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방황기(彷徨記) 8편
이른 아침 시장에서 조식을 먹고 '이에르베 엘 아구아(Hierve el agua)'로 향했다.
이에르베 엘 아구아! 우리가 머물렀던 와하까의 시골 마을에서도 1시간은 넘게 걸리는 이 곳. 혼자 여행 왔다면 어떻게 와야 했을지...
물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다.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명의 여행객을 모아 떠나는 투어도 있고, 개인이 몇 명의 동행을 찾아 택시를 빌려서 가는 것도 방법이다. 가려는 자들에게 막힌길은 없다.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가 어느 순간 산으로 들어섰다. 그렇다. 산악지대를 거쳐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산악지대에는 작은 마을이나 집들이 있었다. 운전하고 가는 사이에 몇 번이나 가축을 모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도착까지 차가 늦어지는 것은 여행의 덤이다. 재밌는 풍경을 천천히 볼 수 있기에.
또 한참을 올라가다 갑자기 마리나의 엄마가 차를 세웠다. 선인장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곳에 사람이 서 있었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 가보니 무엇인가를 팔고 있다. 내가 나타나자 한가롭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가까이로 모여든다. 내가 그들의 일상이 신비로운만큼, 그들에게도 나는 신기한 존재였다.
팔고 있는 것은 멕시코의 전통음료 였는데, 생긴 모습이나 맛이 우리의 식혜와 비슷하다. 가정에서 쓸 법한 사발에 한 그릇 담아주는 이 음료를 마시니 기분이 묘해진다. 약수터가 생각나기도 하고, 어렸을 적 길거리에서 먹었던 오뎅도 생각난다. 한잔을 들이키며 주변을 둘러보니 듬성 듬성 작은 집들이 보인다.
이때부터는 얼마 달리지 않아 이에르베 엘 아구아 입구에 도착했다. 여느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입구의 주차장 주변에는 요깃거리를 할 수 있는 식당부터, 과일을 잘라파는 가게들, 튜브와 아이들 수영복을 파는 곳까지 다양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해변의 모습이 생각나면서도 어딘가 이국적인 모습에 눈이 즐거워졌다. 이제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마침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았던 나는 이 곳에서 내가 입을 만한 수영복이 있는지 보러 갔는데 웬걸. 정말 입으면 피가 안통할 것 같은 아동용만 있어 후퇴를 했다. 이에르베 엘 아구아까지 와서 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생각하니 아쉽기만 했다.
이에르베 엘 아구아는 '끓는 물'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절벽에서 샘솟는 용천수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 물은 하나도 뜨겁지 않다. 석회수가 흘러내린 자리에 물이 증발하고 남은 석회가 굳어 생겨난 모습이 폭포수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는 그 모습은 절경이다. 그리고 멕시코의 파묵칼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사실 사진 속에 보이는 노천탕은 인공적으로 만든 곳이다.
마리나는 물을 슬쩍 만져보다니 얼음장같이 차갑다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도 슬며시 발을 담가보니 정말 차가웠다. 저 곳에 들어가있는 사람들은 다들 영국에서라도 온 것인건가. 아니면 매일 같이 이곳에 오는 동네 주민이라 이 정도 온도에 최적화 되어있는 것인가.
잠시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꽤나 난이도가 있는 트레킹 코스였다. 하지만 정말 그럴가치가 있는 곳이었는데 이에르베 엘 아구아의 석회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이 곳에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노천탕 근처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물가에 앉아 있으면 왜 이렇게 시간이 잘 흘러 가는지. 더 날씨가 따뜻한 날에 빠트리지 않고 수영복을 들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벽위 노천탕에서 즐기는 멕시코의 대자연.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우리는 다시 와하까의 시골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른 마을은 직접 목화솜을 가공해 만든 면으로 짠 카페트와 옷가지 등을 파는 아티산 마켓이 있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점저 (점심겸 저녁)을 먹고 쇼핑을 즐겼다. 가능한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 곳에서 나도 작은 러그를 구입하고야 말았다.
와하까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오전에 본 이에르베 엘 아구아의 정상에서의 시원한 바람이 생각나는 기분 좋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