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글을 쓰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늘 글쓰기가 쉽지 않았지만 요즘은 단순히 글이 잘 안 써진다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고민이 글쓰기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과연 재능이 있나 하는 질문에서부터 대체 언제쯤 작은 성과라도 (책 출간이나 시나리오 계약) 낼 수 있을까. 즉 내가 결국 작가가 될 수는 있을지 하는 의문.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는, 아니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내 안의 나는 곧잘 '그래. 넌 될 수 없어'라고 했다가 '아니야. 조금만 더 힘내서 해보자. 벌써 포기하긴 일러'라고 했다가 하며 뭐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답만 반복할 뿐이었다.
2019년 여름 어느 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브런치 작가 심사에 통과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당시 나는 프리랜서로 영화 현장에서 일을 하다 잠깐 쉬는 동안이었다. 한동안 멈췄던 시나리오 쓰기를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던 때였다. 쓰고 싶은 아이템도 퍼뜩 떠오르지 않았고 곧 서른인데 지금 이대로 살아도 될지, 시나리오나 영화는 접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지, 밀려오는 시간 앞에 어찌할 줄 모른 채 막연히 고민만 많던 시기. 그때 날아든 브런치 작가 통과 소식은 단순히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허락을 넘어서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작가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계속 쓰면 됩니다'와 같은 응원과 확신이었다.
2021년이 되자마자 계약직으로 일하던 회사와 재계약 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차피 코로나로 회사도 인원을 감축한다는 이야기가 돌던 때였다. 브런치에도 생각이 날 때마다 이런 저런 글을 올리다 브런치북도 처음으로 도전해보았다. 결과는 아무 일도 없음. 그 사이 시나리오 공모전이나 지원 사업에도 도전했지만 연락이 오거나 가장 낮은 상이라도 당선되는 일은 없었다. 문득 내 글이 너무 사사롭고 아무 의미없이 느껴졌다. 그래서 모든 글을 비공개로 내리고 브런치에는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삼십대가 되었다. 그게 막연히 두려웠는데 내 예감은 생각보다 정확했다. 서른 이후,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더 끔찍하고 혹독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서른 다섯이 된 지금까지도 별로 변한 것은 없다. 2019년에 브런치 작가가 된 후로 6년 동안. 계속 거절과 무응답을 견디며 뭐라도 쓰고 있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너무 답답하고 마감이 필요하면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또 떨어지더라도 지원사업 혹은 공모전 일정을 확인한다. 돈이 필요하면 알바를 한다. 버스에서 작가 통과 메일을 한참 들여다보며 부푼 꿈을 안고 있던 그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게 끝이 아니고, 겨우 겨우 아무 것도 아닌 시작을 했을 뿐이라고.
그래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막연한 미련 때문에? 미완성인 채 쌓인 글이 너무 많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계속 쓰고 싶긴 한 건지. 매번 글쓰기를 할 때마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고.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부터 어떻게, 왜 쓸 것인지 어디에서 문단을 나누고 이 문장이 꼭 필요한지 아닌지. 이 지지부진하고 막막하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보상도 없고 힘들어도 티도 안나고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계속 하고 싶은지 말이다. 내가 봐도 미련하지만 계속 하고 싶다. 아직은.
이렇게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회의가 들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청각 장애가 있는 복서 케이코의 묵묵한 하루 하루를 담아낸 영화는 케이코의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작은 변화와 성장, 좌절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케이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감정을 펀치나 달리기와 같은 몸짓에 담아 표현한다. 통쾌한 승리나 우승 장면은 없다. 오로지 복싱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훈련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이것이 전부다. 케이코는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시간을 감내할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포스터 속 문구를 보고 멈칫했다.
'작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도망치고 싶어'
이 문구는 글을 썼다가 도저히 못 쓰겠다가 다시 또 쓰고를 반복하는 나의 하루를 떠올리게 했다. 무언가 된다는 보장없이 그저 매일 매일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케이코의 모습은 별 진전없이 글쓰기를 붙잡고 있는 나의 모습과 겹쳤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미친 듯이 훈련하여 엄청난 성과를 내는 류의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말 대신 눈빛이나 수화로 그녀가 얼만큼 매일의 훈련 속에서 괴로워하고 또 잘해내고 싶은지가 스크린을 넘어 생생히 전달되었다. 케이코는 잠시 멈추기를 선택했다가 다시 조금씩 일어서 매일의 훈련을 묵묵히 기록해나간다. 별 성과가 없으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던 내가 너무 섣불렀던 게 아닌가 싶었다. 저렇게 매일, 그저 더 꿋꿋히 해보기는 했나? 당장 코로나 때문에 복싱장이 사라질 거라는데도 케이코는 묵묵히 다시, 새벽에 일어나 달린다. 어제와 비슷한 기록이라도.
글쓰기든 복싱이든, 순식간에 확 나아진다거나 갑자기 다음 날 큰 성공을 거둔다거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잠시 망각한 것이다. 주변의 성공이나 성취를 쉬이 내 상황에 대입해 비교하고 그래서 또 낙심하고. 긴 우울의 터널에 들어가 웅크리기도 했다. 해는 매일 다르게 떠오르는데 내게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저 매일, 내 구리디 구린 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면 충분했다. 너무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 언제든 다시 하면 된다. 매일 비슷하더라도 그저 기록하고 반복하는 것. 느리지만 꾸준하게. 그 방법 밖엔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고 다시금 깨달았다.
나에게 브런치는 케이코의 복싱장이나 공원처럼 매일의 훈련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거창한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솔직한 내 생각을 풀어놓고 조금씩 글을 쌓아가도 되는, 심지어 발행 후에도 언제든 수정도 할 수 있다. 부족한 글이지만 '라이킷'으로 응원도 받는다. 더 큰 행운이 찾아와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선정이 되면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일단은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된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모든 브런치 작가들이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글을 쌓아나갈 수 있길. 브런치가 그런 공간으로 오래오래 남아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