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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May 09. 2021

멕시코 현실 가정집에 가다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1편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1편

“마리나, 멕시코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레나!!!! 당장 우리 집으로 와!!!!”

“나 아직 한국이니까 멕시코 도착하면 니네 집으로 갈게. 그리고 아직 티켓도 안 끊었어”


멕시코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 계열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과격하다. 특히 애정표현이 과격한 편이다. 마리나는 멕시코시티에 사는 친구이다. 스페인에 있는 동안 알게 되었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일단 현지인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처음 밟게 되는 아메리카 대륙이지만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나. 멕시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공부 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멕시코에 관련된 역사책을 2권 정도 사서 읽게 되었다. 멕시코 역사가 생소했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지금 멕시코인들의 시초는 누구일까? 아즈텍 제국의 원주민들? 반은 맞고, 반은 그렇지 않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들이게 된다. 처음엔 인도인 줄 알고 발견한 신대륙은 스페인 침략자들에 의해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멕시코의 뿌리가 되는 아즈텍 제국 역시 같은 수순을 밟는다. 근데 이 과정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을 침략한 사람은 스페인 출신 탐험가 '코르테스'였다.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는 한 여성의 힘이 컸다. 바로 원주민 출신인 '말린체'라는 여성이다. 말린체는 원주민 부족에서 귀족의 딸이었으나 가족과 부족에게 버림받아 노예가 된다. 노예 생활을 하던 그녀는 코르테스 일행의 도움으로 노예 신분을 벗게 되고 스페인어를 익혀 통역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가 세상에게 할 수 있는 복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원주민 여성인 말린체와 코르테스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바로 지금 멕시코 사람들의 시초라고 한다.


침략자와 부족을 배신한 원주민.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온 사람들. 그들이 곧 멕시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옳고, 나쁨은 여기서 등장하면 안 될 것이다. 역사이기 때문이다. 멕시코인이 멕시코인으로 태어나기 위해 혹은 태어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보니 한국인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살면서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일 민족'인 것이 마치 최고의 가치인 것 마냥 교육받고 자라온 나의 짧은 사고일 수도 있다. 멕시코 친구들은 "그냥 그게 우리야"라고 짧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그냥 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것일 뿐이다.


멕시코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웠다.


멕시코로 가기 몇 개월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특히 목이 계속 좋지 않아 따끔거렸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만성이 될까 봐 걱정스러운 시기였다. 겨울 내내 마스크를 끼고 다녔다. 그리고 가기 전날 저녁에 짐을 싸는데 엄청난 오한이 찾아왔다. 온몸이 너무 떨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저히 짐을 쌀 수가 없어서 일단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어떻게든 싸 보는 걸로. 그리고 새벽 3시경. 몸에 떨림이 잦아들었다. 그제야 짐을 싸기 시작했고 아침이 되자 오한은 사라졌지만 몸에 기운이 없었다.


나 이대로 멕시코에 가도 되는 걸까. 일단 걸을 수 있었기에 공항으로 향했다.


코로나 이후로도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멕시코까지는 직항 노선이 있다. ‘아에로멕시코 (Aero Mexico)’ 를 이용하면 인천에서 멕시코시티까지 13시간 만에 직항으로 갈 수 있다. 다만 돌아오는 편은 멕시코시티에서 인천 사이에 몬테레이를 경유하는데도 직항이라고 표현하는 이상한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보통 비행기를 타고 가다 어떤 곳을 경유할 경우, 경유지에 한 차례 내리고 다시 탑승을 하기 마련인데 이 노선의 경우는 비행기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몬테레이에서 추가로 탑승하는 승객들과 함께 한국으로 날아간다.


직항을 타고 드디어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짐을 챙겨 들고나가니 마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레나!!!!!!!”

“오, 웬일이야! 니가 시간을 지키다니!”


마리나가 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오다니 어지간히 내가 걱정되었나 보다. 마리나와 함께 공항을 나서니 마리나의 동생 이반이 차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직 운전이 미숙한 초보 운전자였지만 운전 연습 삼아 나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오는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나와준 이반에게 너무 고마웠다.


