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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Jul 18. 2018

난 내가 성숙한 인간인 줄 알았지

꼬맹이 양양도 우리가 진실의 반밖에 볼 수 없다는 걸 안다. 겸손하자.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얼마 전에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에게 기분이 불쾌해지는 말을 들었다. 내 약점을 장난스럽게 비꼬는 말이었는데, 조금도 재밌지 않았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웃어넘겼는데,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근래에 이런 식으로 감정 상한 적이 없어서 더 낯설고 괴로웠다.     


문득 당연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내가 비교적 자기객관화가 잘 돼 있고, 이전보다 성숙해진 덕분에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이 없어졌다고 믿고 있었다. 전혀 아니었다. 가깝게 지내는 이들 대부분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친밀한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봤다. 가치관도 성격도 하는 일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타인의 단점이나 약점으로 우월감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 최소한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부류였다. 또,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단점보다 장점을, 약점보다 강점을 봐주는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선하고 성숙했다. 의견이 부딪히거나 서운한 감정을 느낄 때는 있어도, 상처를 주고받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관계에 능통해서 별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나이 들수록 곁에 남은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만나기 힘들고, 소중한 존재인지 실감하는 순간이 잦아진다. 이틀 전에도 그랬다. 주말부터 이어진 엄마와의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잠깐이지만 너무 울적했다. 회사에서 옆자리에 앉는, 동료 이상으로 친밀한 친구는 퇴근 후 메시지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도 모르게 일을 할 때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던 것이다. 그는 즉각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시간을 두고 이유를 물어줬다. 덕분에 사과하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날 엄마와 다툰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준 또 다른 친구는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당시에는 기분이 상하고 힘이 빠져 사랑한다는 말을 떠올릴 수도, 꺼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감정이 가라앉자 친구의 말이 기억났다. 엄마께 귀여운 캐릭터 이모티콘과 함께 사랑한다고 보냈고 상황은 잘 마무리됐다. 친구의 지혜로움 덕분이었다.     




마치 이 세상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잘난 척 하지만, 실상은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이 배우며 살고 있는지. 아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자주 빚지고 있을 것이다. 부족한 점을 크게 느낄 수 없을 만큼 조용히 배려하고 깨달음을 주는 친구들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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