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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un 12. 2023

돈은 제때 주세요

아웃소싱을 해보며 깨달은 것


개인사업을 하며 받게 되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제때 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내야 하는 돈의 액수는 일정하지만 매달 들어오는 시기는 일정하지 않아서 곤란한 적도 생각보다 더 자주 있다. 인건비지급해야 할 때 자금이 경직되어 추가 대출을 받았어야 했던 적도 몇 번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퇴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잘 실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 작업을 아웃소싱한 것이다.


처음 회사를 관둔 것이 5월 1일 노동자의 날이다. 부산에 있는 학원에서 여름방학 특강을 맡을 기회가 생겼고 약 한 달 반 가량의 준비 기간이 생겼다. 학생들에게 강의 복습용으로 Youtube로 녹화 영상을 제공하려 했는데 시중에 있는 교재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수능기출문제라서 출판사에서 허락을 득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허사였다. 결국 내 교재를 만들기로 했고 기출문제를 타이핑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 둔 마이너스 통장을 써서 작업료를 지불하기로 했다. 작업비는 당돌하게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잡았다.  

 

모교와 고려대학교 커뮤니티에 모집 게시글을 올렸는데 연락 온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중 나름의 선발 절차를 거쳐 사람을 추려내고 작업을 맡겼는데 역시나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인건비 입금 처리해야 하니 주민번호를 달라 했더니 민감정보라 줄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업소득 지급 후 세금 납부를 위해서는 받는 사람의 주민번호가 필수다..)


이때의 경험이 내게는 큰 자산이 되었다. 퇴사 직후 가진 것이 없었던 내가 빚까지 내가면서 인건비로 몇 백만 원을 태워서 '단 한 학원의 수업을 위한 책'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의아해했다. 부산에 있는 학원까지 출강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을뿐더러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사실 학원 수업은 가면 갈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써 본 경험은 여러 모로 큰 자산이 되었는데 이때 경험을 토대로 오래도록 함께 일해도 좋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조교 선생님들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든든하게 내 일을 도와주고 계신다.


그리고 또 다른 깨달음이라 한다면 타인과 '돈'을 매개로 의사소통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입금일 준수'라는 것이다. 그 어떤 사정을 막론하고 돈을 주는 것은 근로관계에서 가장 철저히 지켜져야 할 약속이다. 나는 돈을 주는 입장에도, 받는 입장에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거래처는 담당자의 인품이나 실력 같은 것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제시간에 입금하는 곳이었다. 퇴사 직후 잠깐 특강을 하기 위해 출강했던 다른 학원 원장님은 계약서를 쓰지도 않았을뿐더러 마음대로 시급을 깎은 금액을 입금하고 연락이 두절되어 버려서 참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긴 했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돈은 제때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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