공항을 나서서 처음 보는 그 나라의 풍경. 그 풍경들이 그 나라를 대변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처음 도착하면 그 풍경에 홀리기 마련이다. 멕시코는 일단 사막스러웠다. 정말 사막화돼서 그런 건지, 그냥 낡고 더러워서 그런 건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과 가게들이 흙투성이 었다. 간간히 보이는 간판들만이 색을 갖고 있었다.


멕시코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바로 스페인어이다. 나는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약 6개월 간 공부한 적이 있다. 정말 악마의 언어라며 치를 떨었다. 어찌나 어렵던지. 공항에서부터 마리나의 집으로 가는 길에 이반이 굉장히 천천히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왔다.


“레나, 만.나.서.반.가.워. 멕.시.코.에.온.기.분.은.어.때?”

“응, 너.무… 좋.아”


이 이후로 우리의 대화는 영어로 이어졌다. 이반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마리나의 집에 도착했다. 일단 집의 정원에서 바나나가 자란다. 그리고 집 옥상에는 바닐라를 키우는 온실이 있다. 바닐라는 아이스크림에서 향으로만 접해봤지 살아있는 식물을 처음 보았다. 그 온실 옆에는 어떤 동물들을 키우는 공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어떤 동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토끼였나. 동물 좋아하는 나조차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다른 쇼킹한 일이 많았다. 반려견 두 마리는 낮에는 정원에서 밤에는 집 안에서 생활을 했다. 정원 안쪽에는 다 말라서 물이 없는 연못이 하나 있었다. 전에 아끼던 강아지 한 마리가 이 연못에 빠져서 죽었다고 했다. 이반의 두 눈이 촉촉했다.


집 내부에 1층은 주방 그리고 거실 겸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다이닝룸이 있었다. 가족들과의 모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여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대가족이어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요즘 유행하는 8인용 식탁보다도 큰 테이블이 방을 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이닝룸에서 식탁이 차지하지 않는 비좁은 공간을 통해 겨우 빠져나가면 게스트룸이 나온다. 마리나는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게스트룸은 에어비앤비 고객용이라고 했다.


“그럼 나는 어디서 자는 거야 마리나?”

“레나 넌 내 방에서 자”

“마리나 넌 어디서 잘 건데?”

“난 엄마 침대에서”

“그럼 니네 아빠는? “

“아빠는 게스트룸에서 잘 꺼야”

“어? 그럼 내가 게스트룸 쓰면 되잖아”

“며칠 뒤에 게스트룸에 손님이 올 거야”

“그럼 그땐 니네 아빠는 어디 가시는데?”

“그땐 아빠가 알아서 할 거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1층에 욕실 하나 그리고 2층에 욕실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는 문이 없었다. 문이 떨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문을 만들 생각 없이 지어진 집이었다. 나에게는 1층 욕실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한다면 2층 문 없는 욕실을 써도 좋다고 했다. 고마워 마리나.


2층에는 문 없는 욕실도 있지만, 마리나네 엄마 방, 돌아올 때까지 마리나네 언니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여동생이었던 마리나의 동생과 그녀의 아들이 함께 쓰는 방 그리고 마리나의 방이 있었고, 복도도 아니고 방도 아닌 한 공간은 컴퓨터나 책들을 놓고 모두의 서재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이반 방은 어디야?”

“이반은 방이 없어”

“그럼 이반은 어디서 자?”

“이반은 아빠랑 게스트룸에서 자”


이번에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올 때쯤 서재로 기억했던 공간은 이반의 방으로 변신하게 된다. 역시 그들도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었다.


