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52 _ Rome, Italy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피렌체에서 오후 기차를 타고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니 이미 늦오후가 되었다. 6월의 여름이라 다행히 해는 길었지만, 점점 주변의 색이 따뜻하게 바래짐에 따라 하루가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어두운 밤에 도착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테르미니역 근처는 치안상 여행자들에게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막상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겨주는 것은 노숙자도, 부랑자도, 집시도 아닌 수많은 여행객들과 위화감 전혀 없는 로마 병사 모습을 한 개구쟁이 아이들이었다.
로마 테르미니 역은 로마 시내 동쪽에 위치해 있고, 내가 머물 숙소는 역에서 약 20분 걸어가야 했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유럽 특유의 돌바닥 위를 걸었다. 한 달 이상 유럽을 여행하니 어느새 돌로 된 길에 숙달된 것일까 나름의 요령과 근육(?)이 생긴 것 같았다. 순탄하지 않은 길 위 고생을 사서 하는 것도 나름 여행의 즐거움이라 생각하며 씩씩하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숙소는 북쪽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일곱 시를 넘기고 있었다. 어떠한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로마에서의 첫날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워 저녁거리를 살 겸 숙소 근처만 잠깐 산책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엄청 많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관광지에서 벗어난 로마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한적했다.
여행 전 로마 일정을 계획할 때, 지도를 보며 생각보다 놀랐던 부분은 로마가 많이 넓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미술관이나 여러 다른 체험을 하지 않는다면, 웬만한 대도시는 이틀이면 유명 관광지는 다 훑어볼 수 있다. 또한 그런 관광지들은 다 근처에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추천하진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속전속결로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마의 경우, 관광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며칠 만에 전부 둘러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여행 중 걸음수가 가장 많았던 도시도 로마였으며, 순례길 마냥 쉬지 않고 하루종일 걸었던 기억이 있다.
거쳐온 다른 이탈리아 여타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로마는 그 오래된 역사로 인해 볼거리가 넘쳐나고, 이탈리아의 수도답게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로마에서 단 한순간도 허투루 낭비할 수 없었고, 낭비하기 싫었다. 짧은 시간 내에 로마의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해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나는 비록 로마에서 4박 5일의 짧게 머물며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에 방문할 때는 최소 일주일 정도 로마에 머물며 천천히 로마를 느끼고 싶다.
오래된 로마 역사와 넓은 면적 덕분에 로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과거 기원전에 지어져 겨우 형태만 남아있는 유적지부터 중세, 르네상스, 근현대를 거치며 리노베이션, 증축, 새로이 건축된 건물들이 한데 뒤섞여 전통적이면서 웅장한 묘한 도시경관을 자아낸다.
이런 로마의 수많은 건축물들은 건축학적으로 많은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가 과거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함에 따라 로마의 건축법이 자연스레 유럽 곳곳에 퍼졌고,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여기에 더해 시간이 흘러 유럽 열강들이 대항해시대, 식민지 등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펼쳐 세계 어디서나 로마 건축물, 건축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도 로마 건축양식과 특징들은 현대에도 재해석되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로마에는 각종 대리석 조각과 예술품으로 장식된 화려한 궁전과 분수, 성당들이 존재한다. 이런 로마의 미적 취향은 대체적으로 그리스의 신전과 예술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로마인들의 건축물에 대한 고상한 안목을 기를 수 있게 했다. 특히 건물의 외벽이나 광장 중앙에 공공적으로 설치된 분수들 등의 경우,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하고 감상할 수 있었기에, 먼 과거에서부터 로마의 시민들은 건축물을 대함에 있어 이미 실용적인 공간을 넘어 그 이상으로 어떤 미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으로써 인식하게 되었다.
