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욕심이란 무엇인가요? 예로부터 우리는 욕심을 부정적이고 통제해야 할 것으로 배워왔습니다. 혹부리 영감이나 흥부와 놀부 같은 대표적인 전래동화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욕심 냈을 때의 부정적인 결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역설적인 부분은 늘 욕심 내지 말라고 배우지만, 욕심이 없어서도 안된다는 점입니다. 욕심이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동기가 되기 때문이죠. 외줄 타기 하듯 항상 아슬아슬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크기가 어느 정도여야 가장 적당한 것일까요? 얼마나 욕심을 부려야 합의된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받는 걸까요. 오늘의 명명 대상은 바로 이 모순적인 욕심입니다.
욕심의 사전적 정의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욕심(慾心)의 한자 형태가 바랄 욕 자(欲) 아래 마음 심 자(心)가 있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죠. 이런 마음 하나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무게를 싣고 살아갑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벌을 받고 욕심이 없으면 남루하다는 평가를 하죠. 그래서 사회는 욕심 없는 척 가면을 쓰고 영리하게 굴어서 챙길 건 다 챙기는 사람이 되길 권유합니다. 그러나 웃긴 점은 어떻게 행동을 해도 욕을 먹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씌운 욕심이라는 프레임 탓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참 피곤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그저 하나의 마음뿐인데 말이죠. 욕심은 원망, 분노, 슬픔, 기쁨 등과 같은 기본적 감정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가능성과 소망에 더 가까운 뜻을 지니고 있죠.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행동이지 마음, 감정 자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마음조차 부담스럽고 부담스럽게 만들기 일 수입니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적당히 지니고 동시에 행복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어른이란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고,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순간 욕심과 같은 기대는 사치가 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어쩌면 선조들은 욕심부리지 않는 삶에 집중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든 하루하루에 욕심을 부리며 산다는 건 자칫 그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달콤하고도 잔혹한 꿈이었기 때문일까요.
욕심을 한 번 풍선 불기에 비유해 봅시다. 욕심의 크기는 풍선과 같아 쉽게 빠져나가기도 채워지기도 하죠. 그 풍선에 대한 책임은 본인의 손에 달렸기에 우리는 욕망을 조절하려 노력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 시퍼런 철조망이 풍선을, 아니 그 욕심의 그릇인 본인을 터뜨리기 전에 말이죠. 욕심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의 풍선은 비루하고 초라합니다. 쭈글 한 고무 자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처 우러러볼 만한 탐스런 풍선을 불었죠. 그러나 그 풍선은 철장 사이에 껴버리고 맙니다. 이제는 다시 크기를 줄여야 합니다. 볼품없지는 않게, 하지만 비대하여 끼여 터져버리지는 않게. 벌써부터 빠득거리는 소리가 귀에 선합니다. 지나치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평범에 맞추는 크기. 참으로 까다롭기 그지없습니다.
애초부터 생각해 보면 풍선을 철장에 가두는 것이 이상합니다. 풍선은 하늘에 둥실 떠다니는 것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가볍게 들고 흘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평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축제에서 받은 풍선을 집에 가만히 두면 바람이 빠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풍선을 욕심이라고 한다면, 욕심 또한 흘려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욕심을 가지고 조절해야 한다는 기준, 그 조잡한 철장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 위로 날려 보내면 어떨까요. 우리가 평생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살지 않듯, 욕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시적인 감정을 내가 그 감정을 느꼈던 순간과 함께 놓듯 욕심도 기억과 함께 놓아주는 겁니다. 마치 풍선을 높은 하늘 위로 날려 보내기 위해 줄을 놓듯 말입니다.
에필로그
오늘의 명명 과정은 어땠나요? 읽은 후에도 수많은 물음표가 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욕심을 조절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냐, 욕심을 부리라는 거냐 아니냐 등의 질문이 생길 수 있죠. 그러나 이 글은 욕심 자체에 대한 글입니다. 예를 들어 우는 법에 대한 글이 아닌, 슬픔 자체에 대한 글이라고 하면 와닿을까요? 사실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사람에 따라 맞는 방향이 다르기에 선뜻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그저 욕심을 하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욕망은 매우 원초적인 본능이기에 어쩌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참으며 살아가는 걸 수도 있죠. 다만 욕심을 마음에서 생겨나는 하나의 감정이라고 본다면 통제를 하든 욕심을 부리든 더 가벼워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다시 되살아날 순 있어도 일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의 풍선을 불 듯, 하늘이라는 도화지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욕심 탓에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가 다치지 않게 말이죠.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훔치듯이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뒷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이 되기도 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 인간실격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