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45 _ Genoa, Italy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제노바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북부 항구도시이며, 지리적으로 밀라노 그리고 토리노와 삼각형을 이뤄 북부 수출입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이탈리아 제노바(이탈리아명 'Genova', 영문명 'Genoa')와 스위스의 제네바(Geneva)를 헷갈려한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른 도시이며, 이름이 비슷한 것 외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스위스에서 밀라노로 들어와 토리노를 지나 이탈리아 북부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제노바로 향했다. 제노바는 지리상 토리노에서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제노바를 경유해 갈 시, 기차 안에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지중해 동부연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에 기꺼이 제노바 일정을 추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친퀘테레' 지역도 잠시 스쳐 지나가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제노바에는 큰 기차역이 두 개 존재한다. '피아짜 프린시페(Piazza Principe)'역과 '브리뇰(Brignole)'역이 있다. 북쪽과 서쪽에서 제노바로 들어오는 기차들의 종착역은 '피아짜 프린시페'역이고, 동쪽과 남쪽에서 오는 기차들의 종착역은 '브리뇰'역이었다. 이 두 기차역은 서로 약 3km 떨어져 있으며, 이 두 기차역 사이에 제노바 시내가 있고, 제노바의 모든 관광지가 있었다. 토리노에서 오는 나는 '피아짜 프린시페'역으로 도착하였고 이후 피렌체로 내려가기 위해 '브리뇰'역으로 가야 했기에, 이 두 기차역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산책하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오전 아홉 시 제노바에 도착해 피아짜 프린시페역을 나설 때, 나를 반겨주는 것들은 비좁은 길과 겹겹이 쌓인 건물들이었다. 이게 제노바의 첫인상이었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항구도시로써의 역할을 해서 그런지 도시 곳곳에는 옛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산과 언덕 위로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도로는 차 두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이었고,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인도 공간조차 협소하고 비좁았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산과 많이 닮아 보이는 도시였다.
언덕이 많은 제노바를 여행하기 위해 계단을 많이 오르내려야 했으며, 돌로 이루어진 바닥으로 인해 큰 짐을 이끌고 이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큰 배낭이 아닌 28인치 대형 캐리어를 끌고 여행하던 나는 제노바를 이동할 때 꽤나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 힘듦 속 언덕을 다 올라 높은 위치에 다다를 때마다 보이는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잊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르는 언덕마다 각자 다양하고 개성 있는 전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제대로 제노바를 여행하는 방법은 이 언덕들을 모두 올라가 보는 것임을 깨달았다.
언덕들과 굽이굽이 이어진 좁은 길들을 지나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광장들과 공원들을 통해 과거 제노바 시민들의 삶을 상상하곤 했다. 교역이 많은 부유한 항구도시에 많은 사람이 몰렸기에 이 모든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지금의 도시 양식이 설계되었을 것이며, 광장에는 각종 상인들과 시민들이 모여 거래를 하고 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 상업을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렇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제노바의 올드타운을 천천히 산책하며 그 시대의 낭만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현대의 우리는 상업과 무역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항법 기술 발전과 물류시설 발달 덕분에 해외 각 지역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수출입을 통한 경제적 번영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배경 아래에는 그 옛날 목숨 걸고 바다로 나가 항로를 개척하고, 항법을 연구하고, 항구를 새로 열었던 도전정신 가득한 탐험가들의 업적 덕분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제노바는 각종 도전과 모험의 도시로 느껴졌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존재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도시가 제노바이며, 당시에는 제노바 공화국이었다. 15세기 후반 유럽의 각 국가들은 해양 세력을 키워나가던 시기였다.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에서 비롯된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이 과열된 시기였고, 콜럼버스도 여타 다른 탐험가들처럼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새로이 개척하기 위해 유럽 대륙을 떠났다.
