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46 _ Pisa, Italy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이탈리아 제노바를 지나 피렌체로 가는 중 피사를 경유하기로 했다. 피사를 일정에 넣어 잠깐 들르는 이유는 당연히 '피사의 사탑'을 두 눈에 직접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상징이기도 한 피사의 사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오후가 되어 이탈리아 동부 지중해 연안을 따라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약 두 시간 동안 푸른 지중해 바다를 감상하며, 내려오는 길 내내 따뜻한 햇빛이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지중해의 아름다움에 또 한 번 반하고 있었다.
피렌체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현지인 그리고 관광객으로 가득 찬 기차 안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사람들 사이 좁은 틈 공간에 겨우 서 두 시간 내내 숨 막히는 이동을 해야 했다. 나는 다행히 구석 한편을 차지해 벽에 기대어 상대적으로 나름 양호한 상황이었으나, 어떤 이들은 아이를 등에 업고 있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탄 이도 있었다. 아무리 이 여행을 오랜 기간 기다려온 관광객이라도 이 상황이 마냥 즐거울 것 같진 않았다.
이렇게 많은 인파 속 특이한 곳에 자리를 잡은 이도 있었다. 바로 '화장실'이었다. 어떤 한 남성분은 화장실에 들어가 30분, 1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공간 속 편안한 곳을 찾아 화장실로 들어갔거나, 무임승차였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어떤 상황이었든 민폐인 건 확실해 보였다. 화장실 문이 오랜 시간 계속해서 열리지 않자 정말로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결국 그 사람들의 신고 하에 직원이 찾아와 해당 문제는 해결됐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따금 이런 뻔뻔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상황이 있다. 사람들이 무작위로 많이 모이는 곳에는 꼭 한 명씩 빌런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에서 많은 빌런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들의 배려 없는 행동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왜 이 지경이 됐을까'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각자의 사연이 존재하겠지만, 되도록 모든 사람이 배려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꾼다.
이탈리아 피사는 작은 마을이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에 비해 그 규모는 매우 작다. 도시 중심 피사의 사탑 근방이 거의 유일한 볼거리이며, 그 외 도시를 산책한다면 이탈리아 소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피사 중앙역, 첸트랄레역에 내리자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 방문한 많은 관광객 수에 감탄했다. 역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기차에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으며,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 지도 어플을 켤 필요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뒤를 그대로 따라가면, 쉽고 편하게 사탑이 있는 위치에 다다를 수 있다.
피사 중앙역에서 약 30분 정도 걸어가며 천천히 도시를 구경하였고, 그 끝에 결국 피사의 사탑을 두 눈으로 담을 수 있었다.
'피사의 사탑'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꼭 찍는 사진 구도가 있다. 원근법을 활용해 기울어진 사탑을 밑에서 손으로 받치고 있거나, 밀고 있는 포즈를 취하는 등 가지각색의 익살스러운 구도다. 사탑 근처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지어 이어져 있으며, 멀리서 응시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묘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그 와중 유쾌한 장난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사탑을 손으로 받치는 듯한 포즈의 관광객 사이로 지나가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과 갑자기 하이파이브하는 우스운 광경도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국적 불문하고 랜드마크 관광지 안에서 하나가 되고 어떠한 교감을 하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게 다가왔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피사의 사탑이 왜 기울어졌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12세기 당시 지금 보다는 건축법이 덜 발달했던 시절, 약한 지반 위의 높은 사탑을 지어 그 하중을 지탱하지 못한 사탑은 점점 기울어졌다. 이렇게 큰 탑을 짓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문제는 탑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도 탑을 허물기보단 계속해서 지어 나갔다는 사실이다. 무게 중심을 다시 맞추기 위해 탑 중간 지점부터 조금 휘어진 모습을 하도록 층을 올리기도 했고, 근대에 들어 더 기울어지지 않도록 지반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여러 새로운 시도를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반대로 탑이 다시 중심을 잡고 바로 서기 시작했다. 관광산업의 침체가 우려되는 '피사'시가 탑을 다시 기울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10년 뒤, 20년 뒤, 혹은 몇 세기가 지나도 피사의 사탑이 과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앞으로 다시 피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더도 덜도 말고 지금의 기울기를 쭉 유지해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지금처럼 하나가 되는 유쾌한 광경을 계속 만들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이탈리아 피사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이지만, 이 사탑 하나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했고, 이탈리아 국가의 한 상징이 되는 등 그 영향력을 많이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볼 때 떠올랐던 키워드가 있다. 바로 '실수'다. 처음 실수로 부실공사가 진행되었고, 이후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다른 갖가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이에 '피사'시 사람들에게 완벽하지 못한 이 탑의 모습은 부끄러운 수치이자 파괴할 수 없는 하나의 큰 애물단지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로 태어났기에 살아가며 처음 하는 모든 것에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하물며 익숙해진 일들에 있어서도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나 방심으로 인해 종종 우발적인 실수를 범한다. 이처럼 사람이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진 당연한 행동양식이며, 내재된 고유한 성질이다. 나는 실수를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서 완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수도 실수 나름이다. 경중을 쉽게 따질 수 없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작은 실수도 있고, 다시는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지탄받아 마땅한 실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거나, 손실을 입히는 등 많은 피해를 야기한 실수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피해를 본 당사자들의 용서가 없는 한 해결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인간은 당연히 실수를 저지르는 존재이기에 반대로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행동 또한 당연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양심의 가책 혹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맞다. 그리고 본인의 실수를 무효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소소한 실수들이라면 다행히 빠른 시일 내 해결 가능하겠지만, 실수의 크기가 커질수록 해결방안은 더욱 복잡해지며 마음의 무게 또한 더욱 무거워진다. 마치 피사의 사탑을 쌓을수록 그 무게에 더욱 기울어진 것처럼, 마음 또한 실수의 무게에 짓눌려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다.