과거 그리스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인 '아고라'가 존재했다면, 로마에는 '포럼'이라는 넓은 공간이 존재했다. 포럼에서 로마의 시민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교류하고, 의견을 나누고, 휴식을 취하는 등 포럼은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됐다. 그리고 이런 광장 중앙에는 보통 분수가 존재했는데 이는 목을 축이거나 더위를 피하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
로마에 존재하는 수많은 광장과 분수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트레비 광장의 '트레비 분수'다. 여행객의 로마 필수 방문 관광지 중 하나이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분수로 동전을 던져 행운을 기원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관광지이기에 평일 대낮에 잘못 갔다가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 고통받을 확률이 크다. 이에 나는 해가 뜬 지 얼마 안 된 아침 일찍 트레비 분수를 방문했다. 트레비 분수에 장식된 조각상들을 실제로 두 눈으로 직접 봤을 때, 그 아름다움에 놀라 얼마나 로마 시민들이 건축물과 예술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건축물의 미적 가치에 더해 건축적으로 로마의 가장 큰 발명은 바로 '콘크리트'였다. 폼페이로 유명한 로마 근교의 활화산 '베수비오 산'에서 획득한 화산재와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풍부한 석회를 잘 혼합해 콘크리트를 만들어냈다. 생산 및 유지에 저렴했으며, 내구성과 강도 또한 우수했고, 다양한 모양으로 구조물을 만들 수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이에 많은 로마의 건축물들은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튼튼한 상태로 남아있고, 조금씩 발전을 거듭해 현대에도 건축에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로마의 건축물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법은 '아치' 형태와 '돔'이다. 주춧돌 위로 기둥과 벽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둥그런 공간이 생기게끔 돌을 쌓아 그 끝에 쐐기돌(keystone)로 무게를 받쳐 특유의 아치 모양을 만들었다. 이런 아치 모양의 건축구조가 유행하고 기술이 누적됨에 따라 결국 '돔' 형태의 지붕으로 발전되었다. 대표적으로 지금도 로마에 남아 있는 '판테온'이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돔 형태의 건축물이다.
개인적으로 판테온은 로마에서 콜로세움보다 더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으며, 판테온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사진보다 훨씬 더 웅장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특히 지붕에 뚫린 둥그런 원 모양의 구멍 사이로 햇빛과 비가 건물 내부로 들어오게끔 설계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과거 지어질 당시에는 로마 신화의 많은 신들을 섬기는 신전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중세에는 성당으로 잠깐 용도가 변경되었다가, 현재에 들어서는 다양한 분야의 이탈리아 위인들을 기리는 무덤으로 사용되고 있다.
판테온이 기원 후 125년에 지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약 2천 년 전부터 이런 웅장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로마의 기술에 감탄했고, 넋을 잃은 채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갑자기 판테온 내부에서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음에 놀라 천장을 보던 시선을 내려 주변으로 옮기니 어느 한 커플의 청혼 장면을 목격했다. 유명 관광지에서 청혼은 여행 중 쉽게 볼 수 있어 특별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판테온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는 잘 없을 것이다. 이에 축하의 마음과 함께 나도 '이때다' 싶어 함께 큰 소리로 환호하며 특별한 경험을 만들었다. 돔 지붕으로 인해 그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던 게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나며, 하나의 즐거운 여행 추억으로 남아있다.
로마의 상징이자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콜로세움'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과거 이 타원형 모양의 경기장 안에서 검투사들은 피를 흘리며 서로 싸우거나 맹수들과 겨루며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던 곳이다. 로마 시민들에게 이런 유혈 난투극은 그저 한낱 오락거리이자 유흥거리였다. 우리에게는 영화 '벤허'와 '글래디에이터' 등 로마를 주제로 한 미디어에서 흔히 나오는 광경이다.
현시대에 들어 콜로세움을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형의 스타디움 경기장들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무대를 원형으로 둘러싼 좌석들을 통해 최대한 많은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고, 그들은 어디서든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사방에서 무대를 바라볼 수 있기에 스포츠나 격투처럼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관람하기 최적화된 형태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축구 경기장이나 격투기장의 모태는 콜로세움에서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나 흥미로운 점은 현재와 같이 가까울수록 황제나 귀족만 앉을 수 있는 VIP석이었으며 멀리 갈수록 점점 계급이 낮아져 제일 끝 높은 자리에는 일반 시민들이 앉을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면 지불할수록 더욱 우대받고 가까이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으며 멀리 갈수록 가격이 저렴해진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 들어 그나마 나아진 부분은 일반 시민들도 금액만 지불한다면 누구나 VIP석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값이 상당히 고가로 책정되어 있어 사실상 일반인들은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다. VIP석은 지금도 꿈만 같은 곳이며, 경기장 내부의 계급사회는 아직 존재하는 듯하다.
