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 살기

by 순례자

젊을 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나이가 드니, 외로움이란 낯선 단어가 제법 큰 위세를 부리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인간은 원래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책을 통해서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들은 바가 많았지만, 이제 내게도 실제적인 느낌으로 피부에 와 닿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적어도 나는 외로움은 안 탈 줄 알았다.

소싯적부터 나름대로 친구들도 많았고, 연애도 많이 해봤으니까. 20대엔 학업과 청춘사업에 세월 가는 줄 몰랐고, 30대엔 신학의 정진과 교회사역에 완전히 몰입해었다. 그러면서도 개인사가 복잡하게 펼쳐졌다, 40대엔 담임목회가 시작되어 맡겨진 교회에 올인하며 보냈다. 50대는 인생의 시련을 맛보았으며 그런 가운데 더 넓어진 사역으로 인해 바쁘게 살았다. 그땐 혼자 있을 시간이 아까웠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웠고, 그 속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는 게 좋았다.


그런데 60세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내 주변에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심지어 아내도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대화는 점점 짧아지고, 그나마도 자식들 얘기나 건강 이야기가 고작이다. 네 아이가 있어서 과거에는 투정처럼 제발 너희들이 어서 커서 나가 살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정반대의 고요함과 정적이 괜시리 싫기만 하다. 자녀들이 이렇게 다 나가 있다보니, 부부 사이도 언제부턴가 서로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멈춘 것 같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내는 다들 우리 나이에는 그렇게 산다고 하는데, 나는 같이 살아도 아내가 그립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이 내 주위에 있어서, 학교 친구 교회 친구, 목회자 친구, 단체 친구 등. 언제든지 어떤 친구든지 끊이질 않았는데 이젠 그들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도 버겁게 느끼는 것 같다. 연락도 내가 거는 전화가 많지, 내게 오는 전화는 분명히 더 적다. 하긴 세상이 넘 바뀌었으니 전화할 일도 없다. 문자나 카톡으로 거의 다 끝내버리니까.


집안사람들이나 혈육과 형제들도 그렇다. 누군가는 건강이 안 좋다며, 누군가는 손주 봐주느라 바쁘다며 만남을 미룬다. 막상 만나도 옛날 이야기만 반복하다 헤어진다. 새로운 이야기는 별로 없다. 우리 모두 비슷한 일상 속에 갇혀 있으니까.


이렇게 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제 내게서 가까이 할 만한 매력이 더 이상 보이질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괜시리 서글퍼지려고 한다. 거울을 보면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주름지고 처진 얼굴, 많이 가라앉은 눈썹과 그 속에 곰처럼 웅크리고 있는 눈빛. 무엇보다도 이놈의 뱃살. 이게 정말 나일까? 마음은 아직 3, 40대 같은데, 몸은 벌써 70대를 향해 가고 있다. 이 괴리감이 때로는 견디기 힘들다. 이러니 아내인들 좋아하랴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지 않았을까? 관계를 소중히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했을까? 그런 생각들이 자주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후회한들 무엇하랴. 이미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데... 그렇다면 정녕 친구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까.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고, 그들도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세대 간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외로움을 해결해보겠다고 그 원인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게 된다고 해도, 내가 고칠 능력이 이젠 없는 것 같으니까.

사실 그럴 의사(意思)는 있어도 능력(能力)이 없다고 그냥 자인(自認)해버리고 싶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가 귀찮으니까. 변화를 위해 애쓰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기존의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 젊을 때는 그런 에너지가 넘쳤는데, 이제는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아, 진짜로 늙었나보다. 이 말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혼자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뿐이다. 외롭지 않게, 즐겁게 사는 법(法).....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법. 혼자 산책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법. 혼자 음악을 들으며 옛 기억을 되새기는 법. 혼자만의 취미를 찾고, 혼자만의 루틴을 만들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법.


고수에게 배워볼까? 혼삶, 즉 '혼자 살기'의 고수에게.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혼자이되 외롭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혼자이되 충만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에게 배워야겠다. 아니,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외로움을 부정하지 말고, 그것과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야겠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고, 오롯이 '나'가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암튼. 잘 살아보자. 혼자라도.

주님이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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