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47 _ Florence, Italy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새벽 일찍 일어나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州)의 토리노에서 출발해 '리구리아' 주의 제노바에 잠시 머물고, 늦오후에는 토스카나 주로 넘어가 피사를 잠시 경유한 뒤, 앞으로 4일 동안 머물게 될 마지막 목적지 토스카나 주의 피렌체로 향했다. 400km가 넘는 대장정이었으며, 하루동안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저녁 8시쯤 됐을까. 이탈리아 피사에서 피렌체로 운행되는 기차 안에는 축적된 피로로 현실과 꿈속을 헤매는 내가 있었다. 이동하는 약 1시간 남짓 고개를 떨궜다 정신 차리기를 계속 반복하던 어느 시점 눈을 뜨고 보니 6월 한여름의 어둑어둑해지는 피렌체의 하늘이 있었다. 내가 탄 기차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는지, 오늘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금세 도착해 승합장 위로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정차하고 있었다.
유럽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 유럽여행을 계획할 당시, 다시는 인생에 이런 긴 시간의 여유가 없을 것 같아 가고 싶은 도시를 욕심내서 모두 일정에 포함시켰다. 어렵게 간 유럽에서 되도록 모든 곳들을 직접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욕이 불러낸 결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내 체력은 급속도로 바닥을 향해 저하되고 있었다. 그렇게 좋은 여행지를 가도 안 좋은 몸상태로 인해 여행지를 즐기기는커녕, 하루 일정에 집착하고 소화하는 데에 급급했다.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여행 중 하루에 도시 4곳을 지나는 기행은 자제하는 것을 추천한다.
피렌체의 밤은 예뻤다. 대체적으로 유럽의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럽의 밤 길거리에는 네온사인의 화려한 간판이나 낮처럼 주변을 훤히 둘러볼 수 있는 밝은 가로등이 없는 편이다. 그렇다고 주변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거리가 어둡지도 않다. 곳곳에는 은은한 불빛들이 자리 잡아 잔잔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특유의 평안함을 만들어준다. 나는 이런 밤거리를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하루종일 이동하는 일정을 소화했기에 얼른 숙소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씻으며 몸에 축적된 피로도 씻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피렌체의 한적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런 밤거리가 너무 좋아 짐만 잠시 내려놓고 다시 나와 거리를 배회했다. 많은 인파가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간 밤늦은 시간 거리 위에는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맛있는 음식향과 야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작은 대화 소리만 남아 있었다.
내 개인적인 취향을 가득 담아 추천하는 이탈리아 여행법은 밤 시간에 여행하는 것이다. 같은 장소라도 낮과 너무나 다른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이탈리아 특유의 뜨거운 더위와 북적이는 인파를 피할 수 있다. 치안이 안 좋은 곳은 유의하고 소란스러운 번화가만 잘 피한다면,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이탈리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피렌체의 밤은 너무 아름다웠다.
피렌체는 예술의 도시다. 우리가 학창 시절 익히 들어온 유명한 예술가와 건축가, 그 밖의 수많은 위인들이 피렌체 출신이거나 피렌체에서 그 꿈을 펼쳤다.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했으며, 피렌체 도시 전체가 예술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렌체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런 엄청난 예술 업적 바탕에는 피렌체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가문, '메디치' 가문이 존재했다.
메디치 가문은 전반적으로 피렌체 도시 전역에 그 영향력을 펼쳤다. 아니, 피렌체를 넘어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영향력을 펼친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과 금융업의 발전을 필두로 피렌체 도시는 서서히 성장했고, 이런 성장에 힘입어 메디치 가문도 부와 권력을 축적해 왔다. 특히, 금융 면에서 많은 두각을 나타냈는데, 교황청의 자금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고 가문 내에서 4명의 교황을 배출하는 등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가문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실상부 이탈리아의 대표 가문이었다.
그리고 부와 권력을 축적한 메디치 가문은 예술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쌓은 부로 당대의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였고, 그렇게 예술 활동에만 전념한 덕분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예술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막대한 자금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후대에게 위대한 유산까지 남기는 업적을 쌓았다.
도시 곳곳에는 메디치 가문의 흔적과 그들이 후원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피렌체 곳곳에는 다수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존재하며, 예술 작품이 집대성해 있는 성당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문화유산이 많은 만큼 도시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피렌체에도 유명 관광지들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통합관광 티켓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런 패스를 활용해 여행하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다.