한동안 큰 무게에 짓눌린 피부에는 그 자국이 선명하고 오랫동안 남아있듯, 실수의 무게를 오랜 시간 감당한 사람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겨 계속 죄책감을 가진 채 힘겹게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가 해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과거의 벽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스스로 세상에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라 여기게 되고, 과거 실수에서 비롯된 자괴감과 수치심에 함부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꺼려지며, 온 힘을 다해 마음속 무거운 실수를 지탱하기에 다른 모든 것에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대표적으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 챈들러'가 이런 개인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갈수록 덜 자주 실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아잔 브라흐마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p.255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 깨달음의 조언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온 수행자, 아잔 브라흐마 승려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책에는 위와 같이 실수와 관련된 작가의 조언이 등장한다. 실수는 이처럼 우리 삶의 당연한 한 부분이며, 그것을 인정하고 교정해 나가는 것이 인간에게는 필연인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벽돌 두 장' 일화가 있다. 아잔 브라흐마는 자신이 지극정성을 다해 지은 사원의 벽에 벽돌 두 개가 어긋나 있는 것을 발견했고, 완벽함을 해치는 벽돌 두 장 때문에 결국 자신의 벽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브라흐마는 자신의 벽을 보고 감탄하는 어떤 이를 발견하였고, 그 이는 비록 벽 돌 두장은 어긋나 있지만 다른 완벽하게 놓여진 998개의 벽돌을 보며 감명을 받은 것이다. 이때 브라흐마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다른 것은 보지 못한 채 그 실수 벽돌 두 장만 보고 있었음을.
이처럼 우리는 어리석게도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우리가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다른 것들에 비해 저지른 실수는 이처럼 사소한 '벽돌 두 장'이겠지만, 우리는 그 벽돌 두 장을 쉽게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하지만 잠깐 멈춰 서서 실수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분명 그 실수를 상쇄할 만큼의 자신이 했던 어떤 값진 일도 있을 것이며, 죄책감 때문에 허망하게 보낸 시간들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본인은 다시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되새기고 또 되새겼을 것이며, 그 진심만큼 크게 성장했을 것이다.
실수의 의미는 성장이다. 과거의 실수를 회상하며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 후회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때의 행동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흘러간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음을 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감정이 반복되는 것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인해 지금의 행복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수를 직시해 깊이 뉘우친 만큼 우린 인간으로서 더 완전해지고 성장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과거의 일을 보내주자. 마치 종이배를 시냇물에 흘려보내듯 보내주자. 종이배는 그 어떤 것들도 품을 수 있는 넓은 바다에 도달할 때까지 점점 그 존재가 미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파하고 힘들었던 감정도 보내어 한 층 더 성장한 우리들의 모습에 집중하자.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지금의 우리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과정이었음을 인정하자.
행복노트 #43
과거의 일이 부끄럽다면, 우리는 그 부끄러운 만큼 성장한 것이다.
피사의 사탑은 그 생소한 모습과 독특함이 오히려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매력을 주었고, 현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어 그 누구도 사탑이 바로 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기울여 만든 실수 그 자체가 지금은 피사의 정체성이 되어 지역을 더욱 번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의 실수도 우리를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그 기울기와 제각기 모습이 매력이 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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