'콜로세움'의 검투나 '시르쿠스 막시무스'의 전차 경기는 명목적으로 시민들의 오락을 위해 운영된 것이지만, 사실상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덜 가지게 하는 지배계급의 은밀한 속내도 있었다. 일부로 더 자극적인 공연을 연출하여 시민들이 현실이나 정치에 주목하지 않게끔 만들었고, 경기장 내부에서 음식 제공이나 각종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찾게끔 만들었다. 이런 지배층의 음모 안에서 로마는 부패와 타락을 이어갔고,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도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각종 오락거리와 유흥거리에 돌리게 만드는 정치방식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며, 지금도 유효한 방법이라는 게 흥미롭다.
이처럼 로마 곳곳에 남아있는 건축 유산을 바라보며, 작은 공간 하나하나 그들의 취향과 그들만의 방식대로 채워나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물, 건축법에 더해 로마는 도로 건설과, 배수로, 하수도 건설 등 도시 설계와 인프라 구축에도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로마에 와서 '미적 아름다움'과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문화와 기술의 우수성을 직접 느낄 수 있음에 너무 행복했다.
로마에서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었다. 현대에도 UFC나 MMA, 복싱과 무에타이 등 각종 격투 경기가 존재하나 엄연히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이 존재하고, 서로의 존중 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식으로 경기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거 로마 시대의 난투는 수위가 훨씬 더 높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더욱 잔인한 유혈사태가 발생할수록 시민들은 환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인권과 동물권 따위는 있을 리 만무했고, 사람 한 두 명 죽어 나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아무리 야만적일 수 있는 과거 시대라지만, 어떻게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광경을 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한낱 오락거리로 치부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숱한 전쟁을 겪으며 유혈상황에 익숙해진 탓일까 경기장의 검투사가 더욱 고통스럽게 죽을수록 더욱 처절하게 싸울수록 시민들은 더욱 흥분하며 격렬하게 환호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성선설' '성악설'은 먼 과거부터 종교적, 철학적으로 많은 논쟁이 있었던 주제다. 타인을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 위로하려는 마음 등을 예로 들어 맹자는 '사람은 본디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서양의 루소를 포함 많은 학자들이 성선설을 주장했다. 반대로 '성악설'을 주장했던 학자들은 더 많은데, 기본적으로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인간은 죄인이다'부터 근원한 경우도 많고,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기심과 잔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한 경우도 많다. 지금껏 많은 토론과 실험이 행해졌지만, 아직까지 성선설/성악설을 뚜렷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결과는 없다. 아마 인류의 기원과 함께 인간이 평생 절대 풀 수 없는 대표적인 난제라 생각한다.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사실 사회관념과 개인철학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 영역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도덕, 윤리, 규범은 변하며 무엇이 선한 행동이고 악한 행동인지 쉽게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정의하는 선악의 기준은 '자신의 본능을 경계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이로운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공감과 배려를 통해 타인과 화합하고 좋은 사회를 꾸려나갈 때, 인간은 생존에 더욱 유리하고 모두가 행복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병적 허언,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의 부족 등 많은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결핍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들에게는 연민이 부족하다.
"선악의 기원" p.77, 폴 블룸
나도 평소에 인간은 본디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고민을 틈틈이 하며 살아간다. 주로 사회에서 이기적이거나 배려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는데, 이와 관련해서 나의 철학은 인간은 대체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유전적으로 설계된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제대로 된 도덕적, 이타적인 관념을 갖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번뇌와 인내, 자아성찰과 깨달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성적 사고가 기반이 되고, 그 위에 공감의 영역이 자리 잡을 때 인간은 사회적으로 타인에게 '선'할 수 있다.