특히, 피렌체의 모든 미술관들은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 미술관에서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교과서에서 보던 친숙한 작품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을 넘어 실물을 대면할 때만 다가오는 작품의 웅장함과 위압감이 고스란히 느껴질뿐더러 예술가의 섬세한 손길을 세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을 넘어 오감을 활용해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이에 피렌체를 가장 잘 여행하는 방법은 되도록 모든 피렌체의 미술관과 박물관, 성당을 방문해 보는 것이다. 분명 정체 모를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되도록 피렌체에 존재하는 예술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천천히 작품에 몰입하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도 예술가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고 주관적인 해석을 가미하는 것도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개인적으로 생각건대, 예술 작품을 가장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은 예술 작품을 직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많은 예술 작품들 속 항상 내 이목을 끄는 작품들이 있다. 바로 '풍경화'다. 유럽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술관을 방문했지만, 늘 내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하는 작품들은 자연경관과 도시 풍경의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들이었다.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할 것 없이 모든 풍경화에는 특유의 몽환미가 깃들어 있다. 풍경화에 몰입할 때 그림 속 세상으로 끌려 들어가 마치 내가 그 장소에 실재하는 듯한 체험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예술(藝術)이란?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예술을 하기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따위로 나눌 수 있다.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롭거나 경이롭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모든 것들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에 들어 워낙 난해한 작품들이 많아졌고, 해당 작품들의 가치를 이해하거나 인지하지 못할 때 다가오는 어떤 문화적인 박탈감 혹은 교양과 예술에 대한 소양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은 열등감이 느껴져 예술을 불편해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대표적으로 예술의 고급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은 일반 사람이 볼 때 단순한 선과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경매에서 몇 백억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접한다면, 이런 예술 세계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과거 당시에는 귀족 혹은 자본가가 직접 예술가들을 후원함으로써 작품을 만들고 거래할 수 있었기에 부와 예술은 연결되어 있었고, 그들의 작품 또한 대체적으로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예술가의 명성 혹은 예술 작품의 유명도를 이용한 하나의 재테크 방식이 되거나 조세피난의 목적이 되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작품 가격에 무한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
혹은 반대로 예술을 풍자하는 사람도 많다. 한 개인이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기만 한다면 예술 작품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키는커녕, 자신만의 의도만 강요하여 다수에게 불편함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상업적 의도를 가지고 예술의 가치를 해하기도 하고, 타인의 예술을 폄하하는 등 도가 지나친 예술가들도 있다.
마르셀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들고 와 '샘'이라는 작품명을 붙여 전시했고,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테이프로 바나나를 벽에 붙여 전시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작품 안에 숨겨진 의도와 생각할만한 많은 주제를 간접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처음에는 난해했지만 점점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죽음의 예술가'라 불려지는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 동물의 시체를 전시하여 동물보호단체의 항의를 받거나, 스트릿 포토그래퍼 스즈키 타츠오의 도촬에 가까운 사진촬영 방식으로 초상권, 사생활침해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앤디워홀, 티에리 구에타처럼 자신의 작품을 상업적 도구로 사용해 예술의 진정한 정의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들게 했다. 이처럼 예술은 가끔씩 윤리와 도덕, 법적인 경계를 넘나들며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따라서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행위예술가들의 충격적인 기행, 늘 새로운 예술장르를 개척하기 위한 아방가르드 문화 등 예술에 있어 계속해서 많은 생각을 요구받는 일반 대중들은 점점 그런 예술작품들에 많은 피로를 느껴가는 듯하다. 예술계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차별점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기에, 점점 장르와 작품들은 성향과 취향이 맞는 소수만을 위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예술은 심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심오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납득시킬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예술 행위에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신의 생각과 감정, 표현방식과 가치를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암흑 속 혼자 아우성치며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살바도르 달리
나는 창작활동과 예술의 정의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창작활동은 나의 감정과 생각, 어떤 의도가 담긴 것들을 작품으로써 그저 생성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그 작품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식되고 공감되며 인정받을 때 비로소 '예술적 가치'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즉, 예술은 창작활동 안에 하나의 부분집합인 것이다. 자신이 만든 창작물이 만족스러울 때 스스로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지만, 이런 예술적 가치가 대중적으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때에 모두에게 인정받는 진정한 예술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감과 이해만 불러일으킨다 해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아니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긍정적인 감정과 자극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끝에는 여운이 남는 생각이나 사람의 새로운 행동양식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러한 부분이 담겨있지 않다면 그저 오락적 작품으로만 느껴지게 된다.
나는 진정한 예술의 가치에는 공감과 계몽의 기능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름다움만 탐미한 작품에는 깊이가 없으며, 반대로 아름다움을 배제한다면 감동을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과 이성 둘 다 충분히 만족시킬 때에만 그 작품은 진정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창작활동이 의미가 없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나는 모든 창작활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 그 의미는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다.
나에게 창작활동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나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고 이렇게 세상에 작게나마 흔적을 남기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 목적은 자손을 남겨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번성하며 이 세상에서 지속 생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 생물학적 그 이상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목적이 창작활동이라 생각한다. 살아감에 있어 자신이 느낀 생각과 감정을 본인이 가진 기술로 표현해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음악으로, 때로는 과학으로, 또 언어로, 행동으로 표현되며, 이로써 자신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을 남겨 삶의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창작활동은 복잡한 내면세계를 가진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행동양식인 것이다. 창작활동을 통해 자기만족이 일어났다면 그걸로 창작활동의 가치와 의미는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그 결과물이 타인에게 인식되고 공감될 때에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정답은 없다. 본인이 만든 창작 결과물에 스스로 예술적 가치를 매길 수 있지만, 타인에게는 예술적 가치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사후 그의 작품이 인정받았듯, 당대가 아닌 후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기에 지속적으로 예술에 대한 시도는 하되, 단순 자신만의 신념과 감정을 해소하는 통로로 창작활동하며 본인은 예술이라 착각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자신을 유연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이 납득되어 가치를 인정받고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 이것이 내가 가진 예술에 대한 철학이다.
행복노트 #44
자신을 표현함으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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