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이 부모 세대에게서 자녀 세대에게로 전승된다고 말한 바 있다. 부모의 행동양식과 생활습관, 가치관을 자녀가 그대로 학습한다는 것이다. 이를 교육학에서는 'Role Model'이라 정의하는데, 이 이론은 현대의 공교육과 사교육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틀을 제공한다. 즉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학습시키고 있는지 돌아볼 때에 유용하다.
우리나라의 수능 사회탐구 경제 과목 선택 비율은 2%대로 처참하다. 경제를 배우려 하는 학생도, 가르칠 교사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이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로 나오게 되는데 이때가 되어서야 '돈'이 우리 사회를 굴리는 질서임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생활비의 압박 앞에서 좌절의 벽을 만난다. 대학을 다니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학생이라면 이 기간이 잠깐 유예되기는 하겠지만 이들이 취업하고 난 뒤 처음 월급을 받고 마주하게 될 충격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15년 독일의 나이나 K라는 김나지움(인문계 중등교육기관) 재학생이 두 줄의 트위터를 올려 독일 교육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내용은 이것이다.
"나는 곧 18세가 된다. 하지만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시를 분석하는 데는 능하다. 그것도 4개국 언어(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이 논의가 촉발된 지 8년이 지났다. 2016년부터 독일에서는 김나지움에서 경제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독일 아이들은 미래의 근로자 또는 기업가로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경험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서 경제를 접하는 것은 고등학교 통합사회에 토막으로 등장하는 금리 인상과 인하가 끝이다. 이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지식이란 사회문화 / 생활과 윤리 / 생명과학 / 지구과학 등 수능 응시자 수가 많은 일부 과목에 치우쳐 있다.
정수정. 독일의 경제 교육 현황. 2018년 10월 24일.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
공교육의 함의는 타고난 운에 의해 좌우되는 문화자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공교육이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사회 구조의 산물이며, 사회에 순응하는 인물을 만들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교육이 계층이동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비관적 시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교육이 어떤 시각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교육이 지닌 잠재력은 무한해질 수도 있다. 『딸아, 돈 공부 절대 미루지 마라』를 읽고,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제공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현명하게 현대 사회를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박소연 씨가 딸에게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써 내려간 글이다. 책의 내용은 돈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부터 사랑하는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까지 다양하지만, 책의 골자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경제는 기본 덕목이라는 것이다.
공교육이 변하는 것은 너무 어려우며 현재의 교육체제 속에 경제교육을 끼워 넣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최근의 교육이 학생들의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과 AI역량 강화에 주목하고, 교사 재교육에 힘쓰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한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 고교학점제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라고 말할 만하다. 현재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듣고 자유롭게 공부하는 '진로선택과목' 제도가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이런 변화가 정착되면 교사의 자율적 교육과정 편성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공교육은 가정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지식의 전수 기능을 공공의 차원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회집단에 소속되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고 타고난 '문화자본'의 개념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최근 저출산, 교권추락, 교사 선발인원 감소 등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화를 추구하는 헌신적인 교사들이 있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으로 경제, 사회문제탐구 등의 과목을 개설하여 기존의 교육이 제공하기 어려웠던 실용적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이나 K가 이야기한 '세금, 집세, 보험금' 등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 전체가 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경제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많은 사람들이 금융에 관심을 갖는 것은 괄목할 만한 변화다. 『딸아, 돈 공부 절대 미루지 마라』는 한 엄마가 딸에게 인생의 지혜를 전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이 책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이야기이다. 특히 고등학교를 떠나는 갓 스물이 되는 청춘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