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가 주는 행복

새벽기도 예찬

by 순례자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새벽기도의 자리를 지켜왔다.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이니, 방년 열여덟 살의 나이였다. 교회에 발을 들인 지 오래되지 않았던 그 무렵, 나는 뜻밖의 깊은 은혜를 경험했고, 집 근처에 있던 거제교회는 어느새 내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당시 나는 갓 신앙을 시작한 소년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들은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했다. 그 은혜의 체험들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내 영혼을 주님께로 이끌었다. 훗날에는 아예 그 교회 옆으로 이사까지 하게 되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놓여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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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게 새벽기도에 나가자고 권한 적은 없었다. 스스로 마음에 열심이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그 자리로 나아가게 되었다. 본래 나는 밤잠이 길지 않고 새벽잠이 없는 체질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일찍이 나를 그렇게 빚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시던 고(故) 김종한 목사님의 영적 깊이와 생동감 넘치는 인도였다. 신령하면서도 따뜻하고, 진지하면서도 웃음이 있는 그 새벽의 말씀 앞에서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목사님의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 형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생생한 대화였고,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함이었다. 때로는 부드럽게 속삭이시듯, 때로는 우렁차게 외치시듯 기도하시는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새벽 어둠 속에서 촛불처럼 타오르던 그분의 영성은 어린 신앙인이었던 나에게 평생의 표본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목사님께서 자주 언급하시던 고려신학대학, 곧 고신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려파의 신앙과 신학이 지닌 순결함과 결기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옥중에서도 신앙을 지켜냈던 이른바 '옥중성도들'—그 신앙의 후예라는 사실이 내게는 큰 자부심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켰고, 타협하지 않는 믿음의 길을 걸었다. 그 거룩한 유산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이자 동시에 큰 영광이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새벽기도는 내 일상의 중심축이었다. 신학의 지식이 머리를 채울 때, 새벽기도는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 후 그들의 후예를 자처하며 신학의 길로 들어서 목사가 된 지도 어느덧 39년. 오랜 목회와 사역의 세월 속에서,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새벽기도는 내 모든 삶과 사역의 힘과 사랑과 회복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주님은 늘 새벽에 내게 가장 친밀하게 다가오셨다.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는 고요한 시간, 오직 나와 하나님만이 존재하는 듯한 그 거룩한 순간들은 내 영혼의 보물이 되었다.


특히 목회의 여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새벽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통곡의 기도를 드릴 때에도 주님께서 오셔서 내 눈물을 닦아주시고, 소망의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교회 개척의 험난한 시기, 성도들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찢어지던 순간들, 가족의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 왔을 때, 사역의 방향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그 모든 순간마다 새벽단은 내게 피난처였고, 위로의 처소였으며, 새 힘을 얻는 샘터였다.


아, 그런 은혜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온전히 신앙과 사명을 지킬 수 있었을까. 새벽기도가 나를 살려준 것이다. 쓰러질 듯 지칠 때마다, 주님은 새벽에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마치 엘리야에게 천사가 떡과 물을 주었듯이, 주님은 새벽마다 내게 영적 양식을 공급해주셨다. 그 양식으로 나는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내 나이 64세. 시간이 이만큼 흘렀어도 나의 주님 사랑은 여전히 새벽기도에서 시작된다. 새벽마다 부어주시는 은혜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귀하다. 하나님은 유독 새벽에 나를 가장 잘 만나주신다. 이제는 젊은 시절처럼 몸이 가볍지는 않다. 무릎도 아프고, 추운 겨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새벽단으로 향하는 그 길 위에서 느끼는 설렘과 기대감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주님과의 관계는 이제 낡은 친구 사이의 편안함처럼, 오래된 부부 사이의 깊은 신뢰처럼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서 만나지만, 주님은 언제나 새로운 은혜로 나를 놀라게 하신다. 어제의 말씀이 오늘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빛으로 다가오고, 익숙한 찬송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을 뭉클하게 적신다.


그래서 나는 내 신앙의 원천이 새벽기도라고, 조금도 주저없이 없이 말하고 싶다. 더 나가서 새벽기도는 반드시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장 귀한 영적 유산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의 재산은 다 사라져도 좋다. 명예도, 지위도 모두 덧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새벽마다 주님을 만나는 이 복된 습관, 이 거룩한 전통만큼은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하고 싶다. 자녀들과 손주들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 법을 알고,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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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도 겨울 바람은 매서웠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고, 온 세상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교회로 나아가 머리 숙여 기도하는 그 순간, 물밀듯이 밀려오는 주님의 사랑 앞에서 온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치 포근한 품에 안기듯 깊은 평안이 스며들었다. 밖은 영하의 날씨였지만, 내 영혼은 봄날처럼 따스했다. 성전의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미소 짓고 계신 것만 같았다.


아, 이 기쁨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새벽잠을 설치는 것을 고통이라 여기지만, 나에게 그것은 최고의 특권이다. 내게 주신 최고의 축복의 열쇠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새벽기도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깊은 기쁨이 있다. 새벽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그 순간순간이 내게는 보석처럼 귀하다.

46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지켰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병으로, 혹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새벽단을 지키지 못한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이면 온종일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고,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이 따라다녔다. 그것은 내게 새벽기도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생명의 호흡과도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새벽이었고, 가장 값진 투자는 새벽기도였으며, 가장 위대한 만남은 새벽에 주님을 만난 그 순간들이었다고. 앞으로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이 땅에서 숨 쉬게 하시는 날까지 나는 새벽단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설 그날,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주님, 저는 새벽마다 주님을 사모했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주님, 이 놀랍고 황홀한 새벽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46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새벽마다 저를 기다려주신 주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남은 생의 모든 새벽도 주님과 함께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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