콜럼버스는 제노바 출신이었지만 이탈리아의 후원이 아닌 스페인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떠났다. 이유인즉슨, 그가 터무니없이 높은 보상을 요구했기에 그가 후원을 요청했던 국가들은 거절과 동시에 전부 부정적으로 그의 탐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우 콜럼버스와 어느 정도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스페인 오른쪽으로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지중해에 대한 세력을 넓혀 나가는 중이었고, 왼쪽으로는 포르투갈의 적극적인 대서양 진출로 인해 큰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의 후원을 등에 업고 야심 차게 출항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으며, 그 끝에 결국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콜럼버스의 생애에 있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점을 제외하고는 그의 위대함에 관해 이견이 많다. 탐욕과 함께 그가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악행은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가 발견한 새로운 대륙을 '인도'라고 맹신했다. 그렇기에 이후 콜럼버스가 주장하는 인도향 신항로 검증을 위해 신대륙을 다시 방문했던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이 신대륙에 붙여져 '아메리카'로 불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 그의 업적을 높이 사는 이유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전 세계사를 뒤집은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유럽 열강들의 경쟁을 점화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나는 별로 콜럼버스의 위대함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유럽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유럽 열강들이 세력을 뻗쳐 바다로 나가는 일은 필연적이었겠으나, 그들의 역사는 원주민에 대한 수탈과 착취로 인해 피로 얼룩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부분들은 차치하고 조심스럽게 오직 대항해시대를 풍미했던 도전과 모험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15세기 후반 대항해시대 당시 아직 '지구는 둥글다'에 대한 주장도 논란거리던 시절, 많은 탐험가들은 세상의 끝을 향해 망망대해로 나섰다. 그들의 모험은 각종 질병과 습격, 굶주림 등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죽음에 대한 각오 또한 남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다로 떠난 이유는 각자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어설픈 마음을 가진 채 목숨을 건 모험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용감한 사람들의 모험심과 도전정신으로 인해 세상이 발전하고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감히 이분법으로 분류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도전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객관적으로 어떤 성향이 더 우수한 지 판단할 수 없다. 당연히 각자의 장단점이 존재하고, 사회 안에서 각자만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도 느껴지듯이, 나는 도전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도전이 가진 가치를 매우 높이 사기에 다소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익숙함을 선호하고, 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일 확률이 크다. 새로 얻는 것에 대한 기대보다 그들이 가진 것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더 크기에 위험 자체를 감수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렇기에 확실치 않은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에도 부정적이며, 그저 주어진 확실한 것들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도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가진 걸 모두 잃게 되더라도 도전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기에 대범하게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무모해 보일지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어떤 가치를 이루기 위해 다가오는 고난을 크게 개의치 않고 정면돌파하는 사람들이다. 안정에 대한 생존본능을 거스르는 행동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 혹은 힘든 길에 도전하는 자세 하나만으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도전을 추구하는 성향과 고차원의 가치가 만나면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든다면, 한 개인이 가진 깊은 신념과 꿈 그리고 도전적인 성향이 만났을 때,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주며, 뜻이 모여 거대한 파동을 일으킴으로 세상에 변화를 이끈다. 이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변화가 긍정적 일지 부정적 일지 누구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그런 변화가 지금까지 무수히 반복되고 거듭된 현재에 살아가고 있고, 지금 이 시점에도 수많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는 세상의 진보는 전부 도전적인 사람들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세상의 끝에 다다라 설사 낭떠러지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지구가 둥근 것을 직접 증명해 냈고, 누군가는 엔진을 매단 동력기에 몸을 맡겨 하늘을 날았기에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누군가는 고착화된 한 개념에 반하는 새로운 주장을 입증했기에 사람들을 계몽시켰다. 이외 수명을 비약적으로 연장시킨 현대 의료 또한 임상실험을 통해 발전했으며,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과학기술과 지식은 최초의 인류로부터 이어져 온 도전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무게중심의 문제일 뿐, 안정적인 성향과 도전적인 성향의 적절한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이 발전하는 것에 안정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기여한 부분도 크기 때문이다. 세상을 확장하는 게 도전적인 사람들 역할이라면, 세상이 잘 돌아가게끔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은 안정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도전적인 것을 너무 추구했을 때 위험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내려앉을 수 있고, 반대로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했을 때 상태유지 이상의 긍정적인 변화들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때에 따라 균형을 잘 지킬 필요는 있다.
다만 나는 안정보다 도전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안정과 도전에 대한 고민이 들 때, 늘 주저 없이 도전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직 젊어서이기도 하고 도전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렇기도 하다. 또한, 어떤 것을 선택해도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지에 대한 후회가 남는 걸 알기에, 어차피 나중에 후회할 거라면,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 후회를 덜 남기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잃거나 후회할 것이 두려워 어떤 선택도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도전하는 사람들은 목표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그 꿈이 본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대화를 통해 내가 가진 꿈을 돌이켜 보기도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있어 자극을 받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느낀 바, 본인만의 진심 어린 꿈을 소유한 사람들은 본인의 삶을 영위하고 즐기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은 생기 있으며, 도전을 성장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본인만의 확고한 주관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새로운 생각에 늘 열려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그에 따른 변화와 혁신도 유연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낭만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낭만 있는 삶을 추구한다.
행복노트 #42
분명한 목표를 지향하는 도전은 나를 변화시키고, 주변인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제노바 피아짜 프린시페역에서 브리뇰역까지 약 4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며 사유하는 시간을 보냈다. 언덕과 계단, 돌바닥과 좁은 길, 많은 인파와 더위 등 고생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일부분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종종 비좁은 길에서 길을 막는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인해 다소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 조차도 이곳의 좁은 길에서 비롯된 문제이기에, 여행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불현듯 제노바에서 콜럼버스를 떠올리며, 생각이 이어져 대항해시대를 열은 탐험가들을 상기했었다. 그들이 가진 기백과 지조를 늘 동경하고 있었으며, 나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줏대 있게 도전하며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가는 것이 내 인생을 더욱 즐기며 살아가는 방법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브리뇰역에 다다라 오후 두 시, 제노바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마음 한편에는 이곳을 짧게 머문 것에 대한 작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언젠간 또 기회가 닿아 이곳을 다시 방문할 것을 다짐하며, 이탈리아 피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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