폴 블룸 교수는 인간의 도덕성 혹은 도덕감각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발견하기 위해 여러 재밌는 실험을 했다. 보통 과학적 실험이라 함은 최대한 상황을 통제해 모두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위한 딱 한 가지의 변수만을 주어 결과를 봐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도덕성을 살펴보기 위해 모든 환경과 실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완벽히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사람은 개인경험, 살아온 배경, 주변의 인간관계 등 각자 다른 변수에 영향을 받으며 살기 때문이다. 이에 폴 블룸 교수는 이런 요인에 제일 적게 노출되어 있는 '아기'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이는 그의 저서 '선악의 기원'을 통해 실험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의 소견을 정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해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인간의 본능과 가장 가까운 아기들의 행동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많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기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유대관계를 느끼는 개인 혹은 집단에게 더욱 공감과 배려의 행동을 했고, 유대관계를 느끼는 개인 혹은 집단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외 집단에게는 많은 잔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생후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들도 착한 행동(남들을 기꺼이 도우려는 이타적 행동)과 악한 행동(다른 이의 것을 뺏어오는 행동)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이거나 응징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UC 어바인의 제임스 팰런 교수도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사회에서 큰 범죄를 일으켰던 사이코패스들의 뇌를 스캔하며, 뇌신경과학적으로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기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 대한 결과로 그는 새로운 이론을 주장했는데, 동정심이나 죄악감을 만들어내는 뇌 전전두피질의 기능이 낮고, 폭력성과 반사회적인 성향과 관계있는 MOA-A 변이 유전자를 보유했으며, 안 좋은 성장환경 속에서 자랄 때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즉, 선천적 요인에 더해 후천적 요인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악한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폴 블룸 교수와 제임스 팰런 교수의 이론들을 살펴봤을 때, 결과적으로 사람에 따라 인간은 폭력적 유전자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며, 도덕 감각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태어나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살아가며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주변의 환경과 요인들로 발현되고 교정되어 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사람이 본디 선하고 악하고는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통 선한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에 의해 피해 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설령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이코패스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타인에게 주는 피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 제대로 생각이 박히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리고 스스로를 잘 인지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가 될 확률이 현저히 낮아 애초에 별 문제없겠지만, 어쨌든 사이코패스 본인은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야 하며,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발생을 막을 수 없다면 제도적으로라도 선한 사람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많은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일 무서운 사람들은 애매하게 공감능력이 떨어져 일반인처럼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은근히 타인에게 상처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본인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자신이 입은 피해를 확대해석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타인을 이용할 수 있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혀도 된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범들이며, 부족한 공감능력을 핑계로 많은 잔인한 행동들을 행해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문제는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그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또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죄책감을 쉽게 느끼는 부류일 가능성이 크다.
"선악의 기원" p. 97, 폴 블룸
현재 자본주의의 아버지이자 경제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위인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을 통해 '이기적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번영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이기적인 행동이 전쟁과 사냥을 위해 필수적이고 합리화됐다면, 지금은 이기적인 행동이 본인의 혹은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 합리화되는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본능을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기에 갖가지 핑계를 대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대사회는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인간의 잔인성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다. 아니 배운 문명인으로써 잔인하고 야만적인 성향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폭력에 노출되어 타인으로부터 스스로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해하는 언행과 공격적인 성향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음을 지각해야 한다. 아니 시대와 상관없이 스스로가 인간의 본능적 부족함에 잠식된 무능한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나 조차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분노하거나 단순 즐거움을 위해 잔인했던 경험이 있으며, 앞으로도 잔인해질 수 있음에 유의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상황에 따라 누구나 잔인하고 악한 인간이 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경계하고, 끝없는 고뇌와 자아성찰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완벽히 도덕적인 인간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우리 개개인은 이상적 사회상을 바라보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행복노트 #49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기반 위에 충분한 공감 영역이 자리 잡음으로써 이상적 인간이 될 수 있다.
Portugal - Spain - Switzerland - Italy - Slovenia - Croatia - Hungary - Slovakia - Austria - Czech Republic - Poland - Lithuania - Latvia - Estonia - Finland - Sweden - Norway - Denmark - Germany - Netherlands - Belgium - Luxembourg - France - UK - Turkey
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 해당 글의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 해당 글과 사진을 출처 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해당 글을 모바일 앱보다 웹사이트 큰 화면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