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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온 Nov 14. 2023

재스와 빌리

<블루 자이언트> 와 <케스>

영화 <블루 자이언트>와 <케스>는 십대 소년이 주인공이다. 이 소년들은 사랑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재즈와 매. <블루 자이언트> 속 소년들, 다이, 사와베, 타마다는 재즈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팀 JASS (재스) 를 결성해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케스> 속 소년 빌리는 혼자 너른 들판에서 매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각 영화 속 소년들은 너무도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린 채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과 함께 가는 삶을 살아간다.



뜨겁거나 차갑거나

두 영화의 온도차는 너무 크다. <블루 자이언트>는 제목이 내포하는 의미처럼, 너무 뜨겁게 타오르다 못해 푸른 빛을 낼만큼 관객들을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케스>는 묵묵하고 냉정하다. 온도가 다를 뿐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두 영화 모두 집요하고 애정이 담겨 있다.

재스 멤버들의 재즈와 음악에 대한 열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압도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나도 무언가를 저 정도로 열심히, 미치도록 갈망하며 열정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었나 돌아보게 만든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도, 기어코 무대에 서고마는 사와베의 감정과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없던 열정도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그들은 끝없이,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그들이 서서히 성장하며 일본 최고의 라이브 재즈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도움도 컸다. 자신의 가게를 기꺼이 연습실로 내어준 재즈바 ‘Take Two’의 사장님, 아직 서툰 드럼 실력인 타마다의 연주를 매번 찾아 들으며 성장하는 것을 잘 지켜보고 있다고 응원해준 관객. 그리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준 쏘 블루의 매니저 타이라. 그 모든 주변인들이 없었다면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그들의 꿈은 성냥불처럼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른다.

빌리는 재스 멤버들보다도 어리지만 신문 배달을 하며 스스로 용돈을 번다. 늘 같은 청바지, 같은 점퍼를 입는 빌리. 때가 끼고 낡은 옷이다. 아직 아이의 티가 나는 앳된 얼굴이지만 뭔가 그늘이 져 있고 지쳐보인다. 그런 빌리에게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존재는 우연히 발견한 어린 매 케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빌리의 매 키우기를 응원하지 않는다. 빌리는 서점에서 새를 키우는 방법에 관한 책을 훔쳐서라도 읽는다. 집에서 마주친 이복 형은 그런 빌리를 비웃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체육복을 입지 않고 샤워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벌을 하는 선생님이 있다. 빌리는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 무관심한 가족들 사이에서도 케스를 성실히 돌보고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조금씩 먹이먹는 법과 더 멀리 날아가는 법을 익히는 케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빌리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성장의 필수조건

<케스>에서도 빌리가 사람들 앞에 나와 마치 무대에 서는 것 같은 장면이 있다. 영어 시간, Fact 와 Fiction의 차이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묻는 선생님.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Fact는 실제로 일어난 것(Something has actually happened) 이라고 한다. 수업에 별 관심이 없던 빌리에게 선생님의 질문이 날아든다. 방금 우리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빌리는 질문에 ’Story’라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엉뚱한 빌리의 말에 수업을 듣고 있었냐고 핀잔을 주지만 혼내지 않고 그렇다면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고 시킨다. 반 친구들은 빌리가 매를 키우고 있다며, 빌리를 약간 괴짜 취급을 한다. 매는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키우는지 물어보는 선생님. 빌리는 덤덤하게 책에서 본 것들과 자신의 실천들을 이야기한다. 아예 앞으로 나와서 이야기해보라는 선생님. 빌리는 떨지도 않고 학생들 앞에서 케스와의 ‘스토리’를 풀어낸다. 점점 몰입하며 빌리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는 학생들.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이 빌리의 말을 경청하는 장면이다. 영어 선생님은 빌리의 새장에 찾아와 빌리와 대화를 나눈다.

“매는 길들여지지 않아요. 훈련될 뿐이죠.” 빌리가 말한다. 빌리는 케스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도와줄 뿐이다. 정작 빌리에게는 그런 존재가 없다.

<블루 자이언트>에서 청중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사려깊고 훌륭한 청중이다. 새로운 젊은 피가 나타났지만 깎아내리려 하지 않고 재스의 출현을 반가워한다. 청중없는 공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그들의 에너지가 폭발한 것도 청중들의 반응과 공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모두 공연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친다. 그 마음이 공간 안에 가득 퍼진다. 그렇게 그들의 음악도, 연주 실력도 한 단계 더 나아질 수 있었다. 그들 주변의 ‘어른’들도 그들을 길들이려하거나 어떤 기준에 맞추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 자유롭게 그들만의 연주를 할 뿐이고, 청중들은 감동했다.


판타지가 현실이 될 수 있게

혼자만의 노력으로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고, 성장을 이루어낸다는 건 정말 어렵지 않을까? 빌리에게도 좀 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재스도 멤버들을 만나 함께 연습을 계속해나갔던 것처럼, 빌리도 매를 키우는 것을 함께 지켜봐주거나 같은 마음인 친구 한 명만 있었더라면. 매를 키우는 법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알려주려는 어른이나 안전한 새장을 마련해주는 어른이 있었더라면. 아마 빌리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고싶은 걸 해라’, ‘꿈을 찾아라’ 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세상이다. 흔해져버린 그런 말이 무색하게도 정작 어렵게 찾은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은 너무도 열악하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블루 자이언트> 보다는 <케스>와 더 가까운 것 같다. 꿈을 쫓는 청년들은 비싼 월세도 감당하기 힘든데, 주변의 비웃음과 안정적인 직업이 낫지 않겠냐는 배려없는 훈수도 견뎌야한다. <블루 자이언트>가 잊고 있던 열정과 뜨거운 초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충분한 영화였지만 요즘의 현실을 떠올리면 마냥 판타지같기도 해서 씁쓸했다. 저렇게 운이 잘 따라준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블루 자이언트> 속 상황이 판타지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지는 세상이 될 수 있길.




<블루 자이언트> 2023

감독 타치카와 유즈루 / 음악 우에하라 히토미


<케스> 1969

감독 켄 로치 / 촬영 크리스 멘지스 (더 리더 책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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