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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an 21. 2023

감정의 찌꺼기 털어내기 (글쓰기의 힘)

엄마가 사용할 한방 샴푸를 만들었다. 2016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어 구입해서 쓰다가 2019년에 원데이 클래스를 듣고 직접 만들고 있다.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한 이후 재료 구입으로 연락을 드렸는데 답변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재료 구입이 어려우면 공방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해서 연락했던 건데. 클래스에서 재료 구입 방법을 알려주었고 제작 방법도 알려주었으니 내 질문이 반갑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3년 동안 이어온 인연을 아무 말도 없이 끊어버려서 많이 아쉬웠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상대를 판매자가 아니라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맺은 지인으로 생각했고, 상대는 나를 소비자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리 이상하거나 서운할 일도 아니다. 


3년이나 지난 일에 대해 이제 와서 쓰는 이유는, 그동안 샴푸를 만들 때마다 문득 그녀는 왜 그랬을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샴푸를 만드는 6개월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게 되는 셈. 얼마 전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를 읽고 조금이라도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일이라면 시원하게 푸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두 번이라도 찝찝한 마음을 떠올리는 것은 나에게 좋지 않다. 금세 지나가는 작은 감정이지만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지난 이야기를 글로 써본다. 서로를 대하는 입장이 달랐다는 것, 그녀만의 사정이 있었을 거라는 것, 그녀 덕분에 엄마는 생기 있는 머릿결과 탈모를 방지하는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련다. 이제 샴푸를 만들 때마다 의문스러웠던 그때를 떠올리지 않겠지. 


엄마의 한방 샴푸는 5~6개월마다 만든다. 샴푸의 유효기간이 6개월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엄마 머리가 눈에 띄게 푸석해지고 머리카락이 가라앉아서 깜짝 놀라 머리카락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실은 샴푸를 바꿔보았노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축복이를 품은 이후 엄마는 샴푸 만드는 것이 나에게 부담이 될까 봐 시중에 판매하는 탈모샴푸를 구입해서 2개월 정도 사용하셨단다. 어쩜 2개월 만에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달라질까. 엄마에게 6개월에 한 번 만드는 거니 부담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재료를 주문했다.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는 한방 샴푸가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나와 첫째 조카는 머리 각질이 심하게 생겨서 쓰지 않는다. 엄마와 내편에게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 동생은 약간 긍정적인 변화가 있어서 사용하고, 둘째 셋째 조카들도 별 차이는 없지만 한방 샴푸를 사용한다. 이번에 엄마가 다른 샴푸를 써서 푸석해진 머리카락을 보니까 샴푸 만드는 법을 배워두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6개월마다 좀 더 기쁜 마음으로 엄마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지. 


글쓰기란 참 놀랍고 신기하다. 정리가 되지 않는 일들도 차분히 앉아 글을 쓰다 보면 해소가 된다. 아무리 작은 감정이라도 찝찝함이 남아있다면, 차분하게 글을 쓰며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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