도착 당일은 마리나가 직접 요리를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정원에 가서 선인장을 하나 잘라왔다. 선인장을 슥슥 썰더니 프라이팬에 볶기 시작했다. 잘 볶아진 선인장. 그리고 소고기를 또띠야 위에 얹어서 말아서 먹었다. 로컬 선인장 화지타. 충격적이었지만 먹을만했다. 맛있다고 하긴 힘들다. 선인장을 맛보고 맛있다고 하긴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뒤로도 마리나는 선인장 볶음을 종종 반찬으로 내왔다. 밥도 먹고 짐도 풀었으니 슬슬 나도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주 잠시이지만 말이다.


마리나의 집은 굉장히 안전한 동네에 있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의 관광지에서는 멀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이용할 수 있는 흔한 대중교통 중 하나인 콤비(Combi)는 *콤비는 로컬 미니버스이다. 마리나의 집 근처까지 오고 가지만, 콤비의 노선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지역에서 오래 사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지나가는 콤비를 세우고 기사님 하고 노선 확인을 해야 한다.  심지어 콤비의 외관은 이반과 마리나가 얘기해주지 않았으면 버스라고 인식도 못 했을 비주얼이었다. 그래서 나는 멕시코시티 안에서 우버로 이동하기로 했고 마리나도 그렇게 하기를 추천했다.


우버를 타고 처음 간 곳은 바로 '아나우아깔리 박물관 (Museo Anahuacalli)'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가 지은 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인근의 화산석으로만 지은 곳이고 내부에는 디에고 리베라가 생전에 모은 고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제로 디에고 리베라는 틈날 때마다 고대 유적지에 가서 유물들을 주워 모았다고 한다. 그게 5만 여점이라고 하니 발에 차이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유적지들이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관리가 안돼 땅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는 소리이다.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 그리고 스케치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디에고 리베라 무랄(벽화) 박물관'에 가는 것이 낫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박물관이었다. 한적하고 천천히 볼 수 있으며 건축물이 예쁜 박물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아나우아깔리 박물관의 외관 벽면의 모습. 제주도에서 많이 보이는 현무암이 주재료이다

아나우아깔리 박물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프리다 칼로 박물관 (Museo Frida Kahlo)' 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예술의 전당'에서 프리다 칼로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정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그림들이 거의 대부분 A3 혹은 A3를 2개 합친 것보다도 작은 사이즈여서 사람들 틈에서 그림을 보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예술의 전당 측이 힘이 없어서 큰 그림들을 못 빌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저 나의 오해였다. 그녀의 그림들은 대부분 작은 사이즈였던 것이다. 하긴, 사고로 평생 가까이를 침대에 누워서 그릴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이젤에 캔버스를 걸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사이즈가 컸을 리 만무하지. 결국 멕시코시티의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서도 예술의 전당에서 겪었던 일이 되풀이되었다. 관광객들이 엄청 몰려와서 줄지어서 들어가야 하는 이 곳에서 작은 사이즈의 작품을 누군가의 머리와 머리 사이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은 실제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살던 집이었는데 전시를 다 보고 나올 즈음에 프리다가 실제로 사용했던 침대와 누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제작된 이젤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침대에 갇힌 몸으로 큰 세상을 품었던 프리다를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먹먹해졌다.


프리다 칼로 뮤지엄이자 생가의 전경
프리다 칼로 뮤지엄이자 생가의 전경. 식물관을 방불케 하는 모습!

프리다 칼로 박물관을 나와 코요아칸(Coyoacan) 거리를 배회하고는 어느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하고 다시 마리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마리나의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나갔는데 마리나는 일이 있어서 늦게 합류한다고 연락이 왔다. 결국 마리나 없는 마리나의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고마워 마리나.


집에 돌아오니 너무 피곤했다. 분명 출발할 때 난 엄청 아팠는데 도착하고 하루를 보내고 나니 기침도 하지 않고, 목에 따끔거리는 것도 사라져 있었다. 은퇴한 노부부가 한국의 겨울을 피해 동남아에 리조트를 구해서 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침대에 몸을 누이고 멕시코에서의 첫째 날 밤이 지나갔다.

멕시코에 있는 동안 나를 품어주었던 마리나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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