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힘들어하시는 어느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 말은, 우리 아파트 윗층에 홀로 지내시는 할아버지께서 어느날 엘레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아내와 마주쳤을때 건네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자상하신 할머니와 함께 누가 보아도 화목하게 사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셨기에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겠지만, 홀로 남겨질 할아버지를 생각하시면 할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우셨을까요.
같은 동에 살고 계시기에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늘 온화하게 웃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안부를 여쭈면 늘 외로움을 하소연하시곤 했는데, 최근에는 저토록 깊은 말씀까지 하시게 된 것입니다. 제 마음도 함께 아파옵니다. 얼마나 외로움에 지치셨으면 저런 말씀을 하실까...
아내에게서 전해 듣은 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자꾸만 귓가에 맴돕니다. 어쩌면 제 이야기처럼 느껴져서일까요. 새벽기도 시간에도 그 말씀이 따라옵니다.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 깊고 무거운 고독이라는 병에 대해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고독에 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사상과 연결된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아마도 영원히 인류의 기억에 남아 회자될 것입니다. 사실을 확인해보니,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고독'이 아닌 '절망'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절망은 결국 깊은 고독의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고독을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이해하는 것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고독을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인간을 내면으로부터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상태로 인식해 왔습니다.
프랑스의 천재 사상가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방에 머물 수 없다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소음과 오락, 사람과 사건 속으로 도피합니다. 하지만 그 도피가 고독을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고독은 더 깊어질 뿐입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더욱 극단적으로 말했습니다. "지옥은 타인이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진정한 만남 없이 소비되는 관계 속에서 인간은 더욱 고립됩니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관계 한가운데서도 자라납니다.
마르틴 부버는 이 고독의 뿌리를 관계의 붕괴에서 찾았습니다. "'나–그것'의 세계에 머무는 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대상화된 관계, 기능과 역할로만 엮인 만남 속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만나지 못합니다. 관계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고독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영국의 신실한 크리스천 사상가 C. S. 루이스는 고독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옥이란 사랑받지 못하는 곳이 아니라,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다." 고독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필요받지 못함, 의미 없음, 연결되지 않음—그것이 고독의 가장 깊은 형태입니다.
이 모든 통찰 가운데, 고독의 위험성을 가장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말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것입니다. "혼자 있을 수 없는 사람은 공동체를 조심해야 하고, 공동체 속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은 고독을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은 고독과 공동체를 모두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소음으로 만들고, 공동체 안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은 고독을 신앙으로 착각합니다. 고독은 방치되면 독이 되고, 공동체는 준비되지 않으면 피난처가 아닌 위험지대가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고독 그 자체가 문제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물러나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고, 다윗은 광야와 굴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엘리야는 호렙산의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 역시 아라비아의 침묵 속에서 복음의 깊이를 다져갔습니다.
문제는 고독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없는 고독은 사람을 안에서부터 잠식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독은 사람을 새롭게 빚습니다. 고독의 본질은 '혼자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 앞에 서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고독은 절망이 되지만, 그 관계가 바로 서면 고독은 정화와 성숙의 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고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없는 고독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독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살립니다. 고독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다시 다루어져야 할 귀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로 설 수 있습니다.
윗층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이 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고독이 참으로 힘드시겠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로 여겨보시면 어떨까요. 고독이 행복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하니까요. 부디 힘내십시오.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할아버지의 고독이 고행이 아닌 은총의 시간이 되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