"이라는 말처럼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때의 분위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딕 건축 양식 특유의 하늘을 높이 찌를 것 같은 지붕과 왠지 모를 음울한 기운은 영화나 소설, 게임에서 종종 채택될 만큼의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이 없는 골목에서 그 분위기를 마음껏 느끼기 위해 아침 5시부터 열심히 움직였다.


     해가 수평선에 닿아 겨우 고개를 내밀 때쯤 이미 고딕 지구에 다다랐다. 아직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거리를 걸었으나, 고딕 양식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에 짓눌려 꽤나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서서히 빛이 들어올수록 골목 본연의 색깔이 점차 나타나며 어두울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고딕지구에서의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새벽의 도시를 산책하며 고요함을 즐기는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묘미였다. 사람 한 명 없는 거리를 혼자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유명한 관광 명소 앞에서 혼자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는 말처럼 혼자만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사진으로 남기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시간이 한참 흘러도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그때의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하며 나를 찍어줄 타인이 없었기에 보통 삼각대를 설치해 스스로 사진을 찍는다. 유럽 안에서 소매치기와 같은 각종 경범죄가 만연하기에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여행을 시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또한 혼자 사진 찍는 것에 대한 민망함을 최소화하기에도 좋은 방법이었다. 처음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 구도를 잡는 것이 어색했지만, 여행 막바지에는 3분도 안되어 맘에 드는 사진을 건질 만큼 능숙해졌다.


    

    오전 내내 고딕 지구를 탐험하는 것이 즐거웠다. 햇빛이 골목 깊숙이 들어올수록 음산한 느낌에서 따뜻한 느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중심가의 넓은 대로와 광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서려있었다. 아기자기한 골목 속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었고, 그 모습 하나하나 포착하는 재미가 있었다. 좁은 골목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과의 거리가 가깝고 친한 게 느껴졌다. 어쩌면, '넓은 곳에서의 외로움보다 좁은 곳에서의 따뜻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삶



    내가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시기에 바르셀로나에는 큰 콘서트가 있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팝가수들이 초대되어 공연하는 큰 콘서트였기에 기차와 비행기는 물론 호텔과 호스텔 전부 매진된 상태였다.


    물론 이런 부분은 내 계획에 전혀 없었다. 평소에 콘서트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스페인 친구와 이야기하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었다. 사람이 많은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에겐 웬 날벼락같은 안 좋은 소식이었다. 하필 내 여행시기와 겹친다는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전체적인 계획을 변경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바르셀로나 여행을 감행하였고, 다행히 중심가에 있는 한 저렴한 호스텔에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두 명이서 쓰는 방이었다. 맞은편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이라는 아저씨가 있었다. 나이는 30대 후반,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금발에 키가 크고 장발의 머리를 뒤로 묶고 다니며, 파스텔 색깔의 셔츠를 입는 모델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왠지 모를 조용하고 음울하며 차분한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호기심에 내가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작하였고, 대화의 코드가 비슷해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릭 아저씨는 소프트웨어 개발 일을 원격으로 하며 여행을 다니는 "디지털 노마드"였다. 주 이틀 정도 원격으로 일하며 카페나 조용한 식당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유럽 이곳저곳 여행하며 앞으로 자신이 조용하게 살 곳을 찾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전혀 만나보지 못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그의 삶의 철학이 궁금해 더욱더 진지한 대화로 빠져들게 되었다.


    릭 아저씨는 본인이 살아오며 오랜 시간 방황했다고 얘기했다. 안 해본 일도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지만, 본인 삶의 방향성에는 확신이 없었다. 계속해서 다른 가까운 사람들의 기준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먼 길을 돌아왔다고 얘기했다. 본인의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본인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을 때까지 함부로 누구를 책임질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책임이라는 무게가 무거운 걸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며,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말도 중요하지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더 많은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해 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잘 알아서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 추천했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내내 내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진정으로 어떤 삶을 원하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내가 선택한 삶인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삶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는가, 내면의 목소리를 부정하지는 않는가, 스스로에게는 솔직한가'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릭 아저씨를 만난 것 같이, 이렇게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볼 기회를 얻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가치이자 이유인 것 같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바르셀로나 여행 내내 불만 가득했지만, 여행의 가장 큰 의미를 얻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삶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 릭 아저씨께 감사하며, 지금도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행복노트 #26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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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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